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박만복 평택향교 전교

2024-05-08     김윤영 기자

평택향교를 시민과 함께하는 인성교육의 장으로 만들겠다

박만복 평택향교 전교

 

향교는 조선시대 유학을 가르치는 교육기관이자 고을 사람들이 즐길 수 있는 행사를 열고 지방 유림의 의견을 모아내는 여론의 장이었다. 현재에는 전통문화 체험, 인성교육의 장으로 그 존재감을 간간히 보이고 있다.

박만복(75) 평택향교 제33대 전교는 평택향교를 새로운 인성교육의 장으로 만들겠다는 포부다. “온고지신(溫故知新)의 자세로 평택시민에게 새로운 삶의 방향을 제시하는 교육의 산실로 발전시켜 유림으로서 책임을 다하겠습니다.”

 

평택향교 바로 옆 객사리에서
태어나고 자라 어렸을 때부터
향교와는 깊은 인연, 성인돼서
성균관 유도회 활동 시작하며
평택향교 운영상 문제점 접하고
평택향교 정상화 운동 펼쳐와

 

평택향교와 인연은 어떻게 시작됐는지.

1949년 평택향교 옆 객사리 154번지에서 태어나 자랐다. 어릴 적 향교에 와서 놀기도 하고 봄·여름 석전대제를 지내면 떡을 얻어먹기도 했다. 어른들이 제사를 지내는 대성전에 뱀이 나온다고 하셔서 그곳을 피해 다닌 기억도 있다. 6.25 전쟁 때 담이 무너져 아무나 드나드는 것을 막기 위해서였던 것이 아닐까 싶다.

그렇게 자라 젊은 시절 생업으로 바빠 평택향교에 크게 관심을 기울이지 못했다. 그러다 부용초등학교 동문회장이었던 방효웅 선배가 성균관 유도회 평택지부에 참여하면서 그분의 권유로 저도 참여하게 됐다. 2004년에 평택지부 중부지회장을 맡아 평택향교와 새로운 인연을 맺게 되어 연회비 내고 회의 있으면 참석하고 지냈다. 초기에는 평택향교의 문제를 알지 못했다.

 

평택향교의 문제라 하면 무엇이었나.

먼저 향교의 변천사를 알아야 한다. 제사를 지내고 운영하는 데 필요한 자금은 임금이 하사한 토지 소작 등으로 마련했다. 일제강점기 일제의 문화말살 정책으로 교육기관 기능을 잃어버리고 건물과 토지 등의 부동산만 남게 됐다. 이후 향교가 보유한 부동산의 주인이 불분명해지자 향교재산법이 제정되고 광역지자체별로 향교재단을 만들어 관리하게 했다. 경기도 내 25개 향교가 보유한 부동산은 경기도향교재단 소유가 됐고 재단이 각 향교를 유림들에게 위탁, 운영해왔다. 유림은 대표자인 ‘전교’ 한 명과 일종의 이사라 할 수 있는 ‘장의’ 여러 명으로 구성된다.

 

2000년대들어 팽성일대 개발
향교부지가 송화택지에 편입돼
보상금 20억원 받으며 새로운
자산 취득, 운영상 문제점 나타나

1990년대만 해도 경기도문화재인 건물을 팔 수도 없고, 주변 땅도 논밭이라 팔아도 큰 돈이 되지 않았다. 소작료도 얼마 되지 않아 봄·여름 석전대제를 지내려면 포승읍·현덕면 등에서 유림들이 쌀 한 말, 보리쌀 한 말을 메고 와 부족한 비용을 메꿨었다. 그런데 2000년대 초반 주변이 개발되면서 사정이 달라졌다. 송화택지지구가 개발되면서 택지지구에 포함된 향교 땅의 보상금으로 20억원을 넘게 받았다. 그 돈으로 건물도 사고 그랬다는데 하나하나 파헤치면 운영비 등으로 상당한 금액이 사라졌음을 발견할 수 있다.

 

평택향교 운영·재산관리 문제가 표면화된 때가 지난해 7월이다. 문제를 발견한 이후 제법 오랜 시간이 흐른 때인 것으로 보이는데….

평택향교 문제를 공론화하기까지 고민이 컸다. 나이도 먹을 만큼 먹었고 전교와 장의 모두 지역사회나 학교 선후배 아닌가. 처음에는 이렇게 비리가 심한 줄 몰랐다. 대화로 풀어보려고 했으나 전교가, 장의가 자꾸 내쫓고 “유도회는 관여하면 안 돼” 하면서 배척했다. 조직은 달라도 같은 유림인데 왜 그럴까 의아했다. 그러다 오랫동안 장의를 맡았던 분이 저를 불러 “평택향교에 문제가 많은데 내가 나이 먹어 힘드니 지금이라도 바로잡아야 한다, 도와달라”고 하셨다. 이분을 통해 평택향교의 비리를 구체적으로 알게 됐다. 유야무야 문제를 덮고 돈으로 사람들 입을 막아가며 운영했으니 곪을 대로 곪은 상태였다. 향교 유림들은 절차와 규정을 무시한 채 A전교의 3선 취임을 강행했다. 더는 내부에서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평택향교가 맡고 있던 경기도향교재단 소유의 오래된 연립주택을 수리한다는 명목으로 재단으로부터 받은 3억1000만원을 부정하게 유용한 증거를 발견해 경찰에 고발했다.

 

평택향교는 교육기관이자 지역사회 
공론의 장, 평택향교 정상화운동
펼치며 전국 유림에게 ‘바뀌어야 한다’

는 경종 울려준 것에 자부심 느껴

지역사회가 평택향교 정상화에 관심을 쏟아야 하는 이유는 무엇이라 생각하는가.

문제를 표면화한 것은 향교를 정상화해 공공재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였다. 향교는 사유재산이 아니라 엄연히 공공재산이다. 평택시민의 공공재라 할 수 있다. 그런데 향교재단이 신경 안 쓰고, 평택시민이 잘 모른다고 해서 누군가 향교 재산을 곶감 빼먹듯이 유용하는 것을 용납해선 안 된다. 숨겨야 할 문제가 있으니 지역사회와 소통할 수 없었고 이러한 폐쇄적 운영으로 평택향교는 교육기관이자 지역사회 공론의 장으로 활용되지 못하고 그 존재가치를 인정받지 못하고 잊힌 공간이 됐기 때문이다.

되돌아보니 유림들조차 호의적이지 않았다. 제가 성균관에 가서 전국 유림들에게 평택향교에 이런 문제가 있어 해결해야 한다는 내용으로 연판장을 돌렸더니 “미꾸라지 한 마리가 물 흐린다” “유림 망신 시킨다” 등 곱지 않은 시선이 대부분이었다. 저는 굽히지 않았다. 향교에 문제가 있으면 지역사회에 투명하게 알리고 공론화로 풀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야 지역사회가 향교에 관심을 기울이고 향교와 지역사회가 소통할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유림은 사라지고 향교라는 건물만 덩그러니 남을 수 있다. 평택향교 문제를 풀어가는 과정에서 전국 유림에게 ‘예전처럼 해서는 안 되고 이제는 바뀌어야 한다’는 경종을 울렸다는 점에서 자부심을 느낀다.

 

주민의 쉼터이자 청소년을 위한 
체험‧교육기관으로 인성교육
요람으로 발전시키고 싶어

평택향교 제33대 전교로서 앞으로 어떻게 평택향교를 정상화할 계획인지.

우선 향교를 주민이 편하게 쉬어가는 공간으로 조성하는 계획을 추진 중이다. 현재 주말에 향교를 개방해 탐방객 누구나 편하게 들르게 하고 있다. 앞으로 주변 테니스장 부지를 잔디공원으로, 연못 주변을 전통공원으로 각각 꾸미고 폐건물을 철거해 화장실 등 편의 시설을 갖추려 한다. 아직 계획 단계이지만 차근차근 준비해 나가겠다.

청소년을 위한 체험·교육 프로그램도 준비하고 있다. 향교는 조선시대 교육기관이었고 교육에 필요한 인프라를 갖추고 있다. 지난해 단기 교육프로그램을 운영해 도포 입고 유건 쓰고 공수·절·다도를 익히고 투호놀이 등을 하게 했더니 반응이 매우 좋았다. 올해는 초등학생을 버스에 태우고 와 교육시키고 데려다주는 방식으로 10회 운영할 예정이다. 앞으로 도교육청·평택교육지원청에 초등학생 방과후 프로그램으로 향교를 활용한 인성교육 개발·운영의 필요성을 적극 알리고 지원을 끌어내겠다.

평택향교와 주변 인프라를 연계한 방안도 모색하겠다. 평택향교는 시내에서 가깝고 대중교통이 편리해 접근성이 좋다. 가까운 곳에 객사가 있어 연계 프로그램을 운영할 수 있고 미군부대가 있어 한미 문화교류 프로그램을 운영할 수도 있다.

 

시민들에게는 사람과 사람이
어떻게 관계 맺고 어울리는지
함께 알아가는 친근한 공간으로 
자리매김하고, 팽성 주둔 
주한미군에 평택역사 알리는 
한미교류 프로그램 운영할 수도

한자는 어렵고 유교가 따분하다는 인식 때문에 향교를 불편해하는 사람이 많다. 이런 문제가 해결되야 할텐데.

저도 한자 하면 어렵다. 읽기는 좀 해도 쓰기는 잘 못 한다. 이런 한자 그리고 유학을 젊은이, 청소년에게 어떻게 쉽고 재미있게 전달할 것인지가 아직도 과제다. 그런데 가능할 듯도 싶다. 휴대전화를 보니 전 세계 언어를 다 통역해주고 그 나라 언어로 문장도 만들어 주더라. ‘하늘천’ ‘땅지’ 이러면서 고리타분하게 가르치려 들지 말고 요즘 트렌드를 활용해 한자를 왜 익혀야 하는지 의미를 부여해 놀이로 익히게 하면 된다. 그 과정에서 서로 어울리는 법도 익힐 수 있다. 사람 인(人) 자를 보면 사람과 사람이 서로 받치고 있는 모양이다. 유교를 통해 인간 본연의 본성을 찾고 사람과 사람이 어떻게 관계를 맺고 어울리는 지를 알 수 있다. 그렇게 한 발 한 발 나아가다 보면 평택향교가 평택시민에게 편하고 친근한 곳으로 자리매김할 것으로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