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이야기

2025-01-22     평택시민신문
박준서
성균관 전례연구위원

‘설’ 또는 ‘설날’은 음력으로 1월 1일이다. 왜 정초를 ‘설’이라 했을까? 그 말 뿌리에 대한 확실한 정설은 없으나 이설은 많다. 그 해의 첫날이라 한문으로는 원일(元日)이라 하고 설날 아침을 원조·원단(元朝·元旦)이라 한다. 가정의례에서는 정조(正朝)라 한다. 옛날에는 해가 길어지기 시작하는 동지날을 설날로 했었다. 현재도 동지가 지나면 새해로 간주해 새해의 행사를 하는 일들이 있고, 간지로 첫 번째 순서인 자월(子月, 쥐띠)이 정월이 아니고 동짓달(寅月)인 것으로 알 수 있다.

 

음력 1월 1일 새해 첫날인 설은
새로운 몸과 마음으로 복을 부르며 
근신하는 날이라는 뜻에서 유래 
조상에게 차례를 드리고
부모 형제자매, 가까운 이웃어른에게 
새해 인사를 드리는 날

원단은 1년의 첫날이다. 세수(歲首) 또는 연수(年首)라고도 하며 일반적으로 설 또는 설날이라고 한다. 조선 선조 때 문헌 <지봉유설>에서는 “우리나라 옛 습속에 정초와 맨 첫 자(子)·오(午)·진(辰) 날을 신일(愼日), 곧 몸을 사리는 날이라 했는데, 생각건대 용은 비를 몰아오고 말은 곡식을 나르고 쥐는 곡식을 축내니 연초마다 제(祭)를 베풀어 백 가지 일을 폐하고 즐기니 설이라 하고, <동국여지승람>을 인용하여 설이란 서러워 금기한다는 뜻”이라 적고 있다. 곧 섧다·서럽다가 설의 어원이라는 설을 내세우고 있다.

설은 한자로 신일(愼日)이라고도 쓰는데 이는 근신하여 경거망동을 삼간다는 뜻이다. 그래서 마음이나 행동을 근신(謹愼)한다는 뜻인 사리다의 ‘살’에서 비롯했다는 설도 있다. 이는 묵은 1년이 지나가고 설날을 시점으로 하여 새로운 1년이 시작되는 바, 1년의 운수는 그 첫날에 달려 있다고 생각했던 옛사람들은 새로운 정신과 몸가짐으로 요사스런 귀신을 물리치고 복을 부르는 벽사초복(辟邪招福)을 기대하였으며 연초인 설날에 몸과 마음의 근신을 꾀하고자 했던 뜻이라 할 수 있다.

더러는 해의 첫날이라 낯이 설어 설날, 나이 먹기가 서러워 설날이라고도 하며 새로운 해가 시작되는 날이라 해가 서는 날(立歲日)이라는 뜻으로 설날이라고 하는 주장도 있다. 한때는 음력 설날을 ‘민속의 날’로 지정했다가 ‘설이면 설이지 민속의 날은 뭐냐’는 여론에 밀려 다시 제 모습을 갖추었다.

설날 아침 일찍 세찬(歲饌)과 세주(歲酒)를 마련하여 사당이나 집에서 기제사를 받드는 모든 조상에게 제사를 지내는 것을 정조차례(正朝茶禮)라고 한다. 차례 때는 원근에 있는 자손들이 장손 집에 모여들어 함께 지내는데, 옛날부터 오랜 관습에 의하여 설날과 추석은 반드시 고향에 돌아가서 가족과 함께 차례를 지내야 하며 차례가 끝난 후 조부모를 비롯한 부모·백숙부모·형제자매 등 차례대로 절을 하고 새해 첫인사를 드리는데 이를 세배라고 한다.

집안에서 세배가 끝나면 차례를 지낸 세찬과 떡국으로 아침 식사를 마치고 가까운 일가친척과 이웃 어른들을 찾아뵙고 세배를 드린다. 흔히들 설날 인사를 ‘덕담한다’고 하는데 덕담은 어른이 아랫사람에게 하는 것으로 새해를 맞이하여 이루어야 할 일을 긍정적으로 말해주는 것이다.

가까운 어른에게는 말로 인사를 하는 것이 아니고 세배를 하면 되고, 친척이 아닌 어른에게는 세배 또는 말로 인사를 하는데 그것은 덕담이 아니라 새해 인사이다. 그 내용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가 아니라 건강을 빌어드리는 말로 인사를 하는 것이다. 즉 “새해에도 기력 강녕하세요”가 어른에게 여쭙는 새해 인사였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는 상대를 잘 모르는 경우에 듣기 좋게 하거나 불특정 다수에게 공개적으로 하는 말이다.

옛날에는 일가 어른이 먼 곳에 살 경우에는 수십 리 길을 걸어 찾아가서라도 세배를 드리는 것이 예의로 되어 있으며 세배를 할 줄 모르면 교양 없는 사람으로 취급을 받았다. 먼 곳에는 정월 보름까지 찾아가서 세배하면 인사에 크게 어긋나지 않는 것으로 되어 있다.

설이 되면 민족 대이동이 일어나는데 몸 사릴 설이건 서러울 설이던 간에 설날 풍속은 한국인의 의식 속에 수천 년을 이어왔다. 또한 사람이 조부모, 부모 그리고 연장자에게 새해를 맞이하여 세배를 하는 것은 인륜이요, 질서 있는 일이다. 올해엔 세배를 제대로 드려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