펜화로 만나는 평택섶길 풍경 1

2021-05-12     평택시민신문

마안산길 구진개 한기헌 가옥

‘평택섶길’은 평택의 작은 길들이다. 16개 코스 500리에 이르는 길은 물안개 피어오르는 호수 곁에, 호젓한 숲에, 고즈넉한 시골 마을에, 유서 깊은 시내 골목과 재래시장 등 다양한 곳에 이야기와 함께 짜여 있다. 섶길 여정에는 문화유산과 기념물, 역사 인물에 대한 테마들이 있다.

공직 은퇴 후 취미생활을 찾던 중 섶길과 인연을 맺게 되었다. 필자는 평택에서 나고 자랐지만 섶길을 처음 걷는 날 곳곳에 숨어있는 경관이 놀라웠다.

필자는 그림 그리기에 약간의 소질이 있어 평택섶길 오백리 16코스 풍경을 펜화로 그려 간단한 글과 함께 평택시민신문에 한달에 한번 연재할 계획이다. 이번 연재를 통해 많은 분들이 섶길을 함께 걸으며 우리 고장을 더 알게 됨은 물론 건강과 즐거움을 얻는 좋은 기회가 되길 소망한다.

 

청주 한씨 집성촌 구진개 마을

평택섶길 3코스 비단길 중 마안산길의 종착점인 구진개마을(대안4리)은 씨족 관계로 형성된 청주 한씨 300년 세거지(世居地)다. 한기헌 가옥은 그가 여덞 살 때인 1956년 대목(大木)이던 부친이 손수 지은 집이다.

한씨는 7명의 누이들 끝에 태어난 귀한 아들이었는데 어느 날 집 앞 들에서 참을 드시던 부친이 자신이 지은 집을 만족스럽게 바라보다가 아들에게 집을 잘 보전하라 당부했다. 그는 부친의 말씀을 유훈으로 새겨 집을 소중히 가꾸고 애써 지켜왔다.

서예에 조예가 깊은 그는 주련(柱聯, 기둥에 장식으로 써 붙이는 글귀)을 직접 써서 판각하고 방패연의 얼레를 즐겨 만드는 등 부친의 손재주를 내림받았다.

팔작지붕 이마의 로고는 성공회 문장인데 마을 주민 대부분은 성공회 신자다. 동네 언덕에 서 있는 85년 된 성공회 구진교회는 독립운동가였던 이택화 선생이 주선하여 세웠다.

교회는 ‘신명강습소’라는 학교를 열어 아이들을 가르쳤고, 배움의 기회를 일찍 접하게 된 이 외진 동네에 교육열을 불붙여 군 장성과 많은 고위공직자, 박사 7명, 교장 5명 등 인재를 배출하는 배경이 된다.

구진개 앞은 평택호다. 옛날 바다였던 때 이곳에는 숭어, 농어, 강다리(웅어), 황새기, 새우, 뱅어 등 물고기가 지천이었다. 안성천 하류의 강물과 바닷물이 만나는 곳이어서 물고기들이 산란을 위해 몰려들었기 때문이다. 특히 숭어철이 되면 각지에서 몰려든 어선들이 마치 개미 떼를 방불케 했다.

 

섶길의 이정표인 솟대

솟대는 섶길의 이정표다. 장대 위에 오리가 앉아 있다. 오리는 하늘, 땅, 물 3곳을 마음대로 다닐 수 있고 또 철새라서 어디론가 갔다가 때가 되면 나타난다. 그래서 옛사람들은 오리, 기러기 등을 저승과 이승을 연결하는 신령스러운 존재로 여겨 그들의 소망을 하늘에 전하고픈 상징물로 마을 입구나 바다가 보이는 곳에 세웠다.

모내기 준비로 물이 벌창인 구진개들 너머 평택호관광단지 석화봉과 평택-홍성간 철도의 윤곽이 보인다. 들 가운데로 도대천이 흐른다. 옛날 갯고랑이던 때 그곳엔 많은 추억이 있다. 개막(썰물로 바닥이 드러난 갯고랑 입구에 그물을 깔아 밀물과 함께 올라온 물고기를 들어 올린 그물로 가두어 잡는 방식)을 놓는 날이면 구경꾼이 몰려든다. 물빠진 갯고랑에서 펄떡이는 팔뚝만한 숭어, 농어를 잡는 것은 신나는 일이었다.

동네 대부분의 집들 주변엔 누가 시킨 것도 아니겠건만 꽃들이 가꾸어져 있고 정갈하다. 또한 동네 곳곳에는 옛날의 흔적들이 보존되어 있다. 몇 아름의 느티나무 정자목, 초막 아래 연자방아와 디딜방아, 옛날 공동 우물터 등 구진개는 평택 근현대사의 화석과 같은 곳이다.

이계은
평택섶길해설사
전 평택시 송탄출장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