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개혁에 관한 일고 김누리 교수의 대안을 지지하며

2021-09-29     평택시민신문
조하식 수필가 · 시조시인전 국어교사

필자가 교단에 서있는 동안 교실이 붕괴한다고들 아우성이었다. 퇴임과 동시에 불어닥친 코로나바이러스의 창궐에 휘둘리고부터는 교육개혁을 외치는 목소리가 더욱 매섭다. 아닌 게 아니라 벌써 네 학기째 접어든 박사과정의 줌(zoom) 수업을 겪어내는 소회는 남다르다. 교육개혁의 본질은 무엇일까? 그 목표는 존엄한 인간을 만들어 정직하고 성숙한 민주주의자를 길러내는 데 있다. 서로를 이해하고 배려하며 불합리한 사안에 문제를 제기하고 약자의 고통에 교감하는 공동체를 이루어 함께 행복한 일상을 누리며 평생을 영위해 나가는 건 과연 꿈일까?

 

하지만 우리 눈앞에 가로놓인 현실은 녹록지 않다. 김누리 교수가 전한 베라르디의 진단은 촌철살인에 가깝다. 놀랍게도 그는 한국 사회를 보고 ‘끝없는 경쟁, 극단적 개인주의, 일상의 사막화, 생활 리듬의 초 가속화’라고 날카롭게 지적했다. 한국을 한마디로 강력한 현대 허무주의에 순응해버린 나라로 규정한 터였다. 자살률이 타국의 추종을 불허할 만치 앞서간다면 구차하게 변명할 여지조차 없다. 겨우 황국신민의 노예 상태를 벗어났다 싶었더니 동족상잔의 참극을 맞닥뜨렸고, 분단의 뼈아픔을 몸소 감내하며 당차게 가난을 극복했더니 이제는 치솟는 집값에 세계 최저 출산율로 인해 안락한 내일의 희망조차 기대하기 어려운 지경에 이르렀다.

교육개혁은 성숙한 민주주의자
길러내는 것, 경쟁 이데올로기에서 
해방돼야 미래에 대한 통찰력 길러진다

선거 때마다 매번 교육을 확 바꾸겠다는 공약이 쏟아지는 건 당연하다. 문제의 핵심은 늘 치열한 대학 입시제도에 있다. 교육개혁을 통해 사회를 바꾼 독일을 벤치마킹해 보고자 한다. 물론 살아온 역사적 배경이 다르고 국민 개개인의 의식구조가 다른 나라와 수평적으로 비교하자는 말은 아니다. 오랜 기간 점수를 앞세워 아이들 사이의 열등감을 키우거나 적성에 맞지 않는 요소들을 강요하는 반교육적 처사를 짚어보려는 나름의 제안이자 하소연이다. ‘교육하다(educate)’라는 원뜻처럼 각자가 지닌 재능을 밖으로(에듀) 끌어내는(케이트) 교육 활동이어야 한다는 주문이다. 이를 가능하게 하는 원동력은 공감대를 이루며 펼치는 교육 현장에 있다.


그 첫째는 나 자신과의 관계를 설정하는 올바른 성교육이다. 아도르노는 민주주의의 최대 적은 ‘약한 자아’라고 일갈했다. 프로이트의 정신분석이론에 따르면 에고(ego, 자아)에서 리비도(libido, 성충동)를 거쳐 초자아(superego, 사회적 규범, 도덕, 윤리)로 가는 시기에 문제가 생기면 죄책감을 갖게 되고, 그것을 내면화하면 권력 앞에 굴종적이 된다는 권위주의적 성격이론을 교육학에서 받아들인 참이다. 어려서부터 성적 자기 결정권을 갖되 반드시 행위에 책임을 지는 강한 자아를 길러주자는 의도다. 둘째는 타자와의 관계를 설정하는 정치교육이다. 불의한 권력에 당당히 맞서 저항하고, 대중을 속이는 선동가를 판별해내는 지혜를 깨우쳐주어야 한다. 셋째는 자연과의 관계를 설정하는 생태교육이다. 소비할 때 환경에 미안한 마음을 가지라는 것으로 독일의 신조어인 ‘플룩샴(Flugscham)’을 보면 지구를 가열하는 비행기를 탈 때 부담감을 느끼라고 가르친다. 환경보존을 위하여 불편을 감수할 수 있어야 한다는 자각이다.


이제는 경쟁 이데올로기에서 해방되어야 한다. 건전한 비판 교육을 통해 지식의 배후에 감추어진 이념에 대한 통찰력을 길러줄 때다. 무한 경쟁은 야만적일 뿐 선별을 위해 불가피하다는 논리야말로 착각이다. 자본주의의 도입으로 인해 약육강식이 버젓이 똬리를 튼 오늘날 과감히 국립대학만이라도 네트워크할 수 있다면 사립대학들도 차츰 변화를 도모할 것이다. 독일의 경우 성적 반영은 최대 20%로 한정한단다. 발상을 전환해 연대교육을 지향할 시점이다.


공감 교육을 통해 사람을 바꾸면 사회도 바뀐다. 경쟁을 부추기는 현행 대입제도를 그대로 두는 한 잠재력의 총합을 구현하기는 불가능하다. 비록 이상적일지언정 정의로운 사회는 노자 사상에서 나온 상선약수(上善若水)가 명답이다. 누구나 자아실현을 위한 교육의 기회는 평등하고, 성장을 향한 전 과정은 공정하며, 최선을 다한 결과에 감사하는 사회야말로 모두가 꿈꾸는 미래상이 아닐까. 고등학교 성적이 일생을 지배하는 부조리는 하루빨리 청산해야 마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