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음 풍년 한가위

2024-09-11     평택시민신문

평택읽기

권혁찬
시인
전 평택문인협회 회장

지난해는 태풍과 이상기온으로 냉해를 입은 과일이 금값으로 치솟아 소비자들은 비싼 과일값에 어려움을 겪기도 했던 한 해였다. 그런데 올해도 예기치 않은 이상고온 현상으로 채소며 과일값이 만만치 않은 추석이 될 것 같다. 유례없는 긴 더위로 열대야가 끝없이 이어지던 때가 매우 원망스러웠다. 장장 40여 일이 넘도록 이어진 기록적인 열대야가 사라진 지 얼마 안 되어서인지 시원한 가을바람이 실감 나지 않는다. 이러다 다시 더워지면 어쩌나 하는 걱정까지 하게 된다. 가을로 접어든다는 입추를 지나고 더위가 서서히 물러간다는 처서를 훌쩍 넘기면서도 좀처럼 사그라들 줄 모르던 무더위가 어디로 사라졌는지 추적을 좀 해 보고 싶은 마음이다. 초복 중복 말복이라는 삼복이 마치 태양에 녹아 버린 듯 맹위를 떨치던 7월의 불볕과 8월의 열대야를 합치면 아마도 동식물이 멸종되지 않을까 하는 걱정도 들었었다.

 


올해 유례없는 긴 더위로
자연 앞에 가장 나약한 인간에게는 
인내밖에 없었다는 사실 깨닫고 숙연해져

 

긴 코로나 시국에서 벗어나 
처음 맞이하는 한가위
일 년 중 가장 큰 행복 안겨주는 
풍요로운 민속 잔치로 이어지길

자연 앞에 가장 나약한 인간들이 선택해야 할 카드가 인내밖에 없었다는 사실 앞에 망연자실 숙연해지기도 했었다. 그저 흐르는 땀을 닦아 내리면서 속수무책으로 하늘을 원망만 하고 있었던 혹서의 재앙 같았던 지난 일이 아직도 선풍기 바람 끝을 떠나지 않고 있는 듯한 두려움이 쉽사리 사라지지 않는 데에는 그럴만한 사연과 이유가 충분하다. 장장 3년여의 긴 고통의 시간이 암흑 터널이 되어 코로나 정국에서 겨우 벗어나자마자 긴 한숨을 무더위로 쓸어 덮었던 순간들이 지난 인고의 세월보다 더 고통스러웠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담장 밑 대추나무의 열매가 하루가 다르게 굵어지면서 그 실함을 과시하고 있다. 보기만 해도 군침이 돌 정도다. 두서너 접의 수확을 안겨주던 우리 집 감나무가 동해를 입은 지난해 결실은 딱 3개였었지만 올해엔 두 접은 확실히 수확할 수 있을 만큼 주렁주렁 익어가고 있는 것을 보면 풍년이 확실하다. 얼마만의 만족이고 기쁨인가? 황금 들판의 벼들이 추수를 시작하면서 곳간이 풍성해지고, 빨간 사과가 그 빛을 더해가면서 농부의 주머니를 부풀려 풍년을 일깨우고 있다. 마트에 진열된 햇과일 등을 고르면서 소비자의 가슴도 뿌듯하다. “역시 농사가 잘되어야 해” 마음속으로 되뇌기도 했다. 그러기에 이제 우리 세상이 온통 풍년 세상이 된 것 같다. 더불어 흥이 돋는 이 가을에 흥타령이라도 부르고 싶다. 그렇게 신명이 돋는 것을 어쩌랴. 그러나 이보다도 더 기쁜 일은 긴 코로나 시국에서 벗어나고 처음 맞이하는 한가위인 만큼 예외 없는 풍년이 아닐 수 없을 것 같아 더 신바람이 난다.

그러하기에 모처럼 가족들이 모여앉아 행복한 마음과 담소를 나누며 지난날을 회상하는 웃음의 풍년이 들었으니 이 또한 유례없는 대풍이 아닐까 싶다.

때마침 서둘러 다가온 추석에는 그 정감과 감회가 더욱 의미 있게 다가오지 않을까 하는 설렘으로 벌써 기다려진다. 그렇게 맞이한 이번 한가위 명절은 온통 풍년 이야기로 시간을 보냈으면 좋겠다. 웃음조차 풍년이기를 바라는 것이다. 전통적 유교 집안의 맏이인 나는 지금까지 조상님을 섬기기에 조금도 소홀함이 없었다고 자부하며 산다. 그러나 부득이하게도 코로나가 세상을 덮친 이후로 가족들이 모두 모이지 못하고 고유제 형식으로 혼자서 봉행해 왔던 것을 이제는 다 모여서 할 예정이다. 코로나 시국이 완전히 해제되고 처음으로 맞이하는 명절이 이번 추석 명절이기에 여느 때보다 더 푸짐한 송편과 각종 산해진미를 등원한 추석 차례상을 차려 보고 즐기는 시간을 누리고 싶다. 그야말로 웃음 가득한 풍년 한가위를 말 그대로 만들어 볼 심산이다. 그리고 일 년 중 가장 큰 행복을 안겨주는 풍요로운 민속 잔치로 이어지기를 간절히 기대하면서 온 누리에 웃음 풍년이 가득한 한가위를 맞이하기를 진심으로 염원한다.

아침저녁으로 제법 시원해지는 날씨도 반갑고 좋다. 지루한 무더위를 견디면서 얼마나 기다리던 가을이던가? 하늘은 다시 높아지고 들판은 온통 금가루를 뿌려놓은 것 같다. 누렇게 익어가는 벼들을 바라보며 후손들을 위해 희생하시던 모든 어버이 어르신들에게도 솟구치는 감사의 마음을 억누르지 못한다. 살다 보면 감사할 일이 많다. 웃음 풍년 한가위가 그러하고 행복이 그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