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린이 안 기자의 산행기 1

물 한 병 덜렁 들고 떠난 첫 산행

2021-01-06     안노연 기자

산행구간 짧은 고성산
가파른 오르막길 이어져
정상에선 동탄까지 보여

[평택시민신문] 코로나19가 일상을 잠식한 지 1년이 지났다. 지난해 연초에 세운 계획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하나둘 수포로 돌아갔다. 규칙적으로 운동하겠다는 다짐도 그중 하나다. 요가와 스피닝을 시작한 지 한 달도 채 안 돼 줌바 학원에서 확진자가 나오며 집단운동(GX)이 금지됐다. 얼마 못 가 헬스장도 문을 닫았다. 결국 늦은 퇴근과 피로에 “이게 다 코로나 때문이다”라는 핑계를 대며 운동을 피한지 수개월. 휴일마다 침대와 하나되는 시간이 늘어났다. 어느새 계단을 오르는 다리가 납덩어리라도 달린 듯 무거워지기 시작했다.

12월의 첫날. 마감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 누우니 문득 “얼굴이 좋아졌다”고 에둘러 말하던 취재원들이 떠올랐다. 날이 갈수록 풍선 마냥 부푸는 몸뚱이를 보니 “이대로는 안 된다”는 생각이 절로 들 수밖에 없었다. 뭐라도 해야 할 상태다. 갈 곳이 없다면 산이라도 타자. 산린이(‘등산’과 ‘어린이’를 합쳐 등산 초보자를 말하는 신조어)가 되기로 결심한 순간이었다.

12월 6일 고성산(298m)

언덕을 산이라고 부르는 평택이다. 산을 찾으려면 행정경계를 넘어야 한다. 아산 영인산과 안성 고성산. 고민 끝에 물 한 병 덜렁 들고 고성산으로 차를 몰았다. 등산을 즐기는 사람들은 부덕고백(부락산·덕암산·고성산·백운산)을 타겠지만 아직은 그럴 여유도, 체력도 없다.

차를 달려 정오께야 창진산장휴게소에 도착했다. 고성산에 오르는 길은 약수터·운수암·창진산장휴게소 셋이다. 창진산장휴게소 길은 가파르지만 주차가 편리해 많은 사람이 찾는다.

산에 오르기 시작했다. 앙상해진 겨울나무 사이로 난 계단을 오르면 가파른 오르막길이 나온다. 일명 헐떡고개다. 1km 남짓한 길이의 코스고 높이가 300m도 안 되지만 등산 초입부터 무수한 계단을 올라야 한다.

가파른 계단을 오르기를 두 번. 드디어 안성과 평택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바위 언덕인 선달고개다. 가파른 고개를 오른 이들에게 보상이라도 하듯 햇살이 몸을 감싼다. 이곳에선 선택해야 한다. 정상까지 거리는 짧지만 거친 암릉길과 선달고개를 돌아가는 길. 조금이라도 더 걷자는 생각에 후자를 택했다.

선달고개에서 10분을 더 걸어가면 나무 데크가 깔린 계단이 나온다. 정상이다. 여기서 바로 계단을 따라 올라가 정상 전망대로 올라갈 수 있다. 아쉽다면 나무계단 왼쪽의 좁은 산길로 우회해 오를 수도 있다.

오후 1시. 정상에 오르니 저 멀리 용인은 물론 동탄이 보인다. 코로나19로 답답한 마음과 몸에 덕지덕지 붙은 나태함을 바람에 실어 저 멀리 날려 보냈다. 정상에는 막걸리를 파는 노점이 있다. 컬컬한 목을 한 잔 술로 축이려는 이들과 안주로 나오는 중멸치 몇 마리를 얻어먹으러 오는 길고양이들이 이곳을 찾는다.

가지 않은 길을 두고 서운한 마음으로 서서 바라볼 순 없는 노릇이다. 하산길은 오를 때와 반대로 나무 데크 계단과 암릉길을 따라 내려갔다. 하산길에 만난 헐떡고개는 겅중겅중 뛰어 내려가는 내리막길이 됐다. 정상에서 많은 것을 바람에 날려 보낸 탓인지 계단을 내려가는 발걸음이 가벼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