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의 고등어 추어탕

2025-09-30     평택시민신문

평택읽기

이상남
한국문인협회 한국시인협회 
시와사상문학회 본격수필가협회 회원

저 익어가는 고등어를 나는 어머니라 부른다. 뼈와 살이 오롯이 발라지고 기다리는 시간은 더디게 간다. 뭉글뭉글 떠오르다 국물을 파고드는 알맹이들의 사연. 비릿하게 들뜨는 추임새마다 다문다문 뿌려지는 재피가루. 녹아내린 뼛속 진국을 풀어헤치자 버석거리는 무청 시래기, 바람 소리가 들린다. 뼈마디마다의 현, 삐걱거리는 관절이 떨리며 불러 모으는 자식들. 국물의 노래는 하나도 버릴 게 없다. 오래 끓을수록 빛이 나는 눈물. 체로 걸러진 뼈의 노래, 얼큰한 고등어 추어탕을 받아 안고 덜컥, 어머니가 걸려 명치끝으로 흘러내리는 걸쭉한 국물, 뜨겁게 스며드는 그리움을 나는 또 어머니라 부른다.

창밖으로 서늘한 빗줄기가 거세지자 나는 불현듯 어머니를 떠올렸다. 뜬금없이 가을비가 찾아오는 날이면 예고 없이 끓여주시던 어머니의 ‘고등어 추어탕’이 떠올라 주섬주섬 우산을 받쳐 들고 현관을 나선 나는 재래시장으로 가서 살이 통통하게 오른 고등어 몇 마리를 샀다. 기묘한 설렘을 안고 돌아오는 길, 작은 행복이 모락모락 피어나는 느낌이 이런 것이었을까. 엄마의 사랑이 한없이 고픈 오늘 같은 날, 엄마의 손맛이 오롯이 담겨있던 그 음식, 고등어 추어탕을 직접 만들어보고 싶었던 것이다.

어머니의 흔적이 여전히 남아있는 
우리 아지트 그 시골집으로 가서 
어머니의 사랑이 듬뿍 담긴
고등어 추어탕을 
보글보글 끓여보고 싶다

 

형제들 한자리에 모여 잠시라도 그 사랑
그 추억을 나누어 먹고 싶은 것이다

손질한 생고등어를 뭉긋이 익히고 야들야들한 그 살은 잔뼈까지 꼼꼼히 발라낸다. 고사리는 물에 충분히 불리고 시래기나물은 된장으로 조물조물 간을 한다. 대파는 크고 실한 녀석들로 골라 굵직굵직하게 어슷하게 썰어준다. 대파, 마늘, 기름을 둘러 달달 볶다가 고춧가루를 넉넉히 넣고 볶아내면 고추기름 파기름이 적당히 어우러진다. 발갛게 물든 기름과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진한 향 위로 고등어를 삶아낸 물을 붓고 준비된 나물, 고등어 살을 슬쩍 넣어주면 보기 좋게 물든 고추기름 마블링이 얼룩얼룩 떠다니는 고등어 추어탕의 비주얼이 서서히 드러난다. 이제부터는 마음 놓고 푹푹 익어가는 시간. 나만의 방법으로 어머니를 만나는 뜨끈뜨끈한 시간이 된다.

어머니의 사랑은 그렇게 시간과 장소를 개의치 않고 문득문득 살아난다. 해마다 추석 명절이면 벌어지는 어머니 계시던 시골집 광경. 한마디로 ‘와글와글’이 어울리는 표현이다. 아들, 딸 육 남매가 각자의 가족을 대동하고 들어서면 엄마의 정신은 이미 가출상태가 된다. 손자, 손녀들 하나하나 쓰다듬다 부엌에 들러 준비한 음식 놓치지 않게 챙기는가 하면 마당으로 뒤란으로 종종거리며 허리 무릎이 불편해 ‘아구구, 아구구’앓는 소리를 하면서도 이것저것 챙기기 바쁘다. 모처럼 들뜬 남매들은 엄마를 가운데 두고 각자의 어릴 적 이야기, 엄마가 털어놓는 동네 친구들 이야기, 둘째가 수학여행에서 넘어져 응급실로 달리던 그날의 다급한 상황까지, 매번 반복되는 이야기에도 흥미진진하게 또 추임새를 넣으며 맞장구를 쳐준다. 와글와글 아쉬운 시간을 보내고 집으로 돌아와 묵직한 가방을 열면 봉지 봉지마다의 사랑, 어머니 사랑이 흘러넘친다. 꽁꽁 얼린 추어탕 한 봉지, 한 장 한 장 정성을 담은 깻잎김치, 노랗게 익은 콩잎김치, 노릇노릇하게 구운 돔배기 고기, 정갈하게 볶아낸 박나물, 텃밭에서 오밀조밀 솎아낸 부추에 설익은 단감까지.

긴 연휴가 이어질 이번 추석 명절, 아직도 3년 전 먼 길 떠나신 엄마 없는 명절을 한없이 쓸쓸해하는 소중한 피붙이 우리 남매들을 위해 이번엔 내가 엄마가 되어 엄마의 사랑을 선물하고 싶다. 가족이 모두 모이는 날이면 엄마가 종종 끓여 주시던 어머니의 그‘고등어 추어탕’을 말이다.

각자의 삶에 쫓기느라 바쁘게 살아가고 있는 자식들의 마음 깊숙한 곳에 자리 잡고 샘물처럼 그 사랑, 그 추억 피워내고 계시는 어머니 아버지로 인해 오늘도 우리들은 씩씩하게 잘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올해도 해외로 여행을 떠나는 사람들도 많겠지만 나는 또 하나의 소중한 추억을 만들고 싶은 것이다. 어머니의 흔적이 여전히 남아있는 우리들의 아지트, 그 시골집으로 가서 어머니의 사랑, 그 ‘고등어 추어탕’을 보글보글 끓여보고 싶다. 형제들 한자리에 모여 잠시라도 그 사랑, 그 추억을 나누어 먹고 싶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