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취재] 미군기지 주둔 이후 평택 지방자치 어떻게 확립할 것인가 3

2023-09-06     김윤영 기자

3. 미군기지 반환 이후 재오염에 대한 춘천시와 부산시 대응 비교

 

2022년 11월 15일 한미연합군사령부의 평택이전이 완료되면서 본격적인 ‘주한미군 평택시대’가 시작됐다. 한미연합사가 있는 험프리스 기지는 1467만㎡(444만평) 규모로 미2사단과 미8군사령부, 한미연합사 장병과 군무원, 가족 등 8만여 명이 거주하는 미군의 해외기지 중 세계 최대 규모다. 미군기지 주둔으로 평택에서는 크고 작은 미군 관련 사건사고가 발생해왔다. 하지만 미군기지로 발생한 문제는 국가 간 조약에 따르기 때문에 지방자치단체의 법률적 권한은 거의 없는 상황이다. 이에 평택시가 시민의 삶과 안전을 책임지고 지켜내려면 지방자치와 주민참여를 어떤 방향으로 확립해 나가야 할지 모색하고자 취재를 진행해 6회에 걸쳐 게재한다. 세 번째로 미군기지 반환 이후 재오염 문제가 발생했을 때 춘천시와 부산시 대응이 어떻게 다른지 비교해보고 평택시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함께 짚어보았다.

 

지자체가 강력한 의지로

시민 위해 나서야

캠프페이지 입구가 있던 자리에 아담하게 조성된 메모리얼존 

춘천시

지자체·시민사회 단단한 공조
국방부가 먼저 정화비용을 
내놓은 최초 사례 이끌어내

6.25 전쟁 중이던 1952년 강원도 춘천시에 자리 잡은 캠프페이지는 2007년 LPP협정에 의해 반환된 23개 미군기지 중 한 곳이다. 국방부는 4년간 190억여 원을 들여 토양오염 정화작업을 마친 후 2013년 춘천시에 이관했다.

춘천시는 이곳에 시민복합공간과 도시숲을 조성하기로 하고 문화재 발굴작업에 돌입했다. 그런데 2020년 5월 이곳에서 ‘기름띠’가 발견됐다. 정화가 완전히 이루어졌다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기름띠뿐 아니라 부실 정화의 증거가 속속 나왔다. 캠프페이지는 원래 미군 비행장으로 사용하던 곳으로 활주로 대부분이 아스콘(아스팔트 콘크리트)으로 포장돼 있었다. 그런데 토양복원 과정에서 반드시 제거되었어야 할 아스콘이 1m도 되지 않는 땅속에 그대로 묻혀 있다 발견됐다. 춘천시가 시료를 채취해 분석해 보니 석유계총탄화수소(TPH) 수치가 3083mg/kg으로 법정기준치 6배를 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춘천시민들은 크게 분노했고 지역 사회·보훈·직능단체들이 참여한 ‘춘천캠프페이지 토양오염 배상요구 범시민대책위원회’가 꾸려졌다. 범대위 공동대표는 대한노인회 춘천시지회 회장, 춘천시주민자치연합회 회장, 춘천시 이·통장연합회 회장, 춘천시여성단체협의회 회장, 춘천시농업인단체협의회 회장, 춘천시민연대 공동대표 등 6인을 추대했고 집행위원장은 춘천사회단체네트워크 오동철 운영위원장이 맡았다. 범대위 참여 시민단체들은 춘천역 주변에 ‘오염부지 팔아먹은 국방부는 책임져라’ 문구가 적힌 현수막을 수십개 내걸었다.

 

캠프페이지 재오염 정화와 관련하 국방부와 협의를 집행했던 신영진 춘천시 환경지도팀장

 

정치권도 힘을 보탰다. 같은 해 6월 허영 국회의원의 제안으로 환경부·국방부·춘천시·범대위가 참여하는 ‘춘천 캠프페이지 토양오염 재검증을 위한 민간검증단’이 꾸려졌다. 민간검증단 조사 결과 드러난 캠프페이지의 오염 상황은 심각했다. 기름통이 무더기로 발견됐고 기준치의 43배를 초과한 TPH 2만3540mg/kg이 검출됐다. 오동철 위원장은 “과거 국방부가 1000㎡당 하나씩 시추공을 뚫는 방식으로 오염을 확인했기 때문에 국지적 오염을 확인하지 못했던 것”이라며 “민간검증단에서 50㎡당 하나씩 시추공을 뚫어 조사해 보니 국방부가 정화를 마친 지역 곳곳에 오염이 확인됐다”고 밝혔다.

국방부는 결국 정화비용을 60억원을 내놓게 된다. 통상적으로 미군기지에서 오염 문제가 발생했을 때 해당 지자체가 오염정화를 진행한 후 국가에 구상권을 청구하는 것에 비교하면 국방부가 정화비용을 먼저 내놓은 최초 사례다. 이는 시민사회는 환경오염이라는 현안에 집중했고 사회·보훈·직능 단체를 망라해 범대위를 꾸렸으며 춘천시와 정치권은 범대위와 적극적으로 정보를 공유하고 힘을 합쳐 함께 대처했기에 가능했다.

 

춘천캠프페이지 토양오염 배상요구 범시민대책위원회의 집행위원장을 맡았던 춘천사회단체네트워크 오동철 운영위원장

 

오동철 위원장은 “캠프페이지 반환부지는 춘천역에 가깝고 주변에 아파트단지가 밀집해 있어 이곳의 환경오염은 시민의 삶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며 “정치적인 현안으로 확대하면 본질이 흐려질 수 있으므로 국방부가 원인자부담 원칙에 따라 환경오염을 조속히 정화해줄 것을 촉구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고 설명했다. 신영진 춘천시 환경지도팀장은 “중앙정부를 상대할 때 지자체와 시민단체는 손발이 맞아야 한다”며 “국방부와 협의할 때 ‘춘천시가 정화하려 해도 지역의 사회·보훈·직능 단체를 모두 망라한 범대위가 반대하니 어쩔 수 없다’고 주장하며 국방부에 정화비용을 받아낼 수 있었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오동철 위원장이 들려준 당시 일화를 하나 소개한다. “2020년 5월 토양오염이 발견된 이후 협의하러 춘천시청에 온 국방부 관계자들은 시민단체들에 오염 사실을 알린 것이 큰 잘못인 양 춘천시 공무원에게 어떻게 책임질 거냐고 큰소리를 치더라고요. 그걸 보고 가만히 있으면 안 되겠다 싶더라고요. 범대위 대표들이 ‘시민을 위해 일하는 공무원에게 뭐하는 거냐’고 강하게 항의하면서 기선을 제압했지요. 필요할 때 힘을 실어줘야 공무원들이 제대로 일할 수 있습니다.”

 

부산시민공원 역사의 길에 위치한 ‘2010년 하야리아기지 반환’을 새긴 조형물

부산시

시민힘으로 되찾은 하야리아 
부산시민공원 조성 내세워
정화 안 됐는데 서둘러 받고
2021년 재오염도 소극적 대처 

반환 미군기지 재오염 문제는 부산광역시에서도 불거졌으나 춘천과는 그 양상이 다르다. 2021년 5월 부산시민공원 바로 옆 부산국제아트센터 예정부지 토양에서 기준치를 초과하는 오염물질이 검출됐다. 이곳은 미군기지 ‘캠프 하야리아’가 있던 곳으로 반환 당시 토양오염 정화작업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는 의혹이 제기돼왔다.

캠프 하야리아는 부산시 부산진구 범전동과 연지동 일대 54만 3360㎡ 규모로 위치했으며 지난 2006년 공식 폐쇄됐고, 협상을 거쳐 2010년 부산광역시에 반환됐다. 하야리아 미군기지 반환은 부산지역 시민사회가 이끌어낸 것이라 할 수 있다. 1995년 부산지역 33개 단체가 모여 ‘우리땅하야리아등되찾기시민대책위원회’를 결성해 캠프 하야리아 반환 촉구운동을 벌였다. 하야리아 기지를 둘러싸고 ‘반환 인간 띠 잇기 대회’를 열고 범시민 서명운동, 시민대회가 이어졌고 2004년 7월 캠프 하야리아 부지 반환이 결정됐다.

 

‘우리땅하야리아등되찾기시민대책위원회에서 공동운영위원장을 맡았던 허운영 작은 도서관 ‘동화야 놀자’ 관장

 

시민대책위에서 공동운영위원장을 맡았던 허운영 작은 도서관 ‘동화야 놀자’ 관장은 “캠프 하야리아는 부산시 중심에 위치한 우리 땅임에도 고작 300여 명의 미군이 사용할 뿐 부산시민은 발을 들일 수 없었다”며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그 문을 열기 위해 많은 시민이 애쓴 끝에 결실을 맺었다”고 밝혔다. 부산시는 민관 전문가가 참여해 협의하는 라운드 테이블을 운영하는 등 시민과 함께하는 공원을 만들겠다는 의지를 보였고 47만1518㎡ 규모의 부산시민공원을 조성한다.

당시 시민단체들은 기지 부지의 심각한 오염실태를 우려하며 정밀조사를 요구했지만 부산시의 ‘신속한 시민공원 조성에 방해가 된다’는 명분에 묻히고 말았다. 그리고 2021년 우려가 현실로 나타났다.

2021년 5월 부산시민공원 내 국제아트센터 공사 중 심각한 수준의 토양오염이 드러났고 시민사회는 다시 시민공원 전 부지에 대한 전수 정밀조사와 오염정화를 촉구했다.

놀랍게 부산시의 대처 역시 이전과 다름없었다. 시민단체들은 2010년 4월 5일 부산시가 국방부와 체결한 ‘환경오염정화 위·수탁 협약’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이 협약은 환경오염 정화사업, 지장물 철거, 폐기물 처리 등 국방부의 업무를 시가 대신하는 것을 뼈대로 한다. 국방부가 토양오염을 정화한 후 부지를 받는 것이 아니라 부산시가 오염정화가 이뤄지지 않은 미군 기지를 넘겨받은 전국 최초의 사례였다. 춘천 캠프페이지 사례에서 보듯 정화 작업이 이뤄진 미군 기지에서 토양오염이 재발견된다 해도 국방부에 책임을 따질 수 없다.

결국 부산시는 부산국제아트센터 부지 오염실태를 정밀조사하고 그곳만 정화한 뒤 공사를 재개했다. 시민단체들의 시민공원 전수조사 요구는 구렁이 담 넘어가듯 넘겨버렸다. 이에 대해 허운영 관장은 “앞으로 미래를 책임질 아이들이 기름으로 범벅된 땅 위에서 뛰어놀고 있다고 생각하면 아찔하다”며 “부산시는 부산시민공원이 갖는 역사적 의미를 되새겨 시민과 적극적으로 소통하며 시민 안전을 위한 토양오염조사를 완벽하게 진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의 지원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