펜화로 만나는 평택섶길 풍경 7

원효길중 장수리 산티아고길과 매상동마을

2021-11-24     평택시민신문

‘평택섶길’은 평택의 작은 길들이다. 16개 코스 오백리에 이르는 길은 물안개 피어오르는 호수 곁에, 호젓한 숲에, 고즈넉한 시골 마을에, 유서 깊은 시내 골목과 재래시장에 이야기와 함께 짜여 있다. 섶길 여정에는 문화유산과 기념물, 역사 인물에 대한 테마들이 있다.

공직 은퇴 후 취미생활을 찾던 중 섶길과 인연을 맺게 되었다. 필자는 평택에서 나고 자랐지만 섶길을 처음 걷는 날 곳곳에 숨어있는 경관이 놀라웠다.

그림 그리기에 약간의 소질이 있는 필자는 평택섶길 풍경을 펜화로 그려 간단한 글과 함께 평택시민신문에 한달에 한번 연재한다. 이번 연재를 통해 많은 분들이 섶길을 함께 걸으며 우리 고장을 더 알게 됨은 물론 건강과 즐거움을 얻는 기회가 되길 소망한다.

 

원효길은 평택호 혜초비에서 평택항을 거쳐 원정리 수도사에서 마무리 된다.

권관리에서 장수리로 넘어가는 길 주변은 다랭이논이다. 과거엔 야산이었다. 방조제가 막히고 평택호 농수로가 산능선을 따라 생기며 자연스레 논이 된 것이다. 지평선 언덕엔 삼나무군락이 있다. 방풍림이다. 곳곳엔 햇살에 빛나는 은빛억새꽃이 흐드러졌다.

길은 스페인의 유명한 길을 닮았다. 장수리 산티아고 길로 불리는 이유다.

사방에서 외떨어진 동네인 장수리는 ‘두메’라고도 했다. 이곳은 2018년 1월 평택현덕개발지구로 지정되어 있다. 모두 70만평이다.

몇년 후면 모든 게 변해있으리라. 세월이 흐르면 강산도 변한다지만 그 속도가 너무 빠르고 급격해 쉽게 사라져가는 옛 모습이 아쉽다.

장수리부락을 넘어서 들을 건너면 신영리 매상동이다. 장수리 서쪽이어서 ‘서두메’라고도 했던 이곳은 나의 외가 동네였다. 어린 시절 뽀얀색마당(갯땅이라서)에 당도하면 외갓집에 온 실감이 나곤했는데, 집앞 들가운데를 흐르는 매상동 보(洑)는 전국에서도 이름난 붕어낚시터였다. 여름밤 수로를 따라 늘어선 카바이드 간드레불빛은 잊을 수 없던 정경이다.

바다가 앞에 있었지만 대개 반농반어(半農半魚)의 이곳사람들은 바다일에 그렇게 악착스럽질 않았다.

고기잡이 기술도 옛날방식이었다. 반면, 아무것도 없는 사람 중 바다에 일찍 눈을 뜬 사람들도 있었다.

전라도 해안가에서 올라온 강종열은 물고기가 다니는 길목에 말목을 박아 덤장 그물을 치는 기술로 배를 가진 다른사람들보다 열배는 더 잡았다. 뱀장어 새끼인 시라시 잡이로 무일푼에서 부자가 된 사람들도 있다. 이렇게 꾀와 노력으로 이룬 인생역전의 과정은 흥미롭다.

신영리 신전포 앞바다 한복판엔 썰물 때 수십만평의 넓은 모래톱이 드러난다. 모래톱엔 백합(대합조개)이 지천으로 박혀있었다. 잘 잡는 사람은 한물참에 큰 망태기로 그들먹하게 잡아왔다. 백합은 조개중에도 으뜸인 고급어종이었다.

경북영천 태생의 정억식은 60년대초에 헌병소령으로 전역한 사람이었다. 당시 5.16 주체세력과 줄이 닿았던 그는 그곳 모래톱에 백합양식장 허가를 따내고 사람들의 출입을 막는다. 하루아침에 난데없이 어장을 잃었건만 그곳사람들은 그런건가보다 하며 바라만 볼뿐인 순한사람들이었다. 시대또한 그러했다.

수년간 양식장으로 돈을 번 그는 평택호방조제 공사로 모래톱의 생태가 바뀌자 영업보상도 받아 신영리 신전포 일원에 수만평의 땅을 사들인다. 큰 젖소목장을 하며 축협조합장까지 지낸 그는 그 후 재산을 정리해 서울로 이주했다. 당뇨가 심했던 그는 60대초에 사망한다.

방조제가 생기고 바닷물의 유속이 느려지자 모래톱엔 진흙이 쌓이고 바지락과 맛조개가 앉았다. 항구가 들어선 지금은 그나마 옛이야기가 되었다.

추수를 마친 빈논엔 떨어진 나락을 노리는 기러기떼 수백마리가 앉아있다. 철새인 기러기는 가을이면 시베리아와 캄차카등 북쪽에서 날아와 여기서 겨울을 난다. 그리고 봄이 되면 다시 그곳으로 날아간다. 윤석중시 포스터곡의 ‘기러기’는 어릴 적 즐겨 부르던 동요다.

<기러기떼 기럭기럭 어디서 왔니 북쪽에서 날아오다 북한산에 들렀니

북한산 단풍 한창이겠지 요담엘랑 단풍잎을 입에 물고 오너라>

인기척에 놀란 기러기들이 날아오른다. 멀리 서해대교 교각이 보인다.

이계은평택섶길해설사전 평택시 송탄출장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