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예술은 이제 도시 경쟁력 “문화예술행정 바뀌어야”

2025-11-26     김윤영 기자

창간특집 좌담회 일상 속 문화예술공간 확보 방안 모색

평택호예술관이 2030년 문을 닫는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2001년 개관한 평택의 대표적 전시공간이 사라지는 이유는 평택호관광단지 개발계획 때문이라고 한다.

문화예술은 지역의 정체성과 매력을 강화하고 지역주민의 문화적 삶의 질을 높이며 외부 인구를 끌어들일 수 있는 강력한 자원이다. 사람들이 이주나 정주를 결정하는 데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기도 한다. 우리나라에서 비수도권 주민이 수도권으로 이주하려는 주요 이유 중 하나가 ‘문화 시설·서비스’ 개선에 관한 기대감이라는 연구 결과도 있다.

시민이 문화예술의 효능감을 느끼게 하려면 몇 가지 조건이 충족되어야 한다. 다양한 문화예술을 즐길 공간이 있어야 하고 예술가들의 창작과 역량 강화를 지원해야 하며 시민의 문화적 욕구를 반영하고 새로운 경험을 제공하는 문화서비스를 기획하고 공급할 수 있어야 한다.

이에 본지는 특집좌담회를 열어 평택호예술관 같은 전시공간을 중심으로 일상 속 문화예술공간 확보 방안을 모색해 보았다.

일  시  11월 14일 오후 2시
장  소  대안문화공간 루트
좌  장  최승호 대안문화공간 루트 관장
참가자 
권혜정  안중시장상인회 회장
신은주  아트컴예술나눔 대표
오민영  평택시문화재단 지역문화본부 본부장
최필규  평택미협 고문 
           수원대 미술대학원 객원교수
 

최승호  대안문화공간 루트 관장

최승호 참석자들이 어떤 생각으로 좌담회에 참여하게 됐는지부터 이야기를 시작했으면 한다.

최필규 평택호미술관의 폐관 소식을 듣고 답답한 마음이 들었다. 이 문제에 관해 평택의 문화예술인이 함께 이야기할 필요성을 느껴 참석하게 됐다.

신은주 백화점 기획실에서 근무하다 42살에 미술 공부를 시작해 미술관에서 일해왔다. 조기 은퇴하고 고향 평택에 왔다가 문화재단 지원사업을 하게 됐다. 올해 전시 기획을 2개 정도 진행했는데 전시공간을 찾기가 너무 힘들었다. 유럽에는 슬리퍼 신고 가서 보는 작은 미술관이 많다. 평택의 작가들과 그런 소박한 전시공간 하나 있었으면 좋겠다고 얘기하다 좌담회에 참여하게 됐다.

권혜정 문화예술로 안중시장에 생기를 불어넣을 방법을 찾고 있다. 시장 입구에 이벤트광장을 꾸며 ‘길마골 미술관’이라는 간판을 걸고, 시장 곳곳에 상인과 예술인이 협업한 벽화와 예술작품을 설치하고, 10년째 미술대회를 열고 있다. 평택의 문화예술인들과 전시공간을 중심으로 일상 속 문화예술공간을 어떻게 확보할지에 관한 생각을 공유하고 싶다.

오민영 문화재단에 근무하면서 전시공간이 매우 부족한 현실을 알게 됐고 일상에서 문화예술공간을 확보할 방안에 관해 계속 고민해 왔다. 귀 기울여 듣고 문화재단이 할 일을 숙고해 찾아보겠다.

 

지역의 거의 유일한 전문 전시공간
평택호예술관이 폐쇄될 상황 처해
공적 기능 갖춘 전시공간 확보해야

 

공공기관 벽에 장식품처럼 걸린 
작품 볼 때…평택은 시각예술을 
홀대하는 곳이라고 생각하게 돼

전시공간인데 폐쇄 사실이 알려지면서 지역에서 논란이 되고 있다.

오민영 평택호예술관을 관리하는 평택시청 문화예술과에 확인해 보니 평택호관광단지 개발계획에 따라 철거가 결정됐다고 한다.

권혜정 평택에 전시공간이 적어서 많은 문화예술인이 평택호예술관을 이용한다. 쉬지 않고 다양한 전시가 이어진다. 그런 공간이 사라진다고 하니 제대로 된 전시를 가능할지 우려스럽다.

신은주 다른 전시공간을 마련할 때까지 3년의 유예기간을 확보했다고 들었다.

권혜정 평택호관광단지 개발로 철거해야 한다면 어디로 옮길지 이전계획을 세워야 했다. 개발을 위해 그나마 있던 전시공간을 소멸시키겠다는 것으로 보여 이해하기 어렵다.

최필규 수원대 미술대학원 객원교수

최필규 송탄국제교류센터 다목적관을 전시공간으로 리모델링할 계획이라고 한다. 그곳에서 국제아동미술전을 매년 개최했으니 괜찮을 것으로 판단한 것 같다. 제가 두 번 정도 방문해 보니 다목적관은 말 그대로 다양한 행사를 열기 위한 다목적 공간이었다. 원래 목적에 맞춰 쓰지 않고 수십억의 예산을 들여 전시공간으로 바꾸는 것이 적합해 보이지 않았다. 그럼에도 전시공간으로 바꿔야 한다면 미술인과 미술 관계자의 의견을 수렴해 제대로 만들었으면 한다.

최승호 송탄국제교류센터 다목적관은 컨벤션센터로서의 기능을 넣어 조성한 것으로 기억한다. 접근성 문제부터 해결해야 한다. 대중교통으로 접근이 쉽지 않고 자동차를 이용해도 주차 공간이 턱없이 부족하다.

권혜정 전시공간은 전시라는 목적에 맞춰 조성해야 한다. 남는 공간이 있으니 고쳐 쓰겠다는 것은 잘못된 발상이다. 작품을 전시할 때는 빛이나 조명을 감안해야 하고, 설치작품이나 비디오작품도 전시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런 조건을 갖춰야만 전시공간으로서 제 역할을 할 수 있다.

최승호 평택시가 문화예술 행정에 눈을 떴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공적 기능을 갖춘 전시공간을 확보해 지역의 문화적 정체성을 확립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 때다.

최필규 지난해 평택시가 진행한 시립미술관 건립 타당성용역 최종보고회에 참석했다. 평택에서 태어나 여태껏 미술로 살아오면서 시립미술관 얘기가 나온 것만으로도 가슴이 벅찼다. 미술관 예정지 중 하나로 거론된 모산골평화공원도 가봤다. 시민이 공원을 산책하다가 편하게 들를 수 있는 작은 미술관이라도 하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지금까지 아무 소식이 없다.

신은주 아트컴예술나눔 대표

신은주 3년 전 평택에서 문화예술 활동을 시작했는데 작품을 전시할 공간을 찾기 너무 어려웠다. 포승읍에 있는 산업단지에서 전시회를 하면 어떨지 생각하고 곳곳을 찾아다녔지만 전시공간이 없었다. 평택에서 미술작품을 볼 수 있는 장소는 공공기관 로비다. 장식품처럼 벽에 걸어 놓은 작품을 보면 볼 때마다 문화예술인으로서 가슴이 아프다. 젊은 작가들을 만났을 때 문화재단 지원사업에 선정됐지만 전시공간이 없어 전시하지 못하게 돼 지원금을 반납할지를 고민하는 이야기를 여러 번 듣기도 했다. 평택은 예술 특히 시각예술을 홀대하는 곳이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최필규 미술관이나 전시공간이 없다 보니 지역 작가들이 작품을 기증해도 보관할 곳이 없다. 지역작가인 김흥수 화백이 작고하기 전에 작품을 평택시에 기증하려 했으나 작품을 전시·보관할 공간이 없어 성사되지 못했다. 결국 동아방송예술대학교에 기증할 수밖에 없었다.

최승호 시각예술가에게 전시공간은 가장 기본 인프라다. 전시공간이 필요하면 시각예술인이 먼저 나서서 행동해야 한다. 읍소도 하고 때로는 으름장도 놓아야 한다. 그래야 시민 공감을 끌어낼 수 있다.

최필규 지금 당장 곳간에 밥 지을 쌀이 없는 상황이다. 전시공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면 평택에 있는 문화시설의 유휴공간을 활용하거나 근대건축을 매입해 활용할 방안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오래된 건물에는 나름의 스토리가 있으니 잘 보존해 후대에 전할 스토리텔링을 만들어가면 좋겠다.

신은주 앞으로 3년이 지나면 평택의 유일한 전시공간이 사라진다. 시각예술 분야서 실내 전시는 기본 중의 기본이다. 전시공간이 없는 문제부터 해결해야 한다.

최필규 평택아트센터에 100평 규모의 전시실이 있다고 들었다. 아트센터 개관 전에 시각예술인 의견을 수렴해 문제점이 있다면 보완해 잘 운영했으면 좋겠다.

최승호 문화공간을 만들고 운영하면서 앞으로의 방향을 고민하게 된다. 외국 사례를 보면 참여형 미술관으로 바뀌고 있다.

최필규 미술관의 흰 벽, 화이트큐브에 고정되지 않고 자유로운 방식의 전시를 고민할 필요가 있다. 지붕이 없어도 평택의 들녘, 느티나무가 있는 마을 등이 멋진 전시공간이 될 수 있다. 관람객이 걸음을 옮길 때마다 체험을 선사하고 다른 각도에서 나와 작품의 관계를 형성하는 전시여야 한다. 예술인들은 ‘전시공간=갤러리’라는 고정관념을 버려야 한다.

권혜정 안중시장상인회 회장

권혜정 안중시장 이벤트광장에 길마미술관이라는 간판을 설치했다. 그러자 사람들이 미술관이 어디 있느냐고 물어본다. 미술관이라는 건물이 아니라 안중시장이라는 공간을 ‘머물고 싶고, 찾고 싶은 문화예술 갤러리’로 만들겠다는 취지였다. 시장은 지역주민이 많이 찾는 곳 중 하나다. 시장 상인, 지역주민 그리고 예술가들이 함께하면서 새로운 아이디어를 나누고 문화예술을 즐기고 체험하는 공간으로 만드는 데 평택시문화재단 등에서 관심을 기울였으면 좋겠다.

신은주 현재 평택에서 미술관이 예술가와 시민이 만나는 최적의 접점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외국이나 국내 사례를 보면 마을회관이나 초등학교, 빈 창고를 전시공간으로 활용한다. 마을회관이든 창고든 아니면 들판을 전시공간으로 지정해 활용해야 한다. 그래야 예술가를 부르고 프로그램을 운영할 수 있다.

 

지속가능한 운영이 가능해야 
전시공간이라 할 수 있어…
일상에서 고유한 지역문화를 
가꾸고 체험하는 공간 있어야

권혜정 지속가능한 운영이 가능해야 한다. 지원받아 한 달 준비해 전시하고 끝난다면 그 공간을 전시공간이라 할 수 없다.

최승호 문화예술 향유는 ‘경험의 축적’이라는 특수한 전제조건이 있다. 어릴 때부터 문화예술을 접하고 체험한 경험이 차곡차곡 쌓여야 한다. 문화예술 교육이 체계적으로 이뤄지지 않은 우리나라 상황에서 외국의 미술관이 ‘참여형’이라고 해서 바로 평택에 적용하기는 버거울 수 있다. 이를 작가 개인이 풀어야 할 몫으로 맡기면 안 된다. 평택시·평택시문화재단이 대안을 찾아야 한다. 문화예술 행정이 바뀌어야 가능하다.

최필규 문제가 있으면 토론도 하고 공청회도 하고 시민 의견을 수렴하면서 공론화를 통해 해법을 찾아야 한다. 내년 지방선거가 있으니 지역문화계에서 목소리를 내고 정책도 제안할 필요가 있다. 이때 문화예술인이 한목소리를 내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신은주 외지에서 평택에 살러 온 분들 열에 아홉은 ‘평택에 갈 곳이 없다’ ‘문화예술이 너무 척박해’라고 말한다. 이제 그 도시의 문화예술은 도시의 경쟁력이다. 문화예술이 없는 도시에 사람들을 머무르려 하지 않는다.

최승호 평택을 보면 서부는 서부대로, 남부는 남부대로, 북부는 북부대로 고유성을 독특함이 있다. 이런 지역 특성을 담아낼 문화공간을 고민해야 한다. 그래야 지역주민이 정체성을 느끼고 자부심을 느낀다. 객석 1000개가 넘는 큰 공연장 하나 지었다고 평택의 문화예술이 발전한다고 낙관해서는 안 된다. 아트센터가 대형 공연장으로서 역할을 하는 가운데 일상에서 고유성 있는 지역문화를 가꾸고 체험하는 공간을 함께 조성해야 한다.

신은주 세금을 낸 시민은 문화를 누릴 권리가 있고, 시민이 요구하지 않아도 행정이 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

최필규 대기업을 유치했했다고만 하지 말고 기업에 문화사업을 제안하는 것도 필요하다. 이때 행정이 단독으로 가서는 안 되고 시민의 지지가 필수다.

최승호 그렇다면 전시공간 확보를 포함해 생활 속 문화예술공간을 구현할 방법이 뭐가 일을지 의견을 모으면 좋겠다.

오민영 평택시문화재단 지역문화본부장

오민영 전시공간 확충도 필요하지만 창작지원센터가 시급하다. 좋은 작품이 많아지면 지역사회에 전시공간의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가 자연스럽게 형성된다. 전시공간이 필요하다고 미술관 건립부터 이야기하면 작가 발굴·지원 같은 전제조건에 대한 논의가 사라질 수 있다.

권혜정 전시공간이든 창작지원센터든 시민이 생활 속에서 문화를 체험하는 공간이 되어야 한다. 더 많은 시민이 더 편하게 들르게 하려면 접근성이 가장 중요하다고 본다.

신은주 신도시로 이전하는 원도심의 학교 건물을 활용하는 것도 방법이다. 그런 학교 건물을 창작지원센터로 꾸민다면 평택의 문화예술 발전은 물론 원도심 활성화라는 경제적 효과도 얻을 수 있다.

최승호 청년작가가 평택에 살러 오고 머무르게 하는 방안도 고민해야 한다. 안정리예술인광장을 보면 거리를 오가는 사람들에게 작가들의 창작공간이 훤히 보여 창작 활동에 제약이 크다고 한다.

오민영 그동안 평택시에서 미술 분야 지원이 거의 없었다. 지역작가 작품을 구매하는 소장품 구입 예산 1억원 정도가 유일했다. 평택시문화재단이 출범하고 청년작가 전시 지원 등 시각예술 분야를 본격적으로 지원하기 시작했다.

 

문화예술연구회 필요성 제기
시민과의 거버넌스 형성해 
문화정책을 연구·제안해야

최승호 문화예술 정책을 창의성이 필요하기 때문에 행정이 접근하기 어려울 수 있다. 매개자가 필요하다. 문화정책을 연구하고 제안하는 문화예술인 연구회나 시민단체가 있어야 한다.

오민영 문화재단은 시민 거버넌스 구축을 위해 ‘시민문화위원회’를 운영 중이며 올해 평택 청년들의 창의적인 안건을 기대하여 청년문화분과를 신설했다. 시각예술 분야의 문화예술인이 많이 참여해 목소리를 내고 정책으로 이어지도록 했으면 한다.

최승호 지방자치단체는 시민이 낸 세금으로 공적 서비스를 제공한다. 문화예술은 시민의 권리이고 당연히 보장받아야 한다. 행정의 인식도 바뀌어야 한다. 뜻을 함께하는 문화예술인부터 목소리를 냈으면 한다. 문화예술을 발전하는 데에는 자본이 필요하고, 발전 정도에 따라 더 많은 자본이 요구된다. 행정에서 이런 자본을 투입하게 하려면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

오민영 아트센터가 생기는 과정을 보면 공연예술을 향유할 대형 공연장이 필요하다는 데 지역사회가 공감하고 합의하는 과정이 있었다. 시각예술인들도 전시공간이 없으니 만들어줘, 청년작가를 발굴하고 지원할 창작지원센터가 필요해, 유명 작가의 전시를 볼 수 있는 미술관이 필요해 등의 목소리를 차례차례 내면서 나가야 한다. 지역사회에서 같이 모여 이야기할 거버넌스를 형성해 시민의 문화예술 향유와 평택시 문화예술 발전에 그 공간이 왜 필요한지를 설명하고 정책으로 제안할 필요가 있다.

최승호 시각예술인이 한자리에 모이는 정책연구팀을 만들 것을 제안한다. 그래야 상징성도 있고 행정이 받아들이는 무게감도 다르다. 처음에는 시각예술에서 시작해 점차 범위를 늘려나가면 좋겠다. 이와 함께 시각예술인과 문화재단이 계속 소통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오늘 좌담회가 문화예술인을 중심으로 시각예술 분야 문화정책을 연구하고 지역사회와 공유하고 평택시와 정치권에 제안하는 흐름을 시작하는 자리가 되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