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년간 5만7400장, 한광중이 나른 ‘따뜻한 겨울’

학급에서 시작해 전교생으로 자랑스러운 전통 자리잡은 한광중 사랑의 연탄 나눔 교복 나눔 장터·바자회 등 수익금으로 기부이어와 올해는 8가구에 4000장 전달

2025-11-12     한아리 기자

지난 10월 30일 오후, 평택시의 한 장애인 단체 앞에 연탄 배달 트럭이 도착했다. 곧이어 한 무리의 학생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여 대열을 정비했다. 너도나도 장갑을 끼고 연탄을 나르기 시작한 이들은 한광중학교 학생들이다. 가을의 문턱을 넘어 겨울로 향하는 이 시기, 이들의 손에서 손으로 이어지는 연탄 한 장 한 장에는 13년의 역사가 담겨 있다.

 

한광중학교의 연탄 나눔 봉사의 시작은 2013년 한 개 학급과 운동부에서부터다. 2015년에는 전교생의 봉사로 커졌고 전교생이 함께하는 학교의 대표적인 봉사활동으로 발전했다.

13년째를 맞은 올해까지 누적 5만 7400장의 연탄을 기부했으며 올해만 취약계층 8가구에 4000장의 연탄을 전달했다.

 

한광중 연탄 나눔의 특별함은 단순히 봉사활동에 참여하는 것을 넘어선다. 학생들은 연탄 구매 비용을 직접 마련한다. ‘사랑의 교복나눔 장터’와 ‘바자회’가 주요 재원이다. 졸업생의 학부모들이 깨끗하게 세탁한 교복을 학교에 전달하면 이를 필요로 하는 재학생과 학부모에게 나눈다. 교복을 받는 이들은 자발적으로 기부금을 내고 이는 고스란히 연탄 기금이 된다. 중학생들은 성장기라 입학하며 맞춘 교복이 3학년이 되면 작아져 이 나눔은 학생들에게도 실질적인 도움이 된다. 매년 600벌에서 1000벌 정도의 교복이 나눠진다.

 

한광중의 나눔은 연탄에 그치지 않는다. 적은 금액이지만 밀알복지재단에 기부하고 태국 치앙라이의 반구 초등학교와 자매결연을 하여 매년 물품과 성금을 지원한다. 학교에서 사용하다 남은 물품들도 이곳에서는 큰 쓰임이 있다.

고석윤 교장은 “이것이 일회성 행사가 아니라 교육 과정 속에 자연스럽게 징검다리처럼 녹아들어 있다”고 말했다.

 

작은 인터뷰

함께 나누며 성장하는 아이들

고석윤 교장(왼쪽), 이준우 학생회장

고석윤 교장·이준우 학생회장이 전하는 연탄 속에 따뜻한 이야기

올해 개교 70주년을 맞은 한광중학교의 연탄나눔이라는 특별한 전통은 학교의 비전과도 맞닿아 있다. 한광중은 ‘사랑과 꿈이 가득한 미래의 바른 인재 육성’이라는 비전 아래 지성과 인성을 겸비한 인재를 키우기 위해 지적 교육만큼이나 인성 교육과 생활 교육에 공을 들이고 있다.

고석윤 교장은 “전에는 기업에서도 스마트한 인재, 스펙이 중요했다”면서 “하지만 최근에는 함께할 수 있는 공감 능력, 서로 힘을 합쳐 효과를 낼 수 있는 인재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연탄 한 장의 무게는 약 3.6kg. 수백 장의 연탄을 나르는 일은 결코 가벼운 봉사가 아니다. 처음 연탄을 본 학생들은 신기해하며 손에 묻은 까만 가루를 서로 얼굴에 묻혀주며 장난을 치기도 한다. 하지만 봉사가 시작되면 금세 표정이 달라진다.

이준우 학생회장(3학년)은 “처음에는 무겁고 힘들었는데, 어려운 이웃을 도울 수 있다고 생각하니 몸은 힘들어도 마음은 더 풍요해지는 느낌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학생회장으로서 교복나눔 장터와 바자회를 기획하고 봉사 당일에는 학생들의 동선을 미리 확인해 안전하게 연탄을 나를 수 있도록 준비했다.

“학교에서 직접 돈을 모아서 하는 활동이라 더 보람 있었다. 우리가 모은 성금으로 사랑을 나누는 거니깐”이라며 웃어 보였다.

연탄 나눔 봉사는 학생들의 안전이 최우선이다. 학생회는 사전에 배달 경로를 답사하고, 차량이 많이 지나는 곳에는 안내 인력을 배치한다. 고 교장은 “뜻이 좋아도 안전이 보장되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고 강조했다.

“사고가 두려워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보다 철저히 준비해서 안전하게 진행하는 것이 교육적으로 더 가치 있다”며 수학여행과 체험학습도 안전 문제로 기피하는 요즘 한광중이 이런 활동을 지속하는 이유에 관해 설명했다.

요즘 학생들은 연탄을 본 적이 없는 세대다. 연탄으로 난방한다는 것 자체가 낯설다. 하지만 그렇기에 이 경험은 더욱 특별하다.

고 교장은 “아이들이 평소 다니던 아파트 단지를 벗어나 처음 가보는 동네의 오래된 주택가에서 연탄을 나르면서 우리 사회의 다양한 모습을 직접 눈으로 확인하게 된다”고 말했다.

이 학생회장도 “우리가 연탄을 전달했을 때 주민분들이 정말 반갑게 맞아주시고 흐뭇해하셨다”며 “작은 도움이 누군가에게는 큰 힘이 된다는 걸 깨달았다”고 말했다.

고 교장은 정년을 얼마 남기지 않았지만, 이 전통이 계속 이어지기를 바란다는 바람을 전했다. 그는 “연탄이 다른 형태로 변할 수도 있다. 연탄은행에서도 유류비 지원을 고민하고 있다. 하지만 어떤 시대가 되든 더불어 살아가는 따뜻한 시선, 그러한 활동은 계속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사회가 급변하고 AI 시대가 되면서 더 차가워지고 메말라가지만, 그 안에 사람이 있고 사람의 따뜻함이 있어야 한다”며 “학생들이 우리가 지켜야 할 고유한 가치를 잊지 말고 멋진 인생을 살아가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13년간 이어온 5만 7400장의 연탄. 그것은 단순한 숫자가 아니라 한광중학교 구성원들의 따뜻한 마음이 쌓인 결과다. 차가운 겨울, 누군가의 집에 온기를 불어넣는 연탄처럼, 한광중학교의 나눔 정신은 지역사회에 따뜻한 온기를 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