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신희철 평택시 주민자치협의회 회장

2022-01-26     김윤영 기자

평생 고향을 지켜온 지역의 큰 일꾼

항상 나의 뿌리는 팽성임 잊지 않아
안전하고 살기좋은 평택 만드는 데
올해에도 변함없이 최선을 다할 것

신희철(55) 평택시 주민자치협의회 회장은 팽성읍 남산리에서 자라나 평생을 평택에서 살아왔다. 2006년 팽성라이온스클럽에 가입하면서 지역사회 봉사를 시작했다. 늘 다른 사람의 의견을 경청하고, 어려운 처지에 처한 사람을 지나치지 못 하는 성격이다 보니 팽성라이온스클럽, 팽성읍의용소방대, 팽성읍주민자치위원회, 평택시의용소방대연합회 등 가입하는 단체마다 단체장을 맡게 됐다. 이처럼 사심 없이 헌신하는 모습에 함께하던 주민자치위원회장들의 신임을 얻어 지난해 12월 평택시주민자치협의회 회장에 선출됐다. 25개 주민자치위원장·주민자치회장들과 함께 고향 평택을 안전하고 살기 좋은 도시로 만드는 것이 올해의 목표다.

 

평생 고향을 지켜왔고

고향을 위해 봉사할 수 있어

하루하루 보람이 큽니다.

여러 단체에서 적극적으로 봉사하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마흔이 되던 2006년 팽성라이온스클럽에 가입하면서 팽성 발전에 관심을 갖게 됐다. 처음에는 사람들과 사귀는 것이 좋아서 가입했는데 함께 어울려 봉사하다 보니 보람이 컸다. 그래서 팽성의용소방대, 팽성읍주민자치위원회 등 여러 단체에 가입하게 됐고 활동 폭도 자연스럽게 늘어났다. 그러다 보니 현재 30개에 가까운 단체에 참여하고 있다.

 

그 많은 단체에서 활동하기가 쉽지 않아 보이는데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것을 좋아하고 목표가 생기면 밤낮을 가리지 않고 매진하는 성격이다. 할 일이 생기면 항상 최선을 다한다. 또 사람들을 만나 어울리는 것을 좋아하는 성격이라 함께 봉사하는 순간순간이 보람되고 힘든 줄도 모른다.

굳이 비결을 꼽자면 메모하는 습관이라 할 수 있다. 단체별로 만나는 사람이 다르고 할 일이 다르다 보니 꼼꼼히 메모하고 챙기는 편이다.

 

팽성라이온스클럽에 가입하기 전 20~30대에는 어떻게 살아왔는지도 궁금하다

팽성읍 남산리에서 3남1녀 중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집안 형편이 어려웠다. 예전에 가난하지 않았던 사람 어디 있겠는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공사장에서 벽돌을 지고 나르며 막노동을 했다. 열심히 일해 받은 일당을 차곡차곡 모아 26살에 900만원을 만들었다. 24살에 결혼해 보증금 50만원 월세 8만원짜리 방에서 살다가 장인어른이 보태준 돈을 더해 1300만원짜리 원룸을 얻었다.

매일 아침 코피를 쏟을 정도로 힘들었다. 막노동을 그만두고 매일유업에 입사했다. 주야 3교대로 일하면서 대형면허를 따 덤프트럭을 몰았다. 밤낮 가리지 않고 열심히 일하는 와중에 포크레인 기사 자격증 등 미래를 위해 준비했다.

1997년 IMF 외환위기 이후 부동산 경매에 일찍 눈을 떠 큰 돈을 벌었다가 부동산개발에 손을 잘못 대 모은 돈을 다 날리고 2000년 초반 덤프트럭을 다시 모는 등 우여곡절이 참 많았다. 그러다 부동산 개발을 하며 알게 된 지인의 도움으로 부동산관리사로 일하며 자리를 잡았다.

 

젊은 시절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고향을 지켜왔다

55년간 살아오며 평택을 떠난 적이 거의 없다. 항상 나의 뿌리는 팽성임을 잊지 않고 산다. 현재 제가 하는 봉사는 팽성을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에서 시작한 봉사가 평택시 전체로, 경기도로 넓어진 거라 할 수 있다.

 

평택시주민자치협의회장으로서의 포부를 밝혀달라

평택시주민자치협의회는 주민자치위원회 14개, 주민자치회 11개로 구성되어 있다. 주민자치위원회가 30명까지, 주민자치회는 50명까지 위원을 모집할 수 있으니 25개에 30명씩만 쳐도 위원 수만 750명에 달한다.

협의회 회장으로서 25개 읍면동 주민자치위원회 의견을 수렴하고 평택시와 주민 간 가교 역할을 하며 지역사회의 리더로서 역할과 봉사를 추진하겠다. 회장에 선출되기 전 사무총장을 3년간 맡다 보니 협의회 운영에 관해서는 비교적 잘 안다고 생각한다. 현재 주민자치위원회에서 주민자치회로 바뀌는 과도기적 상황이니 적극적으로 소통하고 슬기롭게 대처해 협의회가 불협화음없이 운영될 수 있게 노력할 것이다. 그러려면 자주 만나야 하는데 코로나19로 활발한 활동을 하기가 쉽지 않다.

올해부터 새로운 전략을 짜 대응할 계획이다. 25개 읍면동을 돌며 소규모로 회의를 진행하고 의견을 수렴해 사업계획을 세우고 평택발전을 위해 할 일을 차분히 추진하겠다. 갈 때 떡이라고 들고 가면 다들 반갑게 맞아줄 거라 기대한다.

 

평택시의용소방대연합회 회장, 경기도의용소방대연합회 감사를 맡는 등 의용소방대 활동에 남다른 열정이 느껴진다

의용소방대 활동은 우리 가족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 당연히 해야 할 일이다. 불이 나서 끄는 것도 중요하지만 평소에 불이 나지 않게 예방하는 것도 중요하다. 우리 일상생활은 안전에 기반해 톱니바퀴처럼 돌아간다고 생각한다. 안전이 보장되지 않은 상태에서 어떤 좋은 집도, 맛있는 음식도 제대로 역할을 할 수가 없다.

 

1월 6일 청북읍 냉동창고 신축 공사장 화재에서 소방관 3명이 순직했다. 그것을 보며 여러 생각이 들었을 것 같은데

안타깝다. 화재나 재난에서 나와 우리 가족을 밤낮없이 24시간 지켜주는 분들이 소방관이다. 소방관을 대우하는 데 우리 사회에 부족한 점이 많아 더욱 안타깝다. 대형 물류창고가 늘어나는 상황에서 샌드위치 패널 등으로 짓는다면 소방관이 순직하는 상황은 계속 나올 수밖에 없다. 다시는 소방관이 순직하는 일이 없게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불이 나면 목숨을 걸고 화재를 진압하는 분들인데 급여도 더 많이 올려드리고 인원도 충분히 충원해줘야 한다. 무엇보다 소방관들이 겪는 트라우마에도 관심을 기울였으면 한다. 연기로 한 치 앞도 보이지 않고 숨 쉬기 어려울 정도로 열기가 뜨거운 화재 현장에서 수십 킬로가 넘는 산소통과 장비를 지고 화재와 싸운다. 순간순간 생명을 위협받는 상황에서 그들이 겪는 스트레스는 상상 이상이다. 게다가 각종 사고 현장에서 여러 처참한 상황을 눈으로 봐야 한다. 오랫동안 알고 지낸 소방관 한 분이 50대에 퇴임 신청을 내셨다. 연기만 봐도 가슴이 벌떡벌떡 뛰어서 화재 현장을 갈 수가 없다고 하시더라.

 

평택시에서 평택역·안중출장소·이충체육공원에서 순직 소방관을 추모하는 분향소를 운영했다. 당시 의용소방대원들이 적극적으로 도왔다고 들었다.

우리 마음이 아파도 순직 소방관들의 부모나 가족만큼 슬플 수는 없다. 그들의 슬픔을 조금이나마 나누고 소방관들을 추모하고자 모두 한마음으로 도왔다. 영하의 추운 날씨에도 많은 시민이 분향소를 찾아주셨고 눈물을 흘리셨다. 고생한다고 의용소방대원들을 격려해주셨다. 어린 학생들이 따뜻한 유자차를 전해주는 등 뭐 하나라도 가져다주려는 분들이 있어 참으로 고마웠다. 간혹 부의금을 내겠다는 분이 있어 곤란한 적도 있긴 했다.

그렇게 평택의용소방대원들이, 평택시민들이 순직 소방관들을 추모했던 것 같다. 평택시가 빠르게 분향소를 설치해줘 감사하다는 말도 하고 싶다.

 

올해 목표가 있다면 무엇인지

젊은 시절에도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공부하며 쉴 틈 없이 지냈다. 단체 활동을 하면서도 최근 드론 자격증, 소방관리기사, 추레라 면허 등 여러 자격증을 땄다. 올해에도 매 순간순간 최선을 다하며 열심히 살 생각이다. 안전하고 살기 좋은 평택을 만드는 데 힘쓰고 팽성읍 발전을 위해 할 일을 찾아 하면서 변함없는 모습으로 고향을 지켜가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