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파탄약고 공간재생의 해답을 찾다
지역공동체활성화프로젝트 일환 인천·부천 등 국내 현장 답사 진행
2026년 말 반환을 앞둔 평택 알파탄약고가 ‘전쟁의 상징’에서 ‘평화의 공간’으로 거듭날 수 있을까. 고덕국제신도시 한가운데 자리한 존치예정인 14만8156㎡ 규모의 이 땅을 두고 평택시는 ‘세계적 문화예술공원’을 약속했지만, 정작 시민들은 70여 년간 단절된 이 공간이 무엇인지조차 제대로 알지 못한다.
반환까지 2년여를 남겨둔 지금, 평택시민신문은 알파탄약고 공간재생사업의 근거 마련과 범시민 거버넌스 구축을 지역사회에 제안하고자 한다. 이에 지역공동체활성화프로젝트지원을 통한 ‘반환 앞둔 알파탄약고 공간재생’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가장 먼저 국내외 사례분석을 기반으로 한 시민홍보교육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전문 강사진 구성을 통해 교육전문가 8~10명을 양성하는 체계적 접근을 시도하고 있다. 이 일환으로 9월 3일 군사시설의 문화공간 전환 모범사례인 부천 아트벙커B39, 인천 캠프마켓, 코스모(Cosmo)40 등 3곳에 대한 현장답사를 진행했다. 과거의 흔적을 보존하면서도 현재의 문화적 기능과 조화롭게 연결해 성공적인 공간 재생 사례로 주목받고 있는 공간들을 둘러봤고, 그 내용을 소개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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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옥신에서 예술로, 부천 아트벙커B39
부천시 삼정동에 위치한 ‘아트벙커B39’는 2018년 6월 1일 ‘삼정동 쓰레기 소각장’이었던 과거를 벗고 복합문화예술공간으로 새롭게 문을 열었다.
이곳은 1997년 환경부 조사에서 기준치의 20배에 달하는 다이옥신이 검출되어 ‘다이옥신 파동’으로 불리며 시민들의 큰 우려를 샀던 장소다. 주민들의 끈질긴 폐쇄 운동 끝에 2010년 대장도 소각장으로 기능이 통합되면서 문을 닫았다. 이후 문화체육관광부의 ‘산업단지 및 폐산업시설 도시재생 프로젝트’에 선정되어 8년 만에 문화공간으로 재탄생했다.
총대지면적 1만 2663.70㎡에 건축면적 3307.29㎡ 규모로 지하 1층 지상 6층의 공장건물과 지하 1층 지상 2층의 지원시설로 구성되어 있다.
전시공간, 카페 등 시민 일상에 스며들다
이곳에 들어섰을 때 가장 먼저 시민을 맞이하는 중앙정원은 기존 건물의 벽체 일부를 철거해 만든 이 공간의 핵심이다. 한옥의 사랑채 개념을 도입해 각각의 공간이 하나의 액자가 되어 주변 환경을 감상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 탁 트인 느낌과 동시에 프라이버시를 보장하는 절묘한 균형을 이루고 있다.
건물 곳곳에는 여러 개의 독립된 전시공간도 마련되어 있다. 다양한 전시, 공연은 물론 영화, 드라마, 웨딩 등 다양한 촬영지로도 활용된다는 점에서 공간의 심미적 완성도를 확인할 수 있었다.
과거 시설의 흔적이 남아있는 중앙제어실, 전기실 등은 공간의 역사성을 보여주는 중요한 요소로 보존되고 있다. 크레인 조정실 같은 산업시설의 특징적 공간들이 새로운 문화적 맥락에서 재해석되고 있다. 기존 시설의 실용적 공간들은 방문객들의 편의를 위한 휴게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이 공간의 가장 인상적인 점은 과거와 현재가 자연스럽게 공존하는 방식이다. 산업시설로서의 정체성을 완전히 지우지 않으면서도 현재의 문화적 기능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다. 조명과 같은 디테일도 다양한 작가의 작품으로 승화시켜 예술적 가치를 더하고 있다. 환경오염의 상징에서 창의와 예술의 공간으로 완전히 변모해 현재는 부천팔경 중 한 곳으로 인정받을 정도로 지역의 대표적인 문화공간으로 자리매김했다.
군수기지가 시민공간으로 ‘부평 캠프마켓’
인천 부평구 부평동 일대에 자리한 캠프마켓은 대한민국 영토이면서도 80여 년간 우리의 주권이 미치지 못했던 특별한 의미를 지닌 땅이다. 현재는 ‘캠프마켓 오늘&내일’이라는 이름으로 시민들에게 개방되어 새로운 역사를 써가고 있다.
캠프마켓의 역사는 일제강점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1939년 일본은 이곳에 한반도 유일의 조병창인 ‘인천육군조병창’을 건설했다. 광복 후 1945년 9월, 미군이 이 일대를 접수해 ‘애스컴시티(ASCOM CITY)’를 조성했다. 주한미육군병창본부 역할을 하며 캠프마켓을 포함한 7개 군사도시가 들어섰다. 기지 내에는 각종 군사시설은 물론 식당, 클럽, PX, 병원, 극장 등 미군들의 생활편의시설이 완비되어 하나의 독립된 도시를 이뤘다.
1973년 애스컴시티가 해체되면서 이곳은 ‘캠프마켓’으로 축소되어 운영됐다. 헌병대와 통신대, 제빵공장 등 일부 시설만 남아 2021년까지 48년간 더 운영되었다.
시민의 힘으로 되찾은 땅
1990년대부터 이어진 시민사회의 끈질긴 노력이 결실을 보았다. 1996년 ‘부평미군기지 반환운동’이 본격화하고, 2002년 한미연합토지관리계획(LPP)에 의해 반환이 확정됐다. 이후 2019년 A·B구역, 2023년 D구역이 차례로 반환되어 완전한 주권 회복을 이뤘다.
현재 방문할 수 있는 공간은 B구역 운동장부지로 2021년 5월부터 개방됐다. 2024년 9월에는 토양정화가 완료된 5200㎡ 규모의 공간이 추가로 개방되었고, 2025년 7월부터 1만1300㎡가 더 확대될 예정이다.
캠프마켓 부지를 둘러보면 과거의 흔적과 새로운 희망이 교차한다. 토양정화 작업이 단계적으로 진행되고 있으며, A구역은 이미 정화가 완료됐다. D구역은 2025년 6월부터 공원 용도에 적합한 기준으로 정화 작업에 들어갔다.
인천시는 이곳을 ‘자연과 문화, 역사와 미래가 함께하는 시민공원’으로 조성할 계획이다. 2017년부터 지속되고 있는 ‘시민생각찾기’ 프로그램을 통해 시민들의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며 공원 조성 방향을 모색하고 있다.
공간 재생 위한 동력에는
지역주민 의지가 핵심 요소
세 공간이 제시한 모델에서
보존과 재해석의 중요성 배워
역사성과 현실성 사이 균형 필요
과거와 현재 공존도 필수적 요소
산업유산에서 문화공간으로 ‘코스모40’
인천 서구 가좌동에 있는 ‘코스모40’은 1970년대부터 2016년까지 46년간 화학공장으로 사용되던 건물이 지역의 문화예술 거점으로 재탄생한 공간이다.
코스모화학 공장단지가 인천 가좌동에 뿌리를 내린 것은 1970년대 초였다. 1968년 설립된 한국지탄공업이 한국티타늄공업으로 사명을 변경하며 인천에 공장을 건설한 것이 시작이었다. 2003년 코스모화학으로 다시 사명을 바꾼 이 회사는 이산화타이타늄을 국내 유일하게 생산하는 기업이었다. 이산화타이타늄은 우주선, 전투기부터 페인트, 타이어, 신발, 제지, 선크림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게 사용되는 기초 소재다. 1995년 ‘5000만불 수출의 탑’을 수상할 정도로 국가 경제에 이바지했지만, 동시에 환경오염의 원인으로 지목되며 지역사회와 복잡한 관계를 맺어왔다. 이후 2016년 공장이 울산으로 이전하면서 남은 건물 40동을 보수하고 새로운 공간으로 재탄생시켰다.
옛것을 지킨 독창적인 증축 방식
코스모40의 가장 흥미로운 점은 신구 건물의 관계 설정이다. 재생건축을 현행법에 맞추려면 새 단열재와 내화페인트로 기존 건물의 매력적인 흔적들을 모두 지워야 한다는 딜레마가 있었다. 건축가는 이 모순을 ‘완벽한 분리’라는 개념으로 해결했다.
신관은 연속된 하나의 고리 모양으로 설계되어 40년간 사용된 공장 안으로 삽입됐다. 이 고리는 주로 로비와 수직동선 역할을 하며, 3층에서만 공장 안으로 삽입된다. 기존 공장의 기둥을 둘러싸고 새로 형성된 기둥묶음에 의해 지지가 되는 구조적으로 완벽하게 독립된 증축이다.
코스모40은 단순한 리모델링이나 용도 변경을 넘어선 진정한 ‘재탄생’의 사례다. 산업유산의 물리적 보존과 새로운 문화적 가치 창출이 조화롭게 이뤄진다. 산업도시의 상처를 치유하고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하는 공간으로 거듭났다.
알파탄약고에 대한 시사점
세 공간에서 확인한 가장 중요한 시사점은 ‘맥락의 보존과 재해석’이다. 아트벙커B39는 과거와 현재가 자연스럽게 공존하는 방식으로 산업시설의 정체성을 완전히 지우지 않으면서도 현재의 문화적 기능을 충실히 수행하는 모델을 제시했다. 부평 캠프마켓은 시민사회의 적극적 참여가 공간 재생 성공의 핵심 요소임을 보여주었고, 역사적 가치와 현실적 제약 사이에서의 선택이라는 모든 기지 반환 지역의 공통 과제를 확인했다. 코스모40은 신구 건물의 구조적 완전 분리라는 혁신적 방법으로 기존 건물의 원형 보존과 현행 법규 준수를 동시에 해결하는 해법을 제시했으며, 지역 주민들의 의지가 공간 보존에 결정적 역할을 한다는 점을 입증했다. 알파탄약고의 경우 군사시설로서의 견고함과 상징성을 문화공간의 새로운 매력 포인트로 전환하되, 지역주민들의 일상적 문화활동을 지원하는 실용적 기능과 관광객들을 끌어들이는 상징적 의미를 동시에 갖추는 것이 성공의 열쇠가 될 것이다. 알파탄약고 역시 언젠가 부평 캠프마켓과 같은 기로에 설 것이고, 그때 평택 시민들의 선택과 실천이 두 도시를 잇는 공간 재생의 새로운 모델을 만들어갈 것이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