펜화로 만나는 평택섶길 풍경 8

2021-12-15     평택시민신문

명상길 에코뮤지엄 마을 ‘신왕리 마두’

‘평택섶길’은 평택의 작은 길들이다. 16개 코스 오백리에 이르는 길은 물안개 피어오르는 호수 곁에, 호젓한 숲에, 고즈넉한 시골 마을에, 유서 깊은 시내 골목과 재래시장에 이야기와 함께 짜여 있다. 섶길 여정에는 문화유산과 기념물, 역사 인물에 대한 테마들이 있다.
공직 은퇴 후 취미생활을 찾던 중 섶길과 인연을 맺게 되었다. 필자는 평택에서 나고 자랐지만 섶길을 처음 걷는 날 곳곳에 숨어있는 경관이 놀라웠다.
그림 그리기에 약간의 소질이 있는 필자는 평택섶길 풍경을 펜화로 그려 간단한 글과 함께 평택시민신문에 한달에 한번 연재한다. 이번 연재를 통해 많은 분들이 섶길을 함께 걸으며 우리 고장을 더 알게 됨은 물론 건강과 즐거움을 얻는 기회가 되길 소망한다.

명상길은 신왕리 마을에서 호수변을 한 바퀴 도는 길이다. 섶길을 걷는 이들은 유소년부터 80 노인까지 다양하다. 그들 중엔 세계일주로 걷기코스를 섭렵한 고수들도 있다. 신왕리 수변 억새 꽃길을 걷는 이들의 모습이 정겹다.

멀리 물 건너 영인산의 모습이 보인다.

1리와 2리가 있는 신왕리는 왼쪽의 마안산과 오른쪽의 고등산에 둘려싸여 삼태기처럼 생긴 마을이다. 앞엔 평택호의 물이 있는 천연의 배산임수 지형이다.

신왕1리는 왼편 마안산 기슭의 와골, 들 가운데로 삐죽 나온 송말, 오른쪽에 새터말이 있다. 새터말의 끝 물가엔 작은 봉우리가 뭉쳐있다. 말의 머리 형상을 닮아 마두봉이고, 동네 이름도 마두다. 옛날 앞이 바다였던 때 봉우리 오른쪽엔 포구가 있었다. 신왕포구다.

진위·안성천이 합쳐 흘러와 바닷물과 만나던 이곳엔 물고기가 지천이었다. 11월부터 1월까진 동어(숭어새끼), 4~5월엔 꽃게, 5~6월의 강다리와 황새기 7월의 육젓새우, 음력 7월 조금 때 잡히는 뱅어(실치와는 다르다), 9월엔 추젓새우가 나왔다.

특히, 숭어철인 음력 4월의 사리 무렵엔 서해안 각처에서 몰려든 배들이 이곳에서 북적였다. 건너편 아산에 비해 썰물 때 물골이 가까워 배를 대고 나가기가 유리했기 때문이다.

그 무렵이면 포구 주변엔 서까래를 대충 엮어 이엉을 덮은 주막이 10여개 급조되고 순식간에 파시가 형성되었다. 냉장시설은 없고 숭어는 많았던지라 배에서 팔고 남은 숭어는 염장하여 말리기도 하고 이웃에 나눠도 주었다.

큰 암컷의 배엔 어란(숭어알)이 있었고 뱃사람들은 알을 빼낸 숭어는 던지더라도 어란은 귀하게 챙겼다. 배부리는 집 마당 멍석에서 꾸덕꾸덕 마르던 어란은 주인 몰래 한두 개 집어 달아나던 동네 아이들에겐 별미인 간식이었다.

신왕포구엔 안강망 어선인 중선배가 5~6척 있었다. 마두의 곽원섭, 임규형·임규환 형제, 이종구, 인원환의 부친, 원신왕(신왕2리) 서인원이 부리는 배들이었다. 한번 조업에 10여 일 또는 한두 달도 걸리던 중선배엔 6~7명이 승선했고 배의 꽁무니에 매어 있는 거룻배는 육지를 오가며 잡은 고기와 식량 등 필요 물품을 수송했다.

고된 뱃일 중 어부들은 선소리 장단에 맞춰 소리를 질렀는데 피로를 잊고 협동심을 위해 생긴 어로요였다. 닻감는 소리, 큰 배 노젓는 소리, 바디질 소리, 그물다는 소리 등 어로요는 2009년 평택민요 경기도무형문화재 제48호로 지정됐고 이종구(1923~2014)에 이어 인원환과 이의근에게 전승되었다.

말의 안장을 닮았다는 마안산은 사연이 많다. 물에 튀어나온 마안산 절벽을 어부들은 냉정(冷井)곶이라 불렀고 절벽 아래엔 시원한 샘이 솟았다(지금도 있다). 샘은 앞바다에서 조업하던 배들의 식수로 요긴하게 쓰였다.

마안산엔 문화예술의 기운이 서려 있다. 옛날부터 평택지역의 한학을 배운 내로라하는 이들이 매년 이곳에 모여 한시를 짓고 풍류를 즐기는 행사가 열렸다. 그들의 한시를 묶은 ‘평택의 한시집’도 남아있다.

마안산에선 2004년경부터 매년 마안산예술제가 열리기도 했다. 마안산과 고등산을 연결하는 낮은 재빼기에는 여선재가 있다. 20년전 이곳에 터를 잡은 주인 김석환은 미술을 전공한 행위예술가다. 백발을 뒤로 묶어 신령스런 모습을 한 그는 미술은 물론 음악을 사랑하는 흥이 많은 사람이다. 그는 오래된 것을 지키고 아낀다. 버섯처럼 생긴 그의 집 곳곳엔 옛날 소품들이 많다. 뒤꼍의 오래된 참나무숲을 지키기 위해 빚을 내 200여평을 매입한 신념있는 사람이기도 하다.

송말 입구에는 350년 된 참나무 고목이 있다. 동네에서 큰 행사가 있을 때 치성을 드리곤 했던 당목이다. 바로 아랫집인 인원환(85세)은 자기가 어릴 때에도 저만했었다고 회고한다.

이렇듯 시원한 풍광과 함께 옛것을 보전하고 이어온 마두마을은 경기문화재단이 시행하는 에코뮤지엄(Eco-Museum) 마을로 선정되어 있다. 마을회관 옆 창고를 개조한 공간에는 2021년 12월 10일부터 2022년 2월 20일까지 마을 역사와 어로요 중요무형문화재 자료들이 전시된다.

이계은
평택섶길해설사
전 평택시 송탄출장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