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럿이 혼자, 혼자 여럿이 만드는 소확행
시인·문학박사
도서출판 이우 대표
일 년 남짓 아침 운동을 하고 있다.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는 오랜 기간의 생활 패턴 탓에 새벽에 일어나는 것은 쉽지 않았다. 처음에는 그랬다. 알람 소리에 맞추어 간신히 눈을 뜨면 언제나 게으른 녀석 하나가 “오늘도 가려고? 오늘은 쉬지 그래 ” 감미로운 귓속말로 꼬드기곤 했다.
녀석의 말에 호드득 넘어가고 싶은 마음도 많지만 자리를 털고 일어난다. 운동복으로 갈아 입고 간단한 스트레칭을 한 후에 내딛는 한 발, 그게 중요하다. 오른발이 나가면 자연스레 왼발이 나가는 이치, ‘시작이 반이다’ 라는 말은 그래서 온전히 적절하다.
내 보폭으로 30 여분을 걸으면 3 킬로미터 정도 된다. 4 킬로미터인 10 리를 채우기 위해 1 킬로를 더 걷는다. 그 후에는 스마트 기기가 보여주는 칼로리 소모량을 계산해서 더 걷기도 한다. 집으로 속히 들어오지 못하도록 일단 멀리까지 나를 데리고 가는 것이 중요하다.
나의 아침 운동은 코로나 이후 지인들과의 약속에서 출발하였다. 코로나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이 만든 결과물이다. 함께 만나지는 못해도 각자의 위치에서 잠을 일으켜, 스스로 정한 거리만큼 걷고 사진을 찍어 공유하자는 계획이었다.
대면이 난처해진 지인들과 일종의 사회적 약속 때문에 시작한 운동이지만 이제는 순연한 나의 즐거움이 되었다. 막 잠에서 깨어난 아침 공기를 부비며 앞으로 발을 내딛는 상쾌함에서 이제는 벗어나지 못할 것 같다. 비단 걸으면서 얻는 쾌적함 혹은 건강한 탄력뿐 아니다. 아침 산책은 내게 보다 특별한 선물을 준다.
일정 속도로 걸음을 걷다보면 누군가 조용히 내게 말을 걸어온다. 지나가는 사람이 아니다. 젖은 풀도, 길옆에 박힌 작은 돌멩이도, 새벽을 실어 나르는 자동차 소음도 아닌 곳에서 들려오는 소리이다.
내가 나한테 하는 말, 내 속에서 나오는 말들. 생각지도 못한 곳에 숨어 있다 스멀거리고 나오는 언어의 출몰. 그것을 받아 적는 일이 그 새벽 나의 본업이 된다. 집으로 돌아오면 노트북 자판 위에 손을 올리고 산책길에 들었던 음성들, 내가 나한테 들려주던 말들을 받아 적는다. ‘하루 한 줄 이상 쓰기’ 또한 목록에 넣어두었다.
여러 난제와 더불어 저무는 한 해
‘할 수 있는 것만이라도 하자’며
출발한 우리들의 소확행, 언제까지
계속될지, 언제쯤 마스크 벗고 만날지…
팀원들 각자의 목록은 다양하다. 하루 1 리터의 물을 마시기, 열 명에게 안부전화하기, 경전 읽고 필사하기, 한 줄 감상평 쓰기도 있으며 팔굽혀 펴기 하루 50 회가 목표인 사람도 있다.
시작도 그랬고 과정 중에도 강제사항은 없다. 함께 공유하는 단체 대화방을 이용해서 그날그날의 내용을 올리기도 하고 건너뛰기도 한다. 열 명 남짓 함께 하는 이 모임으로 우리는 서로간의 결속력을 유지하면서도 혼자 하기 어려웠던 내용의 실천을 끌어올리는 계기로 삼는다.
목록에 끼워두고 제대로 실천하지 못한 것도 많다. ‘하루 하나씩 버리기’나 ‘영양제 챙겨먹기’등이다. 수중의 물건들을 버리는 것이 생각보다 쉬운 일이 아니다. 꾸준히 비타민을 챙겨먹는 것도 내게는 아직 어려운 일로 남아 있다.
여러 난제와 더불어 한 해가 저물고 있다. ‘할 수 있는 것만이라도 하자’라는 생각에서 출발한 우리들의 소확행은 언제까지 계속될지, 언제쯤 그들과 마스크를 벗고 만날 수 있을까 궁금하다. 시끄러운 대선 정국도 지나가고 더불어 코로나 여파도 잠잠해지는 시절이 돌아오면 이렇게 여럿이 혼자, 혼자 여럿이 만들었던 소확행의 식구들과 따뜻한 밥이라고 먹었으면 좋겠다. 그런 날이 속히 왔으면 좋겠다.
그러자면 당장이라도 하루 한 잎, 돼지저금통에 밥을 주는 새 목록을 추가해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