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마에 스러진 소방관들…더 이상의 희생 막아야

2022-01-12     김윤영 기자

 

늘 그랬듯이 우리는 
그곳에 갔습니다. 
그러나 그날 우리의 동료는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내 자신이 너무나 원망스럽습니다.
팀장님, 수동아, 우찬아. 
이제 모든 것을 내려놓고 
뜨겁지도 어둡지도 않은 
새로운 세상에서 
편히 쉬시길 기원합니다.

                                    채준영 송탄소방서 소방교

 

1월 8일 평택 이충문화체육센터에서 개최된 합동영결식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분향하고 있다.

1월 6일 낮 12시 22분 평택시 청북읍 냉동창고 신축 공사장 화재 현장은 침통한 분위기에 휩싸였다. 검은 연기가 새어 나오는 현장에서 두절된 소방관 3명이 구조됐지만 발견 당시 심정지 상태로 호흡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송탄소방서 고 이형석 소방위, 고 박수동 소방교, 고 조우찬 소방사 등 3명이 우리 곁을 떠나기까지의 과정과 이후 추모 분위기 그리고 우리에게 남겨진 과제를 짚어보았다.

1월 6일 청북읍 냉동창고 신축 공사장 화재현장

1월 6일 잔불 진압 중
불씨가 급격히 재확산

화재는 1월 5일 오후 11시 46분쯤 냉동창고 신축공사장 1층에서 처음 발생했다. 대응1단계를 발령한 소방당국은 밤새 진화작업을 펼쳤고 7시간여 만인 6일 오전 7시 10분쯤 큰 불길을 잡았다. 소방당국은 대응단계를 해제했으며 남은 불씨를 끄고 인명수색을 위해 소방관 5명을 건물에 투입했다.

소방관들이 오전 7시 30분 건물 2층에 들어서자 불씨가 급격히 재확산했고 오전 9시 8분 소방관 3명의 연락이 끊겼다. 연락이 두절되자 소방당국은 오전 9시 21분 대응2단계를 발령하고 수색팀을 투입했다. 대응2단계는 인접한 5~6곳의 소방서에서 인력과 장비를 동원하는 단계다.

낮 12시 22분 이후 이형석 소방위, 박수동 소방교, 조우찬 소방사가 건물 2층에서 심정지 상태로 잇달아 발견됐다. 고공 살수차 등을 이용해 진화에 집중했던 소방대원들은 동료들이 싸늘한 주검으로 돌아오자 눈물을 훔치며 비통한 심정을 감추지 못했다.

숨진 소방관들이 투입된 지점의 바로 아래층에서 강한 바람을 타고 불길이 재발화하면서 참변이 발생했다.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불길이 커지고 구조물 일부가 붕괴하면서 소방대원들이 고립된 것으로 추정됐다.

 

1월 7~8일 추모물결 이어져
경찰 전담수사팀 수사착수

1월 7일 평택역광장에 설치된 분향소에 순직 소방관들을 애도하는 시민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숨진 소방관들의 소식이 알려지자 평택시민의 추모가 이어졌다. 평택시가 1월 7일 평택역광장에 설치한 분향소에는 이들의 죽음을 애도하는 시민 발길이 끊임없이 이어졌다. 8일 송탄이충분수공원과 안중출장소에도 분향소가 설치됐다. 분향소를 찾은 일부 시민은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이날 경기남부경찰청 수사팀은 시공사인 창성건설과 감리업체, 하청업체 등 6개 회사 12곳에 수사관 45명을 투입해 9시간에 걸쳐 입수수색을 진행하고 화재 건물 시공사·감리회사·하청업체 관계자 14명을 출국금지 조치했다. 또 최초 발화 원인부터 재발화 원인, 안전관리 등 전반에 걸쳐 철저한 수사를 약속했다.

전문가들은 ‘평택 냉동창고 화재’ 역시 인재로 인한 비극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화재가 난 냉동창고의 전체면적은 19만9762㎡ 규모. 이처럼 큰 규모임에도 화재예방, 소방시설 설치·유지 및 안전관리에 관한 법률상 '성능위주설계' 대상에 포함되지 않았다. 성능위주설계 대상은 대형화재 등이 발생하는 것을 막고자 건물의 특성과 현장 여건을 고려해 의무적으로 소방시설이 효과적인 성능을 발휘하도록 설계해야 한다. 대상 기준은 전체면적 20만㎡ 이상이다. 불과 238㎡ 때문에 소방관 3명은 화마에 또 스러질 수밖에 없었다.

화재가 발생한 냉동창고 신축공사장은 2020년 12월 20일 자동차 진입 램프 붕괴사고로 작업자 3명이 숨지고, 2명이 다치면서 지난해 1월 26일까지 한달 가량 공사중지 처분을 받았던 곳이다. 그럼에도 준공 예정일을 변경하지 않고 야간에 공사를 진행한 점 등에 비춰볼 때 공사기간을 단축하기 위해 무리하게 작업한 게 아니냐는 의혹도 나왔다.

소방 당국의 성급한 지휘 판단에 따른 인재라는 지적도 제기됐다. 이날 소방을 사랑하는 공무원노동조합 ‘우리 소방관을 헛되이 죽음으로 내몰지 말라’는 성명서를 내고 대원들이 순직하는 사고가 되풀이되지 않도록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쿠팡 화재 때와 같이 내부에 인원이 없는 것으로 파악된 상황에서 구조대를 투입했던 지휘부의 무리한 판단을 꼬집기도 했다.

 

1월 10일 화재현장 합동감식 시작
화재원인 밝히기까지 시일 걸릴 듯

1월 10일 오전 10시 30분 경찰·소방·국립과학수사연구원 등 40여 명이 합동감식을 위해 청북읍 화재현장에 들어가고 있다.

평택 냉동창고 신축공사 화재현장에 대한 힙동감식은 1월 10일 시작됐다.

이날부터 경기남부경찰청 과학수사대, 경기도소방재난본부, 국립과학수사연구원, 한국전기안전공사, 한국가스안전공사,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 등 6개 기관은 40여 명을 투입해 화재 현장에 대한 합동감식을 진행했다.

10일 합동감식은 최초 발화지점으로 추정됐던 건물 1층에서만 이뤄졌고 11일에는 냉동창고 다른 층에서도 진행됐다. 화재 현장이 워낙 넓다보니 정확한 화재 원인, 발화 지점, 재발화 원인 등을 을 알 수 있는 감식 결과가 나오기까지는 다소 시일이 걸릴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