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시집 <나, 라는 꽃 한 송이>로 돌아온 시인 이윤훈
김해규의 문화살롱 ④
평택 지제동 울성마을 출신 늦깍이
시인 이윤훈, 실패와 좌절 겪으며
삶의 정체성 고민하다 44세에
조선일보 신춘문예 당선하며 등단
시(詩), 감정과 언어의 결정체
인류 최초의 시(詩)는 기원전 2600년경 쓰인 ‘길가메시 서사시’라고 한다. 기원전 8세기 무렵 호메로스가 쓴 ‘일리아드’와 ‘오디세이’, 인도의 ‘라마야나’도 시(詩)로 쓰인 작품이다.
시경(詩經)은 중국에서 가장 오래된 시집이다. 공자가 주나라 초부터 춘추시대까지의 시가 중에서 311편을 가려 뽑았다고 한다. 공자는 만년에 육경(六經) 가운데 시경을 첫손에 꼽았다. 시는 인간의 가장 순수한 감정에서 우러나온 것이므로 사물을 인식하고 정서를 순화할 수 있는 훌륭한 수단이라고 생각했다.
고조선 백수광부의 처가 짓고 곽리자고의 아내 여옥이 불러 전파되었다는 ‘공무도하가’는 우리나라의 가장 오래된 시가다. “그대여, 물을 건너지 마오. 그대 결국 물을 건넜구나. 물에 빠져 돌아가시니, 가신 임을 어이할꼬”라는 시구에는 미쳐서 물에 빠져 죽은 남편을 애통해하며 그리워하는 백수광부 처의 절절한 사랑이 담겼다. 고구려 태조왕의 ‘황조가’, 백제의 ‘정읍사’, 신라의 ‘모죽지랑가’, 고려의 ‘청산별곡’과 ‘가시리’도 시대를 초월하여 사랑받는 시가였다.
‘시(詩)란 무엇인가’를 한마디로 정의하기는 어렵다. 공자가 쓴 시경 모시서(毛詩序)에는 ‘시란 마음이 흘러가는 바를 적은 것이다. 마음속에 있으면 뜻이라 하고 글로 표현하면 시가 된다’고 말했다. 공자는 느낌과 생각을 글로 표현하면 시가 된다고 말했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문득 시상이 떠올라 책상에 앉으면 불일 듯 떠오르던 생각들이 봄눈 녹듯 사라져버리기 때문이다. 그만큼 시 쓴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어려운 시를 쉽게 쓰는 것은 더욱 어렵다. 서정주의 말처럼 ‘정제되고 절제된 언어로 생각을 표현하되 그것마저도 모두 내어보이지 않는 시(詩)’는 정말 어렵다.
중학교 3학년 시절 공장 직공이던
작은 누님이 사준 ‘세계문학전집’
읽고 토론하며 문학적 소양 키워
늦깍이로 시인 등단
이윤훈은 평택 출신의 시인이다. 전주 이씨 500년 세거지인 지제동 울성마을에서 나고 자랐다. 세교동의 중앙초등학교를 거쳐 평택중학교와 한광고등학교를 졸업했다. 청소년기에는 문학 소년이 아니었다. 이백, 두보, 백거이, 도연명은 즐겨 읽었지만 근·현대문학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었다. 한때는 세속적 삶에 회의를 느껴 불교에 귀의할 생각까지 했다.
중학교 3학년 시절 친구가 문학작품을 읽고 함께 토론하자고 했다. 공장 직공이었던 작은누님이 할부로 ‘세계문학전집’을 사줬다. 몇 권은 친구와 읽고 토론했고 또 일부는 대충 읽고 넘어갔지만 누님에 대한 부채의식만큼은 오랫동안 가슴에 남았다.
대학진학을 포기하고 서울의 작은 회사에 취직했다. 가난한 집 아이가 대학진학을 포기하는 일은 다반사였지만 이윤훈의 경우는 동기생들 사이에서 놀랄만한 사건이었다. 회사는 현대자동차 하청업체였다. 이윤훈은 작고 답답한 사무실에 갇혀 종일 사무를 봤다. 희망 없는 몇 달 동안의 회사생활은 대학진학의 꿈과 용기를 되살아나게 했다.
짧게 입시준비를 해서 아주대학교 영문과에 진학했다. 집에서는 아들의 대학진학을 크게 반기지도 그렇다고 반대하지도 않았다. 열심히 공부해서 4년 내내 장학금을 받으며 학교를 졸업했다. 대학 졸업 후에는 미국으로 유학 가서 호텔경영학을 공부하고 싶었다. 유학 갈 준비를 할 때쯤 어머님께서 병환으로 누우셨다. 할 수 없이 유학을 포기하고 국내에 남기로 했다. 학원 강의와 인연 맺은 것이 그때쯤이다.
낮에는 대학원 진학을 준비하고 밤에는 학원에서 강의했다. 도중에 결혼도 했다. 42세에는 캄보디아에서 6촌 외사촌이 운영하는 건설회사에 근무했다. 하지만 계약파기를 당하면서 불과 8개월 만에 국내로 돌아왔다. 경제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무척 힘들었다. 삶의 나락에서 헤어날 구멍이 보이지 않았다. 숨 막히도록 어려운 시기, 스스로의 삶을 되돌아봤다. 삶의 정체성을 고민하고 감정과 생각을 글로 표현하고 싶었다. 공책 이곳저곳에 짧은 단상을 적기 시작했다.
산문에서 시작한 글쓰기였지만 시에 정착했다. 장문의 산문보다 시가 매력적으로 보였다. 귀국 후 몇 편의 시를 써서 일간지 신춘문예에 응모했다. 첫해에는 누구도 거들떠보지 않았다. 그러다가 이듬해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었다. 그의 나이 44세였다.
등단 시 ‘옹이가 있던 자리’나
등단 이후 2008년 첫 시집
<나를 사랑한다, 하지마라>,
두 번째 시집
<생의 볼륨을 높여요>에 수록된
그의 시들은 부조리한 욕망의
실체를 떼어내고 삶의 본질을
성찰하려는 구도자의 시같아
이윤훈은 생(生)의 구도자
이윤훈은 ‘옹이가 있던 자리’로 등단했다. 삶의 끝자리에서 시를 만나 신춘문예에 응모했지만 탈락의 고배를 마시면서 시인이기를 포기하려던 어느 날이다. 허한 마음에 술을 마시고 집에 돌아와 벌러덩 누워서 천장을 보다가 옹이가 빠져나간 구멍과 눈이 마주쳤다. 순간 하늘의 소리를 들었다. 하늘이 가르쳐준 스무 행의 싯구를 가슴에 새겼다. 다음날 출근해서 어제저녁의 기억을 되살려 종이에 옮겨 적었다. 영화같은 서사지만 그렇게 이윤훈의 등단 시가 탄생했다.
이승의 끝모서리에 이를 때마다 나는
아이의 그 크고 슬픈 눈과 마주친다
나는 아픈 기억이 빠져나간 그 구멍으로
저켠 길이 굽어드는 곳까지 내다본다
누가 잠자리에 들 듯 목관에 들어가 눕는다
뚜껑이 닫히고 어둠이 쿵 쿵 못질하는 소리
문득 옹이 하나 내 가슴에서 빠져나가고
세상 한 곳이 환히 보인다
(이윤훈, ‘옹이가 있던 자리’ 중에서)
2008년 등단 후 6년 만에 첫 시집 <나를 사랑한다, 하지마라>(천년의 시작)를 냈다. 꼬박 10년의 숙성기를 거친 뒤에는 <생의 볼륨을 높여요>(시인동네)를 냈다. 이윤훈은 두 권의 시집에서 숙성되지 않은 겉치레를 털어내려 무던히도 애썼다. 삶의 곳곳에 덕지덕지 묻어 있는 부조리한 욕망들의 실체를 밝히고 떼어내려 노력했다. 시를 쓰는 이유, 시로 말하고 싶은 생각을 스스로에게 되묻고 생각이 숙성되기를 기다렸다.
그래서인지 이윤훈의 시는 깊다. 삶의 본질이 무엇인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우리는 무엇을 잊고 사는지를 끊임없이 질문한다. 화두를 던지고 면벽 구도하는 스님과 같다. 세속적 욕망을 벗어던지고 끝내 자아를 찾아 해탈하려는 구도자다.
나,라는 꽃 한 송이
이윤훈은 10여 년 동안 중국과 동남아시아를 떠돌았다. 중국과 베트남의 국제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쳤다. 고국을 떠나 산다는 것은 유목민의 삶이다. 농경문화에 익숙한 우리에게 유목민의 삶은 외롭고 쓸쓸하다. 이윤훈은 외롭고 쓸쓸한 감정을 숨기지 않고 부지런히 시를 썼다. 인간의 욕망, 외로움과 그리움의 본질을 깊이 탐구했다. 그렇게 얻은 결과물로 2014년 제6회 천강문학상, 2018년 제3회 나혜석문학상 대상을 수상했다. 2021년에는 동아일보 신춘문예에서 시조까지 당선되었다.
이윤훈은 나혜석문학상 수상소감에서 이렇게 말했다. “글을 쓰는 일은 자신을 대면하는 일이다. 화가가 자화상을 그리는 일과 같다. 자신의 상처도 수치도 그대로 드러내고, 절망에서 자신을 구원하는 일이다.” 그에게 ‘숙성’은 겉치레를 벗어던지고 자기다워지는 과정을 의미한다. 수상소감에서처럼 ‘명작을 남기겠다는 과욕보다 나와 늘 대면하고, 타자의 삶에 눈을 열고, 내 내면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마지막 음절까지 겸허하게 걸어가려는 자세다.
이번에 출간한 세 번째 시집
<나, 라는 꽃 한 송이>는 짧은
싯구마다 깊이와 완성도 높은
서정적이며 아름다운 시로 가득
이번에 출간한 <나,라는 꽃 한 송이>는 이전의 시집과 결이 다르다. 본명을 감추고 필명(마주한)을 쓴 것부터가 이채롭다. 시집은 수줍은 새색시처럼 디자인부터가 곱고 아름답다. 표지에 그려진 장미꽃 한 송이는 그가 스마트폰에 손가락으로 그린 작품이다. 시와 함께 묶은 그림들도 모두 손가락이 빚어낸 마술이다.
이윤훈은 간행사에서 ‘이번 시화집은 위로의 시집’이라고 정의했다. 한편으로는 ‘외도를 한 기분’이라고도 말했다. 3부로 된 시화집에는 삶, 사랑, 사람을 주제로 시를 나눠 담았다. 그렇게 담아낸 시가 40여 편이다. ‘쉽고 서정적인 시를 갈구했던 친구들에 대한 선물’이라고 표현했을 만큼 이번 시집에 담긴 시들은 서정적이고 아름다우며 쉽게 읽힌다. 그런데 그것이 다가 아니다.
“사실 이 책은 시(詩)에 눈길을 주지 않는 친구들을 위해 기획된 것이기도 하지만, 중졸의 누이를 위한 것이다. 내 나이 열여섯 가발 공장, 스타킹 공장에서 공순이라는 비하의 호칭으로 불리던 어린 누이가 쥐꼬리만한 봉급을 쪼개 세계문학전집을 할부로 내게 구입해 주었다. 늘 마음의 빚이었는데 누이에게 고마움을 조금이나마 드릴 수 있어 기쁘다.”
이윤훈은 ‘외도’라고 말하지만 이번 시집은 별도의 수사나 변명을 하지 않아도 될만큼 완성도가 높다. 짧은 싯구마다 깊이가 담겼다. 허세나 현란한 수사 없이도 충분히 좋은 시가 탄생할 수 있고 감동과 울림을 줄 수 있다는 사실을 이번 시집은 보여준다.
세상에 나보다 귀한 존재가 없어
나보다 귀하지 않은 존재 또한 없고
누구나 다 소중한
나,라는 꽃 한 송이
(이윤훈, <나,라는 꽃 한 송이> 중에서)
이윤훈의 시는 현재진행형이다. 아직도 그의 서랍에는 미발표 신작시가 빼곡하다. 올해 중에 두 권의 시집과 시조집이 출간될 예정이다. 다음 시집이 출간되면 또 한 번 ‘시론’을 놓고 한바탕 설전을 벌여야겠다. 그날이 기대된다.
올해부터 매월 넷째 주에 ‘김해규의 문화살롱’을 싣습니다. 김해규 평택인문연구소장이 만난 다양한 문화예술인 인터뷰를 통해 독자들의 평택 문화를 향한 관심과 이해를 높이고 공감대를 이루고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