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김덕일 평택지속가능발전협의회 상임회장
평택시 지속가능발전목표 수립·이행 초석 다질 것
대양학원 사태로 평택과 인연
지속가능 발전 목표는 우리가
나아갈 큰 물줄기와 같다고 생각
전문가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운영위원·자문위원 일부
외부 인사에 개방할 계획
지속가능발전기본법이 1월 4일 제정돼 7월 5일 시행을 앞두고 있다. 이 법은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경제·사회·환경 전 분야에서 지속가능발전의 기본원칙을 따라야 하고 지속가능발전 지방위원회를 설치해 지속가능발전목표와 이행계획을 수립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민관협력기구인 지속가능발전협의회의 역할은 더욱 커질 전망이다. 이에 1월 25일 취임한 김덕일 평택시지속가능발전협의회 상임회장을 만나 올해의 목표와 계획에 관해 들어봤다.
평택과의 인연은 어떻게 시작됐는지
고향은 수원이고 동국대 82학번이다. 1987년 대양학원과 주민 간의 갈등이 격렬하던 시절 이 문제 해결을 도우려고 서울의 15개 대학이 연합대를 꾸려 평택에 왔다. 그때 대학연합 대표로 와 주민 의견을 대변하다 보니 신대리 이장을 맡으며 평택에 정착하게 됐다. 원래 농민운동에 뜻을 둬 충북 옥천으로 가려 했다. 농민들은 피땀 흘려 개척한 대양학원 땅을 지켜내길 원했고 그들과 함께 일하고 먹고 하며 1년인가를 보냈고 떠나지 못하겠더라.
20대에 와서 40대가 되기까지 대양학원 싸움을 했는데
1954년 한국전쟁 이후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피난민들이 소위 ‘복귀불능난민정착사업’의 일환으로 팽성읍 신대·도두지역 41만평의 하천부지를 개간했으나 1965년 대양학원이 농지소유주라며 나타나 법정소송 끝에 대양학원이 승리했다.
졸지에 소작농으로 전락하게 된 농민들이 80~90년대 법정투쟁과 각종 민원을 제기하고 땅을 점거했다. 이것이 40년 넘는 평택시의 최장기 민원인 소위 ‘대양학원 사태’다.
1987년에 평택에 온지 18년이 지난 2005년에 41만평 중 20만평이 미군기지 확장 수용예정지에 포함되면서 대양학원측과 농민들이 정부 중재로 만나 대양학원이 국방부에 농지를 매각할 경우 농지보상가 20%를 임차농민에게 보상금으로 지급하기로 합의하며 이 분쟁은 일단 타결됐다. 그때 농민 150명에 보상금 188억원이 지급됐다. 그렇게 오래 싸웠는데 우리 바람대로 온전히 이뤄진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지주들이 농민들에게 돈을 주고 싶겠나. 당시 노무현 정부가 요구하고 주민 민원이 거세고 하니까 보상가의 일부를 받게 된 것이라 생각한다. 주민 의견을 수렴하는 과정에서 1950년대에 처음 간척한 농민들이 “내가 간척해 평생을 일궜는데…”라며 울분을 터뜨리기도 하시고… 그때 이후 다시 20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는데도 지금도 편하게 말하지 못할 것 같다.
농민으로 평택에 정착한 것에는 만족하는지
평택에 정책을 잘했다고 생각한다. 처음 농촌에 와서 정착하려면 농지 확보가 제일 어렵다. 땅이 있어야 농사 짓고 정착을 하는 거니까. 그런데 대양학원 땅 40만평을 농민들이 점거하고 농사를 짓다 보니 자연스럽게 수확을 나눠받을 수 있다. 젊으니까 일손이 필요한 곳에 가서 품을 팔기도 했다. 그 과정에서 아내를 만나 1991년 11월에 결혼했다. 평택에 계속 농사를 지으려다 보니 농협 조합원이 돼야 하는데 땅 300평 이상을 보유해야 한다고 하더라. 평택에 농활을 온 경기대학교 축제에서 결혼식을 하면서 결혼비용을 아낀 돈으로 300평 남짓한 밭을 샀다. 조합원이 된 후에는 농지구입자금 이런 거 받아서 땅 조금 사고 농민후계자 자금을 받아서 땅 조금 사고 해서 지금의 농지를 마련했다.
농업희망포럼 초대 운영위원장과 2대 회장을 맡았는데
농민회 활동을 하면서 앞으로 시민이, 소비자가, 유통하는 사람이 농민 편을 들어주지 않으면 농민 혼자 버틸 수가 없겠다고 판단했다. IMF 외환위기가 지나고 쌀 수매가를 정하는 양곡유통위원회에 농민 대표로 참여했는데 소비자단체 대표들이 농민들의 인상 요구에 이의를 제기했다. 당시 농민들이 20% 인상을 주장했는데 농민뿐만 아니라 도시민이 힘든 상황이다, 무리한 요구 아니냐 하더라. 그때 경험에서 느긴 바가 컸다. 그러던 차에 당시 송명호 평택시장이 평택농업정책을 고민할 싱크탱크 조직을 만들자고 권했고 그렇게 해서 2008년 농업희망포럼을 만들게 됐다. 농업희망포럼의 성과라는 전국에서 거의 최초로 로컬푸드를 받아들여 준비한 것이라 생각한다.
수십년 간 농민운동을 하던 분이 지속가능발전협의회에는 어떻게 가입하게 된 것인지
평택시지속가능발전협의회는 1998년 창립했다. 당시에는 의제21이라고 불렀다. UN이 권고하는 기구이다 보니 초기 위원이 200명이나 될 정도로 규모가 컸다. 평택의 모든 시민단체·직능단체가 다 참여했다고 보면 된다. 저도 농업희망포럼 운영위원장과 대표를 맡았고 농민 대표로 참여하게 됐다.
1998년이라면 지속가능협에 20년 넘게 참여한 셈이다. 그동안의 지속가능협의 활동을 평가한다면
지속가능협은 민관협력기구 즉 거버넌스 조직이다. 민관협력이라는 것은 시민사회도 이해하고 행정기관도 이해해야 한다. 이를 바탕으로 양측의 주장을 듣고 합의선을 세워 정리할 수 있다. 돌이켜 보면 초창기에 비교해 지속협에 참여한 민간 영역에서 네트워크가 점점 줄어들고 있다. 참여 단체·조직들이 하나둘 빠져나갔기 때문이다. 참여 단체들이 고민하는 의제를 토론하고 대안을 찾아나가야 하는데 이런 과정이 잘 이뤄지지 않다 보니 서로 의견은 엇갈려 쓸데없는 힘겨루기만 하게 됐다고 본다. 행정과 민간의 완충 역할을 하지 못하고 민관협력기구라는 자기 정체성이 퇴색됐고 이제는 이른바 봉사단체처럼 인식되는 흐름이 있어 안타깝다. 20년 세월 동안 항상 잘 할 수만은 없지 않나. 어떤 조직이든 부침이 있게 마련이라고 앞으로 잘 준비해 나가면 된다.
지속협을 지속가능발전목표를 세우는데 시민 입장에서 추상적이고 구체적으로 와닿지 않는 면이 있다. 뭐랄까 시민 삶에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어야 공감을 얻을 수 있지 않나
지속가능발전목표는 피할 수 없는 흐름이다. 지난해 지속가능발전기본법이 제정되면서 정부부터 광역·기초 지자체에 이르기까지 조례를 제정해 각자 목표와 이행계획을 수립해야 한다.
지속가능발전목표는 일종의 큰 줄기라고 봐야 한다. 지난해 평택의 지속가능발전목표 17개를 세웠다. 현실적으로 17개 목표를 한번에 다 이루기란 불가능하다고 본다. 당장 평택시에, 평택시민에게 시급히 꼭 해야할 목표가 무엇인지 우선순위를 정하고 그 목표에 따른 이행계획을 세워나가야 한다.
지속가능발전목표를 보면 기아 종식 등 상당히 광범위하다. 평택시민이 공감할 수 있게 구체적으로 세워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기아 종식을 예로 들어보자. ‘시민의 영양상태를 개선하자’, ‘지속가능한 농업을 만들자’를 이행계획으로 세울 수 있다. 경기도 자료를 보면 평택시민 중에 먹거리 취약계층이 7%나 된다. 평택시민을 50만명이라 했을 때 3만5000명이나 된다. 경기도가 3.9% 정도이니 엄청 많은 수치다. 먹거리 취약계층이란 ‘경제적 이유 때문에 먹거리가 부족해요’, ‘경제적 이유 때문에 가끔 굶게 된다’고 말하는 사람들을 이른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농촌지역과 원도심에 사는 독거노인들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그렇다면 유엔이 정한 2030년까지 먹거리 취약계층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지 시민 영양 상태를 어떻게 개선할지를 고민해 시정 목표에 담아내고 필요한 사업을 추진해야 한다. 이들에게 좋은 먹거리를 공급할 계획도 세워야 하고 그러려면 지속가능한 농업을 어떻게 담보할지를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이처럼 각각의 목표를 전문가그룹을 중심으로 논의하고 각계 의견을 수렴하면서 구체화하게 된다.
행정이라는 것이 우선 순위가 있게 마련이다. 각 목표의 우선순위를 정하는 것도 쉽지 않아 보인다.
지속협은 협의회로서 시민사회·지역사회 사람들의 의견을 모아 행정기관과 정책을 제안하고 그 정책이 반영되면 제대로 추진되는지 점검하는 역할을 한다. 때로는 격려도 하고 등 떠밀기도 하고 할 일이 많다.
평택시에 바라는 바가 있을 듯한데
수원시 사례를 보면 시장이 나서서 공무원을 독려한다. “행정 목표를 세울 때 혼자 하지 말고 민간하고 같이 좀 하세요”라고 말이다. 그러면 행정은 ‘친환경농업을 몇 년도까지 이만큼 확대하겠다’고 일방적으로 사업을 추진하지 않고 농민들과 함께 친환경농업을 매년 요만큼씩 늘리고 거기 맞춰 예산을 이렇게 준비하겠다는 목표를 세운다. 이렇게 생산자도 참여하고 소비자도 참여하게 되고 매년 말쯤 토론회를 열어 한 해 사업을 점검하고 내년 목표를 세우는 거다. 그러다 보니 수원은 지속가능발전목표 17개 중 10개를 이행하는 성과를 내고 있다.
지속가능발전목표를 세워 함께 이행하는 방법을 찾는 것이 필요하다는 의미로 들린다
행정 입장에서 지자체장이 지속가능발전목표를 세우라고 지시하면 할 수 있지만 그 과정부터 관련 이해당사자들과 함께 준비하라고 하면 진짜 힘들 거다. 각계 의견을 수렴해 목표와 목표의 우선순위를 정하고, 서로 다른 의견을 조율해 합의을 도출해 이행계획을 수립해야 한다. 아직 평택시 민·관 모두 이런 시도를 해본 적이 거의 없고 제대로 성과를 얻은 경험이 없다. 앞으로 지역사회 문제를 해결하고 발전방안을 도출하려면 이러 과정을 거쳐야 한다. 그 과정에서 지속협이 지역사회에서 합의점을 도출하는 데 있어 중간 역할을 할 생각이다.
평택시와 시민사회와의 소통이 한층 중요해질 것으로 보이는데
현재 지속협 위원이 70~80명 정도 되는데 영역별로 빠진 인원이 좀 있다. 위원회별로 새로운 인물을 발굴하고 위촉할 생각이다.
더불어 지속협 자체의 협의에서 그치지 않고 문호를 개방하려 한다. 어떤 주제의 경우 전문가나 전문단체들과의 네크워크를 구축할 필요가 있다. 이때 이 분들이 지속협 위원이 되고 안 되고는 중요하지 않다고 본다.
운영위원회의 운영위원 12명 중 80%를 외부 전문가로 위촉하고 작은 규모지만 예산을 세워 전문가 중심으로 자문위원단을 운용할 계획이다. 이렇게 한 분 한 분 참여하다 보면 지속협의 논의구조가 확대되고 전문성이 강화될 것이라 기대한다. 시대 변화에 맞춰 청년들의 참여를 담보할 방법도 고민 중이다.
올해 새로운 지속협을 기대해도 되는 것인가
당장 모든 것을 이루지 못할 거다. 상임회장 임기가 3년이니 1년에 하나씩 차근차근 풀어나가겠다. 올해는 평택시와 시민사회의 건강한 파트너로서 열심히 들을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