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우리는 평택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평택읽기
“당신은 평택에서 당신에게 애착이 가는 장소가 있는가?” 5월 24일 열린 제19회 평택박물관포럼에서 장수아 도시건축연구소 디트라스 소장이 던진 질문이다. 2019년 노트르담 대성당이 화재로 훼손되었을 때, 전 세계 수많은 사람들이 가슴 아파하며 슬퍼한 것은 노트르담 대성당이 단순히 유명한 문화재이기 때문만이 아니다. 많은 이들이 이곳에 애착을 갖고 기억을 공유하며 유대감을 형성했기 때문이다. 장소에 대한 애착은 시간과 공간을 넘어 여러 사람을 묶어주는 무의식을 만들어낸다. 그렇다면 평택에는 공동체를 하나로 묶어줄 애착의 장소가 있는가?
장수아 소장은 ‘도시’란 ‘다양한 문화의 결들이 쌓여있는 적층체’라고 정의한다.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과거부터 현재까지 살아오고 있는 도시는 적게는 수십 년 많게는 수백 년간 사람이 거주하며 남겨진 흔적들이 고스란히 있다는 것이다.
모든 장소에는 그곳에서 존재해 왔던 것들이 만들어온 형상과 집단의 기억 또는 역사가 존재하며 그것들이 쌓여 공동체의 무의식을 형성한다. 이러한 무의식은 다양한 방식으로 표출되며 장소의 고유한 특성과 분위기를 형성한다. 애착이 형성되고 공동의 기억들이 만들어지며 유대감이 형성되는 장소의 특성이 바로 ‘장소성’이며 이는 현대의 도시문화 속에서도 유효하다.
하지만 한국에서 흔히 진행 중인 산업단지, 신도시 조성사업 등에 따라 과거 마을과 도시의 흔적을 모두 없애고 새롭게 만들어진 도시는 역사적 맥락이 사라져버린 ‘도시 지운 도시’로 표현된다. 장소성, 즉 개인과 집단의 기억이 새겨져 있는 공간이 상실됐다는 의미다. 한 저명한 학자는 개발에 대한 전세계적 현상을 두고 “역사는 가속화되고, 비장소성은 증가된다(L’histoire s’accélère, les non-lieux se multiplient).”고 평가한다.
평택 시민들 속에 공유되는
기억과 역사는 무엇일까
공통의 유대감을 갖는 공동체 형성
위한 노력과 고민 필요할 때
실제로 대다수 현대인은 자신이 살고 있는 도시에 대해 애착은커녕 관심조차 없다. 이는 도시와 장소가 목적을 위한 도구로 전락해 버렸기 때문이다. 전통적으로 가족 또는 이웃과 함께 어울리며 오랜 기간 한 곳에서 ‘거주’하는 공간이었던 집이라는 개념은, 더 좋은 집으로 옮기기 위해 형편에 맞춰 잠깐 ‘체류’하는 공간으로 바뀌었다. 내가 사는 공간과 공동체에 애착을 느낄 시간적 여유가 사라진 것이다. 심지어 애착을 느낄만한 공간은 모두 상업화되어 입장료를 내지 않으면 방문할 수 없는, 현실과 동떨어진 ‘테마파크’로 변해버렸다. 결과적으로 우리는 도시 속에서 애착을 느낄만한 시간과 공간 모두를 잃어버린 셈이다.
이처럼 도시 공간에 대한 애착이 사라진다면 개인들이 폭력에 취약해진다는 문제가 발생한다. 개인이 폭력에 대항할 수 있게 해주는 공동체의 연대가 장소성과 함께 사라지기 때문이다. 도시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더라도 애착이 없는 구경꾼들로 가득찬 사회가 만들어지고 말 것이다. 안타깝게도 2024년 현재, 장소성의 상실로 인한 도시와 공동체의 붕괴는 점점 악화되고 있다.
우리는 도시와 장소에 대한 애착을 회복하고, 공동의 기억을 형성하며, 유대감을 강화해야 한다. 그것이야말로 공동체의 힘을 키우는 길이며 더 나아가 인간다운 삶을 영위할 수 있는 기초가 된다. 우리는 평택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가? 평택 속에서 공유되고 있는 기억과 역사는 무엇이 있는가? 공통의 유대감을 갖는 공동체를 형성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가? 우리가 살아가는 도시 공간인 평택의 장소성을 되찾기 위한 노력과 고민이 절실히 필요한 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