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균길-원균장군묘 주차장에서 시작하는 5.3km 순환형 길

2021-02-17     평택시민신문

우리 부부의 발걸음은 모선재(慕先齋)로 향했다. 자투리 시간을 활용해 5km 남짓한 ‘원균길’을 함께 걷기로 한 터. 내리저수지에는 낚시꾼들이 여럿 보였다.

앞이 탁 트인 원균(1540~1597) 장군 묘소. 아시다시피 이순신, 권율과 함께 임진왜란을 막아낸 선무(宣武) 1등 공신 중 한 분이다. 그 아래에는 애마총(愛馬塚)이 있다. 무려 천릿길을 달려와 주인의 전사 소식을 알리고 죽었다는 말 무덤을 본 뒤 원균에 관한 역사적 평가의 실체를 파악하기 위해 바로 옆 원릉군(原陵君) 기념관으로 갔으나 출입문을 꼭꼭 걸어 잠갔다. 워낙 찾는 이들이 드물어 마냥 인건비를 지출할 수는 없으려니 이해는 하면서도 예약을 받아 일정 시간 개방하는 건 어떨까 하는 생각에 안타까움이 컸다. 어느 날 갑자기 후배와 상하 관계가 뒤바뀐 현실을 선뜻 받아들이지 못한 채 갈등이 심해졌고, 그로 인해 두고두고 뭇 사람의 군입에 오르내리는 결과를 빚은 셈이다.

나라를 구한 이순신과 
중과부적으로 목숨을 바친 원균을
이분법적으로 나누는 
흑백논리는 받아들이기 곤란

그 오류를 경계하자는 목소리에 
두 귀를 기울여봄은 어떨까

“때를 놓쳐서는 안 됩니다!”라고 외치는 장군의 위용을 담아 그린 벽화. 농가 몇 채뿐인 갑골을 거쳐 둔덕에 오르니 위편 원균 사당으로 가는 방향이 아니었다. 겹치는 동선을 고려해 부러 그런 지는 모르겠으나 고개를 갸우뚱하지 않을 수 없는 대목이다. 능말에서 매번 시선을 끄는 가옥 한 채. 번듯한 본채를 비롯해 정갈한 정원수 중 나풀거리는 댓잎이 퍽 매력적이다. 다만 작은 성채 같은 담벼락에 내딛기 불편해 뵈는 돌계단은 아쉬운 지점이다. 곧바로 나타난 내리마을회관. 표지 없는 원균 생가터를 지나쳐 울음밭까지는 순탄했다. 하지만 가려진 콩나물샘이야 그렇다 쳐도 도움이 절실할 때 섶길 안내가 없는 건 심히 난감한 일. 한참을 이리저리 오가며 풀섶을 헤치고 외진 무덤을 기웃거려도 도무지 단서를 잡기 어려웠다. 도리 없이 평소 낯익은 길목에서 둘레길을 추적하기로 했다. 섶길 리본만 해도 빤히 아는 외길에 자주 달아놓을 게 아니다. 궁금하다 싶을 때 눈에 띄는 화살표만큼 고마운 길잡이는 없을 테니까.

설상가상 갈 길을 잃고 헤매는데 빗소리가 귓전을 울렸다. 황급히 큰 나무 밑으로 몸집을 피했다 싶을 때 피에 주린 모기떼의 습격을 받았다. 가려운 목덜미를 연신 긁적이며 숨은 섶길을 찾아 나섰으나 여전히 오리무중. 그렇다면 남은 선택지는 거꾸로 도는 수밖에. 냉큼 이정표를 따라 산길로 접어들었다. 목적지는 골짜기에 자리한 캠프장. 다행히 오르막을 두어 번 치달으니 금세 나왔다. 긴 장맛비로 인해 군데군데 파이긴 했어도 꿋꿋이 견뎌낸 경사지가 대견했다. 문제는 너저분한 인상을 주는 시설물들. 아닌 게 아니라 방문객의 눈에 거슬릴 만했다. 공터를 벗어나자 비좁은 길가. 비 갠 저녁나절 풀꽃들이 바람결에 흔들렸다. 이내 정골을 거쳐 안골에서 만난 ‘양세충효정문(兩世忠孝旌門)’. 비문이 들려주는 의병장 원연의 이야기는 눈물겨웠다. 원균의 동생으로서 황무지를 개척한 의병장. 군사적 식견을 갖추고 백성을 돌보며 연이은 승전에도 불구하고 장렬히 전사했다. 오늘따라 거친 엉겅퀴가 살갑게 다가왔다.

새롭게 접하는 역사문화를 통해 
기존 가치를 재정립하는 계기 마련이
섶길 걷기에서 얻을 수 있는 열매

새롭게 접하는 역사문화를 통해 기존의 가치를 재정립하는 계기를 마련한다는 게 섶길 걷기에서 얻을 수 있는 열매. 그런 뜻에서 서로 기질이 다르고 일 처리 방식이 달라 자칫 오해할 소지는 있되 이른바 성웅과 역적이라는 대척점에서 이순신과 원균을 바라보는 시각은 명백한 잘못이다. 물론 성패는 세기(細技)에 달렸듯이 매사 치밀한 쪽을 높이 사고 전술이 엉성한 축을 나무랄 수는 있다. 판옥선을 망가뜨린 자와 열두 척으로 이긴 자를 똑같이 재단할 수도 없다. 단지 나라를 구한 이순신과 중과부적으로 목숨을 바친 원균을 이분법적으로 나누는 흑백논리는 받아들이기 곤란하다. 그 오류를 경계하자는 목소리에 두 귀를 기울여봄은 어떨까?

조하식 수필가 · 시조시인고등학교에서 국어와 문학을 가르치며 수필집, 시조집, 기행집 등을 펴냈다. 퇴임 이후 기고 활동과 더불어 교육철학 박사과정을 이어가고 있다. 이충동에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