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택섶길, 청북에서 황구지교까지 11km 신포길
물길 막힌 옹포 대신 생겨난 이름
청북읍사무소에서 출발해
덕지산·어소리 등 거쳐
서탄면 황구지교까지 11km 구간
[평택시민신문] 청북읍사무소를 출발한 발걸음이 굴다리를 지나 막 청북초등학교 울타리를 돌았을 때 다급한 전갈이 왔다. 뒤늦게 따라온 이와 찾는 이의 숨바꼭질. 후문을 정문으로 오인하는 바람에 꼬리에 꼬리를 물고 뒤진 끝에 ‘신포길’에 합류할 수 있었다. 한참을 기다리는 동안 나는 주위에 흩어진 풀꽃들을 사진기에 담았다. 이채로운 건 야관문(생약명). 관련 자료를 뒤적이니 꽃말은 욕망, 맘속에 감춰둔 사랑이란다. 흔히들 부르는 비수리(식물명) 말고도 별칭만 무려 여남은(공쟁이대, 노우근, 철소파, 마추, 백마편, 천리광, 호지자, 산채자, 폐문초, 공모초, 음양초, 백관문, 야폐문 등)이라면 잎새가 셋인 점을 헤아려 삼엽초라고 통칭하는 게 어떨까 싶다. 원산지는 한•중•일 외 인도와 호주까지 퍼져있으며, 35도가량의 증류주에 6개월쯤 우려 복용하면 양기 부족은 물론 심혈관이나 기관지 등의 기능 회복에 효험을 본다고 씌어있었다.
차량통행이 빈번한 이면도로가 싫어질 무렵 다행히 덕지산 자락이 우릴 반겼다. 솔잎이 깔린 푹신한 산길. 우거진 수풀에서 자라는 수종은 다양했다. 도토리나무와 자귀나무를 비롯해 토종 바나나에 해당하는 으름 열매에 보태 요즘 보기 드문 개암에다 손을 대는 이도 있었다. 이정표에서 잠시 비켜나 시원한 음료를 나누며 숨결을 고른 다음 오늘 길잡이를 맡은 한도숙 씨의 해설이 이어졌다. 지금이야 도토리묵이 최고의 건강식이라지만 예전에는 밥풀떼기에 뒤섞어 허기를 메우는 연명 양식, 즉 구황식물이었다는 구슬픈 얘기로부터 내뻗친 칡뿌리에 담긴 어원 풀이까지 귀담아듣는 표정들이 사뭇 진지했다. 이를테면 민가의 동태를 살피며 서 있다는 상수리나무는 용케도 작황을 가려 스스로 열매양을 조절한다니 실은 해거리마저 호사가들의 자의적 해석인 터. 칡과 등나무를 빗댄 낱말이 ‘갈등(葛藤)’이라는 건데 알고 보면 이거야말로 상생의 본보기로 삼을 만하다는 문리(文理)로다. 그도 그럴 것이 등나무는 오른쪽, 칡덩굴은 왼쪽으로 휘감아 올라가니 서로 얽히고설킬 까닭이 하등 없다는 설명이다. 곧 불협화음은 인간들이 만들어낼 뿐 자연의 이치는 감히 범접지 못할 신의 섭리에 속한 영역이다.
어소리 쪽으로 향하는 발길들. 그렇게 얼마간 흙길이 이어졌다. 여기 토박이들이 부농을 이룬 건 인삼밭 덕분이랬다. 거기서 일행과 고구마꽃을 봤다. 민심이 흉흉할 때 핀다는 민담이 생각나 슬며시 현 정부에 대한 인식을 물으니 역시나 낙제점. 그게 무슨 기준을 갖고 평가하는 거라면 모를까 무조건 싫다는 식의 반응은 딱 질색이다. 동네 한가운데 우뚝 선 보호수는 굵은 은행나무. 수령이 300년이나 된 그늘 아래서 짧은 명상의 시간을 가졌다. 조물주가 내린 햇빛, 물, 공기에 감사하며 물아일체의 심정으로 살아가자는 이경희 님의 진행사. 일상의 짐을 내려놓고 대자연에 마음껏 취해보라는 권고였다. 잠깐의 묵상이 끝나자마자 아무렇게나 떨어진 살구여도 그렇지 임자는 있을 텐데 저마다 주워 맛보기에 바쁘다. 농익어 절로 낙과했을 수 있으나 병든 것일 수도 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주머니에 주섬주섬 담는 이가 보였다.
쉼터를 허락한 마을을 벗어나니 전철길. 화성과 평택의 경계선을 따라 한산한 시골길을 걸었다. 신포는 물길이 막힌 옹포 대신 새로운 포구를 만들면서 생겨난 이름. 11km에 이르는 섶길을 밟아왔음에도 좀처럼 표지판을 만나기 어려웠다. 둥근 표지석 한 개가 없을 만큼. 단지 대로변에 옛 주막터만 남았으되 그 지붕은 현대판 슬라브여서 희미한 정취를 맡기조차 불가능했다. 어쨌거나 서탄과 고덕으로 갈리는 이정표를 보니 언젠가 스쳐 지나간 느낌은 들지언정 마구 파헤친 공사장을 피해 우회로를 택했다는 알림이 있기 전에는 알 수 없는 노릇이다. 어느새 당도한 황구지교. 그 천변에서 지화자를 외친 뒤 출출한 배를 달래려 길을 재촉했다.
고등학교에서 국어와 문학을 가르치며
수필집, 시조집, 기행집 등을 펴냈다.
퇴임 이후 기고 활동과 더불어
교육철학 박사과정을 이어가고 있다.
이충동에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