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한기
문화산책
혹한기
사십만 원짜리 옷과
사만 원짜리 옷의 차이를 묻는 학생에게
명쾌한 답을 내리지 못하는데
입고 있던 나의 옷이 설렁해지는 까닭을 알 수가 없다
다만 무관심과 무욕을 걸치고 사는 치장에
쐐기가 박히는 것 같다
갑자기 온몸으로 한기가 몰려든다
사백만 원짜리 옷을 입어도
쉽게 데워지지 않을 것 같다
사람의 온기가 옷값 따라 오르내리지는 않을진데
마음 한 모서리에 잠복하고 있었을
비천한 생각 하나가 미동을 시작한 모양이다
여자의 속성이 고개를 드는지
거리를 오가는 값비싼 옷들 쪽으로 시선이 간다
그러면 그동안 나를 받쳐주던 무관심과 무욕은 다
허위의 탈을 쓰고 있었단 말인가
혹한의 거리에서
자꾸만 빗나가는 시선을 끌어들이며
쉽게 사라지지 않는 속성에 쐐기를 박는다
* * *
양파와 제자
양파를 한 꺼플 두 꺼풀 벗겨본다
똑같은 색 똑같은 모양으로
벗길 테면 벗겨보라는 심산心算으로
나를 대하고 있는 양파
눈물과 콧물을 다 흘리게 하고는
마음까지도 흔들어놓는다
모든 숙제를 내준 나의 모습과
제자의 모습이 겹쳐진다
숙제를 내준 자와 안 해온 자의 위치는
참으로 묘하다
양파를 까려고 애쓰는 모습에서
나의 모습이
제자의 모습에서
벗길 테면 벗겨보라는 양파의 모습이
떠오르는 이유는 무얼까
모면해보려는 제자의 눈빛에서
위장한 양파의 모습을 발견한다
이것이 살기 위한 한 점의 몸부림이란 것을
알게 된 오늘
양파를 까며 찔끔 눈감아 보련다
제자를 보며 찔끔 눈감아 주련다
원유희 시인
한경대 미디어문예창작학과 졸업
월간 <문학공간> 등단
평택사랑 전국백일장 제24·25회 입상
국어 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