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택 통복고가교 철거에 이의 있습니다
고덕면 주민
평택섶길 애호가
현재의 통복고가교는 1980년에 신설 개통됐다. 개통 이후 많은 학생이 교복을 입고 도시락이 든 묵직한 손가방을 굳은살이 박인 양손으로 번갈아 들어가며 혹은 만원버스로, 대부분은 삼삼오오 도보로 당시 평택읍 1번 국도를 따라 통복고가교를 건너 등하교를 했다.
이 고가교는 1977년 11월 3일 경부선 열차가 평택 통복건널목에서 시외버스와 충돌한 큰 사고후에 세워졌다. 사고는 평택읍 내 사춘기 전후 학생들과 인근 군·읍·면에서 통복 철도 건널목을 건너 통복 5일장을 이용하는 수많은 주민에게 안타까움을 안겨줬다. 필자는 가까운 세교 은실지역에 살았는데 동생이 그 사고를 목격하고 사고참상을 알려주었다. 당시 단발머리 여고생이었던지라 내가 본 것이라도 되는 양 소름이 끼치고 치를 떨었던 기억이 생생하다. 그래선지 통복고가교 설치에 관심이 컸고 개통 이후 이 고가교는 수십 년 바쁘게 이용하며 오갈 때마다 당시 사고를 되새기고 안전을 생각하여 경사면을 살피는 특별한 길이 되었다. 40여 년간 건재한 고가교를 대견하게 여기던 중 만성적인 차량 정체를 이유로 새로운 길인 통복 지하차도의 개통을 맞이하였다. 변화하는 도시환경에 맞춰 필요한 해소책이 마련된 것이다.
그런데 통복고가교를 단숨에 철거하는 것이 최선인가에는 의문이 크다. 일견 차량 정체 해소라는 목적을 이뤘으니 소용이 다한 고가교의 철거는 당연한 것으로 보일 수 있다. 차량통행을 위한 안전문제가 있는 것도 사실일 것이다.
통복고가교는 40여 년간
평택시민의 희로애락이
차곡차곡 쌓여온 통행로,
여유를 느끼고 ‘걸을 수 있는’
공중공원으로 탈바꿈시켜 주길…
돌이켜보면 통복고가교를 건너다녔단 평택과 인근 주민들은 그동안 너무도 바쁜 세월을 지냈다. 40여 년간 누구를 막론하고 동분서주 달려온 경제진흥과 고도성장이 목표였기 때문이다. 경기 남부와 충청남도에서도 유명했던 통복시장 덕에 이 고가교를 승객이 꽉 찬 시외버스들이 안심하고 달려다녔고 차비를 아껴야했던 사람들은 헐떡이며 걸어서 넘었다. 긴 세월동안 평택시민의 희로애락이 차곡차곡 쌓여온 통행로였다.
그러므로 다시 한 번 생각해보길 바란다. 우리 평택에 이처럼 유명하고 애달픈 정서가 스민 공용시설물이 몇 개나 남아 있는지를 말이다. 그것도 아직은 쓸만하고 유용하고 넉넉한 공간과 많은 이용가치를 담고 있다.
경제적 성과만을 위해 살았던 세대가 성숙되어 사회적 성과를 누릴 주체로 바뀐 지금 통복고가교를 그들과 그 후손이 여유를 느끼고 ‘걸을 수 있는 공중 공원’으로 탈바꿈시켜 주길 제안한다. 그리하면 서부지역과 팽성읍민에게도 생활 연계성이 유지되고, 침체된 통복시장에도 새 활력을 줄 수 있을 것이다. 우회전해 조금 더 시내로 들어가면 평택역 앞 오거리 광장 등 시내 곳곳으로 갈 수 있고, 고평지구에 입주한 이들에게는 느긋하게 걷고 싶은 특이한 녹지 명소가 될 것이다. 여러 장단점을 잘 검토하고, 인근과 다소 먼거리의 시민들에게 다시 의견을 물었으면 한다. 조망의 여유와 사계절 푸른 공간을 즐길 수 있게 의자, 바닥 열선, 장미터널 등을 설치하고 진출입로 주변에는 공중정원을 꾸미는 등 시민 아이디어를 공모해 보자.
평택의 역사 깊은 통행 관문이었던 통복고가교를 ‘신평택’으로 진입할 수 있는 거대한 아치형의 명소로 재생시켜 앞으로도 40년간 평택을 대표하는 근대역사유산으로 활용하여 그 가치를 드높여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