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을 중시하는 사회로…

2025-10-29     평택시민신문

하승수 칼럼

하승수
세금도둑잡아라 공동대표
녹색전환연구소 이사

집값이 높은 동네가 ‘좋은 동네’일까? 마을공동체가 살아 있는 동네가 ‘좋은 동네’일까?

서울 강남의 고급아파트촌이 ‘좋은 동네’일까? 가진 것이 많지 않아도 이웃들끼리 오순도순 사는 동네가 ‘좋은 동네’일까?

어떻게 보면 답이 뻔해 보이는 질문이지만, 이런 질문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대한민국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라면 스스로 생각부터 다시 한번 짚어봐야 할 때다.

한국방정환재단은 어린이·청소년들의 행복도에 관한 국제비교 연구를 오랫동안 진행해왔다. 그런데 대한민국 어린이·청소년의 주관적 행복도는 늘 낮게 나왔다. 2021년에 발표된 보고서에서는 비교 대상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22개 국가 중 꼴찌다.

특징적인 것은 ‘행복을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라는 질문에 대한 변화추이다. 초등학교 시절에는 행복을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이 ‘가족’이나 ‘친구’라는 응답 비율이 높게 나온다. 관계적 가치를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런데 학년이 올라갈수록 ‘돈’이나 ‘성적 향상’ 같은 물질적 가치가 중요하다는 응답 비율이 올라간다.

문제는 관계적 가치를 중요하다고 생각할수록 주관적 행복도가 높고, 물질적 가치를 중요하게 생각할수록 주관적 행복도는 낮다는 것이다. 행복에 관한 다른 연구를 보더라도 결과는 마찬가지다. 그렇다면 대한민국의 어린이·청소년은 학년이 올라갈수록 자신의 행복에 반하는 가치관을 가지게 되는 셈이다.

이것은 어린이·청소년의 문제만도 아니다. 대한민국은 전체적으로도 자살률이 높고, 삶의 만족도가 낮은 국가이다. 외로움을 느끼는 비율도 높다. 한국리서치가 2023년 12월에 실시한 외로움에 관한 조사결과를 보면, ‘최근 한 달 동안 외로움을 느낀 적이 있냐’는 질문에 응답자의 72%가 그렇다고 답했다고 한다. 응답자의 5%는 외로움을 ‘거의 항상’ 느꼈고, 14%는 ‘자주’ 느꼈다고 응답했다. 여기서 외로움은 단순히 주관적인 감정이 아니라 도움이 필요할 때 도움받을 곳이 없는 상황을 의미하는 것일 수 있다. 사회적 관계나 지지망으로부터 단절되었기 때문에 외로운 것이다.

경제적 풍요에 반비례해
자살률 높고 삶의 만족도
낮은 대한민국, 도시와 농촌
마을공동체 문화 회복하고
활성화한다면 행복한 삶 위한
새로운 희망 만들 수 있을 것

대한민국의 1인당 국민총소득(GNI)은 1953년 67달러에서 2024년 3만6624달러로 늘어났다. 500배 이상 늘어난 것이다. 그러나 대한민국은 행복하지 못한 사회가 되어 버렸다.

물질적인 풍요 수준은 사회 전체적으로 높아졌다. 그러나 그렇게 느끼지 못하는 이유는 ‘불평등’과 ‘격차’ 때문이다. 그리고 경제성장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잃어버린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사람들 사이의 ‘관계’와 ‘유대감’이다. ‘삶과 행복을 위해 무엇이 중요한지’에 대한 감각이다. 그래서 사람들의 가치관이 행복과는 거리가 멀게 형성되고 있고, 단절과 고립으로 인한 외로움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지금 대한민국에서 절실하게 필요한 것은 ‘공동체’이다. 가족이 가장 가까운 공동체로 역할을 해야 하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가 많다. 가족 다음으로 가까운 공동체는 ‘마을’인데, 대한민국에서 ‘마을’은 약화되고 있거나 미미하다.

농촌에는 과거부터 이어진 마을공동체 문화가 남아 있지만 도시지역은 그렇지 못하다. 도시지역에서는 ‘동’과 ‘통’이라는 행정단위가 있을 뿐, 삶의 문제를 함께 해결하는 마을공동체가 존재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농촌에서도 공동체성이 약화되고 있고, 이익을 둘러싸고 마을에서 갈등이 벌어지는 일도 많다.

희망의 근거가 없지는 않다. 도시지역에서도 의료·돌봄·교육·보육·환경·문화·경제·일자리 등의 문제를 마을 차원에서 해결하기 위해 다양한 활동이 벌어지고 있다. 농촌에서는 마을을 지키고 활성화하려는 노력이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국가나 지방자치단체가 해야 할 일은 이런 활동들을 보장하고 지원하는 것이다. 그 시작은 마을의 가치를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이다. 그것은 생각을 바꾸는 것에서부터 시작될 수 있다.

마을이 살아 있는 곳이 ‘좋은 동네’이지 집값이 높은 곳이 ‘좋은 동네’가 아니다. 태초에 마을이 있었고, 마을에서 의논해서 삶의 문제를 풀어가는 것이 민주주의의 시작이었다. 지금과 같은 위기의 시대에도 마지막에 기댈 곳은 마을밖에 없다.

정치공동체의 구성원리에 대해서도 생각을 바꿔야 한다. 마을이 모여서 지역이 되고, 지역이 모여서 국가가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