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의 품격을 디자인하는 전시기획자 장남호

2025-10-30     평택시민신문

김해규의 문화살롱

평택시문화재단 설립 이후 지역 문화·예술이 크게 성장했다고 말한다. 하지만 한편에서는 공연예술은 크게 발전했지만 시각예술이나 인문학 발전은 매우 더디다고 말한다. 장남호는 평택시문화재단에서 시각예술을 담당하는 젊은 일꾼이다. 그의 입을 통해 평택시 시각예술의 현주소와 미래를 전망해 봤다.

 

청소년기에는 음악가가 되고 싶어

장남호(남, 1987년생)는 수원이 고향이다. 초등학교를 비롯해서 중·고등학교와 대학교, 대학원을 수원에서 다녔다. 철 모를 때는 대통령도 되고 싶고 파일럿도 되고 싶었지만 유치원 때부터 피아노를 배우면서 음악에 푹 빠졌다. 중학교 1학년 때 부모님께 음악을 하겠다고 말씀드렸다. 작곡가가 되어서 팝과 클래식, 뉴에이지 음악을 넘나들며 작곡하고 싶었다. 하지만 험난한 음악가의 길을 염려했던 부모님은 “음악은 취미로만 하라”며 허락하지 않았다. 어쩌면 그것이 인생에서 첫 번째 좌절이었을 것이다.

어려서부터 악기 연주에 관심이 많았다. 아버지가 사줬던 하모니카는 독학으로 익혔으며 친구들에게 빌려온 팬플룻·오카리나·기타도 금세 익혔다. 피아니스트는 음악가로의 길이 좌절된 뒤에도 오랫동안 가슴 속에 품었던 로망이었다. 춘천문화재단을 퇴직할 때 받았던 퇴직금으로 가장 먼저 키보드를 샀던 것도 내려놓지 못한 음악에 대한 미련 때문이었다. 음악과 함께 즐겼던 것은 책 읽기였다. 어린 시절에는 부모님도 독서를 권장해서 식탁 아래에 책을 놓고 읽으며 밥을 먹어도 결코 나무라지 않았다. 어릴 때의 경험은 향후 진로에도 영향을 끼쳤다. 부모님의 반대로 음악가의 길을 포기한 뒤 대안으로 생각해낸 직업도 ‘국어선생님’이었다.

대학에서 국어국문학을 전공했다. 미술경영을 복수 전공했고 교육학을 부전공으로 선택했다. 교육학을 부전공한 것은 교사자격증 취득을 위한 것이었다면 미술경영은 대학 때 미술 관련 과목을 수강하면서 미학(美學)에 재미를 느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세 가지 분야를 한꺼번에 공부하기란 무척 힘들었다. 늘 바빠서 종종걸음을 치며 강의실을 옮겨 다녔다. 만약 문학과 미술에 흥미까지 없었다면 버텨내지 못했을 것이다.

 

대학원 진학 때 예술경영으로 방향전환

대학원에 진학하면서 국문학과 예술경영 사이에서 고민했다. 우리나라 현실에서 두 분야 모두 앞날이 막막하기는 마찬가지였지만 가슴은 예술경영 앞에서 뛰었다. 자신이 연구·기획한 전시로 많은 사람을 행복하게 할 수 있다는 생각은 상상만으로도 가슴이 벅찼다. 물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이상을 선택한 결과가 얼마나 혹독한지 체험했지만 말이다.

대학원 생활은 매우 즐거웠다. 공부도 재밌었지만 마음껏 전시를 보러 다니고 책을 읽고 토론하며 지내는 생활이 무엇보다 재밌었다. 대학원을 수료하고 6개월쯤 수원문화원에서 근무했다. 문화원 생활은 생각처럼 행복하지 않았다. 예술보다는 인문학과 문화사업에 치중되어서 예술전시 기획자로서의 정체성을 갖고 뜻을 펴기에는 적절한 직장은 아니었다.

문화원을 퇴사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평창비엔날레 주제전시 담당 큐레이터로 입사했다. 평창비엔날레는 평창동계올림픽을 앞두고 강원문화재단에서 먼저 추진했는데 국정감사 때 지적을 받으면서 ‘강원국제미술전람회민속예술축전조직위원회’로 넘어와 추진되었던 사업이었다. 장남호는 전시를 기획하고, 작가를 연구하고 자료를 모았으며 작가 유치와 작품전시, 심지어 행정사무까지 담당했다. 밤낮없이 일하느라 힘들고 고통스러웠지만 배우는 것도 많았다. 예술전시기획자로도 단단한 내공을 다질 수 있었던 소중한 시간이었다.

평창비엔날레 사업을 끝내고 학예사 자격을 취득하기 위해 경기도미술관에 계약직으로 입사했다. 학예사 자격을 취득하려면 일정 기간 미술관 근무 경력이 필요했다. 미술관 근무는 새롭고 즐거운 경험이었지만 부득이한 사정으로 오래 있지는 못했다. 이후 전공을 살리면서도 정규직으로 일할 수 있는 안정된 직장을 찾았다. 그렇게 해서 입사한 곳이 춘천문화재단이었다. 춘천문화재단에서는 기획전시와 레지던시 운영을 담당했고, 2020년부터는 문화도시사업에서 인생공방과 전환도시 사업까지 겸했다. 젊음을 무기 삼아 밤낮없이 일했다. 그렇게 2년 가까이 일하자 정신적으로 황폐해졌다. 정신적 여백 없이 살아가는 삶이 사람을 얼마나 황폐하게 하는지 비로소 깨닫고는 문화재단을 나왔다.

 

2024년 평택문화재단과 인연 맺어

춘천문화재단을 퇴직하고 강원국제트리엔날레에 계약직으로 참여했다. 강원국제트리엔날레는 평창올림픽을 앞두고 ‘평창비엔날레’로 시작했다. 2018년부터는 ‘강원국제비엔날레’로 바꿨다가 2019년 ‘강원국제트리엔날레’로 다시 고쳐 3년간 ‘강원키즈트리엔날레’, ‘강원작가 트리엔날레’, ‘강원국제트리엔날레’라는 명칭으로 연속 개최했다. 장남호는 2021년 강원국제트리엔날레에 전시기획자로 참여했다.

2022년부터는 프리랜서로 활동했다. 세종문화재단의 한글 관련 전시 큐레이터를 했으며 2023년에 오픈한 안양공공예술 프로젝트에서는 여러 작가의 작품과 커뮤니티 아트가 전시되는 실내전시 큐레이터로 활동했다. 장남호는 안양이라는 도시 자체를 하나의 갤러리로 만들려는 ‘프로젝트’의 공공적 성격과 주제를 미술·조각·건축·디자인·퍼포먼스 등 다양한 예술 장르로 구현하려고 노력했다.

이 프로젝트로 체력적으로나 정신적으로 탈진상태가 됐다. 한동안 쉬면서 진지하게 진로를 고민했다. 문화예술계통의 일을 그만두고 기술직으로 전환할까도 생각했다. 그러던 중에 평택시문화재단 직원모집 공고를 보게 되었다. 공고문을 앞에 놓고 한동안 망설였다. 지금까지의 삶을 성찰하며 ‘어떤 삶이 가치 있고 나는 무엇을 원하는가’를 깊이 있게 들여다봤다. 아무리 생각해도 결론은 ‘문화예술’이었다. 가장 잘할 수 있는 일, 살아오면서 가장 좋았던 기억도 문화·예술 분야였다.

2024년 5월 평택시문화재단에 입사했다. 직책은 문화사업팀의 시각예술 담당이었고 현재는 시각예술팀 차장이다. 입사 후 살펴본 평택시문화재단은 시각예술 관련 인력뿐 아니라 전시 인프라가 매우 열악했다. 부임 후 이전 사업의 관람객 수와 만족도를 조사했다. 평택시의 수준은 강원도보다는 조금 나았지만 다른 수도권 도시에 비해 매우 열악했다. 장남호는 열악한 현실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였다. 그만큼 할 일이 많고 기여할 것이 있겠다고 생각했다.

현실을 숙고하고 성찰할 틈도 없이 2024년에 기획됐던 사업을 추진했다. ‘시티 오브 브릭’, ‘서각장 이규남 초청전’, ‘모네·르누아르 레플리카전’, ‘사이클 가든 예술가 초청전’, ‘헬로우 팝 아트’가 그것이다. ‘시티 오브 브릭’은 어린이들이 레고를 체험하고 작품을 향유하도록 했던 프로그램이라면, ‘헬로 팝 아트’는 전시전문기획사 ㈜CCOC와 손잡고 평택지역 최초로 팝 아트 원화와 원물을 전시했던 수준 높은 기획전이었다. 올해는 좀 더 발전시켜 어린이 오감체험전 ‘내마음은 풀(full)’, ‘쏘세지 김치찌개에 퐁당 빠지다’, ‘김흥수의 시’, ‘프리다 칼로 레플리카전’, 그리고 평택시 통합 30주년 기념 지역작가 초청 전시회였던 ‘평택 아트 브릿지’와 같은 전시를 개최했다.

2024년 5월 평택시문화재단에 입사한 장남호 시각예술팀 차장은 시티 오브 브릭, 서각장 이규남 초청전, 모네·르누아르 레플리카전, 평택 아트브릿지 등의 전시를 기획하고 추진했다.

장남호는 꼼꼼하고 치밀한 기획자로 정평이 나 있다. 그렇다고 문화재단의 모든 전시를 직접 기획·전시할 수는 없다. 실력 있는 전시·기획 전문회사나 전시기획자와의 연대가 필요하다. 지난해와 올해 추진된 전시도 대부분 전시기획사와 연대했다. 다만 외부 기획사나 기획자들에게 전적으로 일임하는 경우는 없다. 업체와 만나 기획 의도를 충분히 이해시키고 전시내용을 평택민에게 맞게 재구성하려는 노력을 끝없이 한다.

장남호에게 평택시문화재단은 시각예술 발전을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지 물었다. 두 가지 측면의 방향성을 갖고 있다고 대답했다. 첫째가 시민이 향유할 수 있는 재밌고 수준 높은 전시를 기획·유치하는 것이고, 둘째는 평택지역의 시각예술가를 조명하고 발굴·육성하는 것이라고 했다. 어린이 체험전이나 국제콘텐츠전이 앞의 경우라면 지역작가 초대전으로 개최한 ‘김흥수의 시(詩)’와 평택아트브릿지 사업이 두 번째 경우다. 이 같은 방향성은 당분간 유지될 것이다.

인터뷰를 끝내기 전 향후의 꿈을 물었다. 장남호는 앞서 제시한 수준 높은 우수작가 초청전을 지속적으로 개최하고 문화재단에서 추진하는 기획과 전시를 보다 전문화·시스템화하는 것이라고 답했다. 그래서 “그것뿐이에요”라고 물었더니 “재단에서 직원과 큐레이터를 충원해주면 좋죠”라며 웃었다.

※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김해규 평택인문연구소 소장

 

매월 넷째 주에 ‘김해규의 문화살롱’을 싣습니다. 김해규 평택인문연구소 소장이 만난 다양한 문화예술인 인터뷰를 통해 평택 문화를 향한 독자들의 관심과 이해를 높이고 공감대를 이루고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