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수현 놀이활동가
놀이로 쌓아온 아름다운 공동체 ‘세교동 달밤놀이’
세교근린공원에는 동네 아이들의 놀이 대장이 있다. 화요일마다 아이들은 ‘오늘을 뭐 하고 놀까’하는 기대에 부풀어 공원을 찾았고 이 기대는 한 번도 어긋난 적이 없다. 대장은 보물보따리를 풀어내듯 새롭고 재미있는 놀이를 알려주고 함께 놀아준다. 2021년 시작된 ‘세교동 달밤놀이’는 어느새 5년을 맞았다. 그리고 세교동 달밤놀이가 중심이 되어 묶어낸 마을공동체는 따뜻하고 풍성한 모습으로 성장해왔다. 세교동 아이들의 대장인 놀이활동가 박수현씨(50)를 만나 놀이의 소중함과 놀이가 공동체에 미치는 영향에 관해 들어봤다.
먼저 어떤 분인지 자신을 소개한다면.
2003년 결혼해 세교동에서 살게 됐고 슬하에 아들 하나 딸 하나 남매를 뒀다. 고향은 충북 음성이다. 어린 시절 자란 마을이 시내에서 5분 정도 떨어져 있고 산과 과수원에 둘러싸인 곳이었다. 자연에서 놀며 성장한 경험이 있어선지 우리 아이도 그렇게 컸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다. 첫째가 초등학생이 되고 여름방학 때 생태캠프에 보냈다. 생태체험을 다녀온 이후 놀이터에서 놀기만 하던 애가 곤충을 잡으러 다니더라. 당시 생태교육이 초창기라서 배우고 싶어도 지도할 생태활동가가 부족했다. 생태체험에 관해 문의했더니 푸름지기라는 생태활동가 양성교육이 있으니 참여하라고 권했다. 아이에게 생태에 관해 더 알려주고 싶은 마음에 참여했다. 그렇게 푸름지기 3기 교육을 듣고 생태활동가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생태교육이라고 하면 전문 지식이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컴퓨터 전공이라 생태는 생소한 분야였다. 대신 어린 시절 시골에서 자라며 자연 속에서 놀던 경험이 풍부했다. 제가 사는 세교동 아파트단지도 조금만 살피면 생태공간이 많았다. 조금만 걸어가면 천연기념물인 백로도 볼 수 있었다. 잠자리·사마귀 같은 곤충도 있고 곳곳에 나무와 풀도 다양했다. 봄에 피는 꽃이라든지 나비가 번데기에서 어떻게 탈피하는지 같은 내용을 굳이 가르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뭐를 가르치려 하지 말고 애들을 따라다녔다. 그렇게 애들이 자연에서 놀면서 생태를 배우게 했다.
생태교육을 하다가 놀이에 관심을 기울이게 된 이유가 있었는가.
당시는 초창기여서 생태의 중요성을 알리고 설명하는 것에 중점을 두는 경향이 있었다. 강사가 설명하고 아이들이 둘러앉아 듣는 식이라고 해야 하나. 그러던 중에 생태교육 강사로 숲밧줄놀이를 가르치는 분이 오셨다. 밧줄과 매듭을 이용해 숲에 생태적 놀이공간을 만들어 즐기는 놀이였다. ‘생태교육을 놀이로 풀어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후 그 강사분이 사는 남양주로 놀이를 배우러 다니기 시작했다. 2017년 ‘놀이하는사람들’ 평택안성지회가 창립하면서 강사양성 과정에 참여해 다양한 놀이를 배우고 놀이강사가 됐다.
요즘 아이들은 학교와 집, 학원을 오가느라 놀 시간이 없다. 대다수 부모는 “놀지 말고 공부하라”고 한다. 놀이하는 시간을 공부하는 시간보다 가치 없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이런 현실에서 놀이에 주목해야 할 이유를 알려달라.
아이는 놀면서 성장한다. 아이에게 놀이는 일종의 밥이라고 생각한다. 재미있게 놀면서 자유롭게 이런저런 경험을 해본 아이는 신체적·사회적으로 건강하게 성장한다. 잘 놀아본 아이들은 살다가 어려운 일에 맞닥뜨려도 충분히 감당하는 힘을 키울 수 있다.
관계 맺기와 의사소통 능력을 키우는 데에도 도움을 준다. 술래잡기에서 술래가 된 아이가 “나 안 놀아” 할 때가 있다. 예쁨받고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강한 아이들은 울거나 친구를 때리고 꼬집는 등의 방식으로 감정을 표출한다. 하지만 친구들과 어울려 놀려면 순간의 감정을 추스르고 상황을 인정해야 한다. 가위바위보나 내기에서 졌어도 패배한 건 아니니 놀면 된다는 사실을 머리로 안다 해도 행동에 옮기기는 쉽지 않다. 6개월 정도 지나면 아이들이 눈에 띌 정도로 변화한다. 이런 과정을 통해 아이는 상대에게 공감하는 법을 배우고 어떻게 하면 자신이 존중받는지를 깨닫게 된다.
세교동 달밤놀이는 어떻게 시작되었나.
2021년에 평택시 창의채움교육센터가 진행한 초・중학생 대상 마을교육 프로그램에 공모하게 됐다. 마을의 이모·삼촌들이 아이들에게 특색 있는 교육을 제공하고 관계망을 형성하자는 취지로 기억한다. 마침 둘째 아이가 동네 아이들과 함께 놀 방법이 없을까 고민하고 있던 때였다. 아이들이 학원을 마치고 오후 6시쯤 세교근린공원에 모여 함께 노는 프로그램을 계획하고 ‘세교동 달밤놀이’라고 이름 붙였다. 어렸을 때 골목과 공터에서 놀았던 것처럼 동네 아이들과 맘껏 놀았다. 고무줄놀이·공기놀이·비석치기·오징어·얼음땡 등등 놀거리는 무궁무진하다. 재밌게 놀다 보면 주민들이 “어렸을 적 저렇게 놀았지”라며 지켜보셨다. 잘 논 아이들이 잠도 잘 자고 밥도 잘 먹으니 엄마들 반응도 좋았다. 엄마들은 공원에 나와 아이 노는 모습을 보며 수다 떨면서 친해졌다. 재미와 보람을 느끼며 잘 놀고 있었는데 지난해 마을교육 프로그램 지원이 끊겨 버렸다. 그러자 엄마들이 “십시일반 지원금을 낼 테니 달밤놀이를 계속했으면 좋겠다”고 하는 거 아닌가. 놀이지원금으로 운영했을 때 새로운 고민이 생겼다. 부모가 지원금을 내지 않는 아이가 달밤놀이에 오면 어떻게 할까. 협의 끝에 누구나 와서 놀게 했다. 놀이지원금은 ‘달밤놀이’라는 공공의 활동을 위해 쓰기로 한 것이니 그 혜택은 원하는 모두가 누리게 하기로 뜻을 모았다.
5년간 함께 놀면서 얻은 성과가 있다면.
함께해서 좋은 일이 점점 늘어났다. 처음엔 아이가 놀이의 즐거움을 알게 되고, 어른은 어린 시절의 추억을 되살리는 시간이었다. 이런 시간이 쌓이면서 이웃의 관심이 높아졌고 놀이뿐 아니라 교육과 체험이 한층 다양해졌다. 비나 눈으로 공원에서 놀지 못할 때를 대비해 두레생협 세교점과 현대향촌아파트 관리사무소가 실내공간을 무상으로 후원하고 있다. 달밤놀이에 참여하는 아이의 부모는 자신의 재능을 기부해 생태놀이·요리·목공·공예·역사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다른 동네로 이사 갔어도 화요일에 아이를 세교공원으로 보내는 걸 잊지 않는 분도 있다. 또 가족들이 함께하는 여름·겨울 캠프, 마을 탐방을 통해 추억을 공유한다.
기억 나는 추억이 있는가.
처음 캠프를 갔을 때 큰 종이에 규칙을 써서 아이들에게 알려줬다. 그랬더니 한 아이가 종이를 달라고 하더니 아이들끼리 의논해 새로운 규칙을 적어왔다. 아이가 적어온 ‘잔소리하지 않기’ ‘음식 남겨도 뭐라 하지 않기’ 등의 규칙을 보고 머리를 크게 얻어맞은 느낌이 들었다. 처음 알려준 규칙은 어른들의 희망사항이었다. 휴대전화 하지 않기, 놀이에 꼭 참여하기, 밥 잘 먹기 등등 어른들이 편해지려고 정한 규칙이었던 거다. 어른들의 일방적 지시에 반발하지 않고 자신들의 의견으로 대처하고 공감을 얻어내는 모습에 흐뭇함을 감출 수 없었던 기억이 난다.
하나 더 있다. 지난 여름캠프에서 옛날 뽑기판으로 뽑기를 했는데 열기가 매우 뜨거웠다. 어른들이 몇천원도 안 되는 상품을 뽑으려고 눈에 불을 켜고 도전했다. 아이들에게 결과나 상품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과정에서 느끼는 흥분되고 조마조마한 긴장감을 알려주자는 의도였는데 제대로 전달됐는지는 모르겠다. 아무튼 즐거웠다.
아이들이 대장이라고 부르던데, 이유가 있었는지.
특별한 이유는 없다. 처음에는 ‘이모’라고 했는데 언제부터인가 대장 이모로 부르다가 어느 순간 대장이 됐다. 이제는 엄마들도 대장이라 부른다. 아이에게 놀이가 필요하듯 어른에게도 놀이가 필요하다. 아이 하나 보는 게 어디 쉬운 일인가. 모두 힘들고 지치는 순간이 있었다. 어른이라고 해서 감정을 잘 추스르고, 자신의 실수를 선선히 인정할까. 그렇지 않다. 공감대가 생기고 마음이 통하고 그렇게 함께 어울려 놀면서 친해지고 터놓게 됐다.
앞으로의 계획이 있다면.
평택사회적경제·마을공동체지원센터가 운영하는 마을활동가 ‘씨앗 과정’에 참여하고 있다. 마을공동체는 주민이 마을 문제를 스스로 고민하고 해결하기 위해 모인 자발적 모임이라고 한다. 개인주의가 심화되고 관계가 파편화되는 도시에서 공동체성을 회복하고 주민이 주체가 되는 마을은 어떤 모습일까. 이 과정에서 놀이는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 이에 대한 해답을 제시하는 세교동 달밤놀이가 되도록 더 노력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