조국해방 56주년을 맞이하며
<기고> 김 방 경문대 교수, 문학박사
2001-08-20 평택시민신문
조국해방이 어느덧 반세기가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일본의 망령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일본중학교 새역사교과서의 왜곡으로 온 나라가 시끄럽더니 요즈음은 고이즈미 일본총리의 야스쿠니 신사참배로 야단이다. 주기적으로 반복되는 일본의 망령을 우리는 벗어날 수 없는 것일까? 흥분하여 감정적으로 대처할 것이 아니라 조국해방 56주년을 맞이한 이제는 해방의 의미를 되새기면서 냉정하고 의연하게 대처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본다.
일반 대다수의 사람들은 우리 한민족의 조국광복이 강대국인 미국 등 연합군에 의하여 실현된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잘못된 역사인식에서 비롯된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 한민족의 치열한 항일투쟁과 자주적인 역량으로 조국해방이 쟁취되었기 때문이다.
1910년 일제가 한국을 강점하자 국내에서는 비밀결사운동이 일어났고 국권피탈 직전 의병전쟁과 애국계몽운동을 전개하였던 세력들은 만주·연해주 등지로 이동하여 독립운동 근거지를 조성하고 항일무장투쟁을 전개하였다. 이와 같은 한민족의 국내외 독립운동 열기는 1919년 3·1운동을 통하여 분출되었고 이 결집된 힘으로 상해 임시정부가 수립되어 체계적인 항일독립운동이 시작되었다. 1920년대에 접어들어 만주·연해주 지방의 독립운동 세력들은 독립군을 재편하고 일제와 치열한 항일무장투쟁을 수행하여 청산리전투와 봉오동전투를 승리로 이끌어 내었다. 1930년대에 일제가 중일전쟁을 일으키자 독립운동 세력들은 조선의용대·한인애국단을 조직하여 일제와 계속적인 항일무장투쟁을 전개하였다. 1940년대에 일제가 아시아·태평양전쟁을 일으켜 전선이 확대되자 상해 임시정부는 광복군을 조직하고 일제와 전면전쟁을 감행하여 독립을 쟁취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미국의 원자폭탄 투하로 일본이 조기에 항복하여 일제와의 전면전쟁은 실현되지 않았다.
특히 식민통치기 일제는 한국지배를 정당화하고 장기적인 식민지지배를 위하여 식민사관을 만들어 내었다. 식민사관은 한민족의 시조가 단군이 아니라 기자이며 한국 고대사는 중국의 지배를 받는 시기이었다고 왜곡·날조하였다. 또 세종대왕이 창제한 한글이 몽고로부터 전파되었고 한국의 역사는 모두가 비주체적이고 타율적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일제가 한국을 지배해야 한다는 통치미화론을 주장하였다.
이와 같은 일본의 역사왜곡에 대하여 민족주의 역사학자들은 민족혼의 이론을 도입하여 대항하였고 일본의 한국고대사 왜곡을 비판함과 동시에 민중주체 투쟁사관을 제시하여 민족전체·민중전체가 독립투사가 되어서 일본과 투쟁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리고 일본의 한국고대사 왜곡에 대항하여 한사군론을 전면 부정하고 민족사라는 입장에서 한국고대사를 체계화하였다. 또 단군조선에서 삼국시대까지의 우리의 역사를 고조선 사회의 발전과정이라는 논리로 개진하였으며 역사의 대중화와 민중의 계몽화로 일본의 한국사 왜곡에 대항하였다.
이제 조국해방 56주년을 맞이하여 우리는 8·15 해방이 한민족의 자주적인 역량에 의하여 쟁취되었음을 다시 한번 인식하고 일제의 역사왜곡에도 의연하고 체계적으로 대처하였음을 인식하여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인식을 거울삼아 우리가 일본의 망령으로부터 벗어나려면 다음과 같이 대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첫째, 일본의 역사왜곡에 대한 일시적이고 감정적인 대응보다는 지속적이고 체계적인 연구를 계속하여 학문적으로 대응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둘째, 우리나라의 자라나는 세대들에게도 일제 식민통치기의 부끄러운 역사를 교과서에 자세히 기술하여 정확한 역사를 인식하도록 해야한다. 셋째, 국정검인정 교과서에 의한 획일적인 틀안에서의 주입식·암기식 역사교육에서 탈피하여 그 시대적 상황을 주체적이고 과학적으로 인식하도록 하는 교육이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한국정부의 지속적이고 능동적인 외교노력이 요청된다. 이러한 것들이 어우러질 때 비로소 일본의 망령으로부터 우리는 벗어나지 않을까? 왜냐하면 국민의 절대적 지지를 받지 못하는 고이즈미 내각이 일본의 우경화를 통하여 자신의 입지를 강화하려는 작금의 사태에 우리 한민족이 들러리서는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