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으로 모든 꿈 이룬 사람 최해숙 전 기쁜어린이도서관 관장
[창간 22주년 특집 와이드인터뷰]
어린이 문화운동으로 평택 문화사에 큰 업적 남겨
‘책으로 한번 놀아보자’ 생각으로 아이들에게 책 읽어줘
쉰아홉에 어린이도서연구회서 어린이책 공부 시작
가나안어린이도서관 평택지역 사립 어린이도서관의 모태
[평택시민신문] 최해숙 관장에게는 ‘어린이 책 읽어주는 할머니, 작은 도서관의 대모’라는 수식어가 따라 다닌다.
‘어린이 책 전문가’로 당당하게 인정받고 있는 최해숙 관장(80)이 어린이 책을 공부하기 시작한 것은 나이 쉰아홉이 되어서였다. 아들내외와 함께 살면서 얻은 손주에게 책을 읽어주다 어린이 책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이주영 작가의 ‘어린이 책을 읽는 어른’을 만났는데 지금 보면 별 내용도 아닌데 ‘겨레의 희망, 어린이에게 책을 주자’라는 글자에 눈이 붙들렸어요. 이주영 선생님께 전화를 드려 어린이 책에 대해 공부하고 싶다고 말씀드렸더니 어린이도서연구회를 소개해 주셨죠. 그 길로 등록을 하고 1년을 매주 서울로 다니며 어린이문학을 공부했어요.” 어린이도서연구회를 처음 만난 날을 그동안 머물러 있던 세상과는 전혀 다른 세상을 향해 첫 발을 뗀 날이라고 말하는 최해숙 관장은 그렇게 어린이 책에 흠뻑 빠져들었다.
서울로 공부하러 다니는 한편 가나안교회 담임목사로 시무하고 있던 남편의 허락을 받아 교회건물 안에 비어있던 방 하나에 어린이 책 몇 권을 갖다놓고 아이들을 모아 읽어주기 시작했다. 방문에는 ‘동화나라’라고 쓴 문패도 걸었는데 1996년 2월이었다. 이후 ‘가나안어린이도서관’으로 이름을 바꾸었고, 평택지역 사립 어린이도서관의 모태가 되었다.
어린이도서연구회 회원 교육을 받고 나서 송탄에 ‘동화읽는어른모임’을 시작했다. “1998년이었어요. ‘동화나라’ 공부방을 모임 장소로 삼아 어린이 책을 읽고 어린이 문화운동을 펼쳐나갔어요. 송탄에 문화공간도 놀 거리도 없던 시절 아이들은 학교가 끝나는 대로 ‘동화나라’에 30~40명씩 몰려왔어요. ‘동화나라’에서 하는 프로그램들을 좋아했는데 그보다는 틈틈이 먹던 간식이 더 인기 있었지요.”
송탄 동화읽는어른 모임 어린이 문화운동의 중심 돼
어린이문학이라는 단어가 생소했던 송탄에서 최해숙 관장이 처음 시작한 ‘가나안어린이도서관’, ‘송탄동화읽는어른모임’(나중에 어린이도서연구회 송탄지회로 바뀜)은 문화적 환경이 열악했던 송탄지역 젊은 엄마들의 큰 관심을 끌었다. 어린이 문화에 목말라있던 아이들이 모여들고, 엄마들의 열정과 헌신적인 도움으로 송탄 동화읽는어른 모임은 결성되자마자 지역 어린이 문화 운동의 중심이 되었다. “저는 열정 하나로 이 일을 시작했지만, 새로 온 회원들 가운데는 어린이 문화운동에 대한 애정은 물론이고 뛰어난 능력을 갖춘 젊은이들이 많았어요. 해마다 신입회원을 모집해 일 년간의 교육과정을 끝내면 정회원이 되는 송탄 동화읽는어른 모임 3기 회원모집 때는 평택에서 생태 운동을 하는 엄마들이 많이 와서 정회원이 되었어요.” 이들이 평택에 동화읽는어른모임을 만들었다. 역량을 갖춘 송탄지역과 평택지역 동화읽는어른모임 회원들이 지역 도서관에서 활동을 이어나가면서 도서관에 활기를 불어넣었다. “우리 일에 대한 긍지로 똘똘 뭉쳤던 이들이 하는 행사마다 참가자로 성황을 이루었죠. 지역민들에게 많은 관심과 사랑을 받았어요.”
가나안어린이도서관 활동, 모든 게 평택에서 처음
가나안어린이도서관이 시작되던 1996년, 도서관이 평택에는 시립도서관 하나뿐이었는데 지금은 공공도서관이 11개가 있다. 사립 작은 도서관은 40여 개가 등록되어 있다. 당시 가나안어린이도서관의 활동은 평택지역에서 모든 게 새로웠다. “지금은 학교, 보육원, 방과 후 교실, 지역아동센터에서 책 읽어주는 것이 특별하지 않지만 도서관이 책을 가지고 지역민을 찾아간 것은 가나안어린이도서관이 성육보육원에 책 읽어주러 간 게 처음이었어요. 해마다 가을이면 시민공원에서 책 잔치마당을 열어 도서관 홍보를 하고, 어린이 책을 읽어줬어요. 좋은 그림책 이야기를 그림자극으로 만들어 어린이집, 유치원, 학교나 노인요양원에서 공연도 하고요. 문화 불모지나 다름없는 평택지역에 가나안어린이도서관과 동화읽는어른 모임이 시민운동으로 평택 문화사에 큰 업적을 남겼다고 자부합니다.”
기쁜어린이도서관 관장되다
최해숙 관장은 2007년, 열심히 활동하던 가나안어린이도서관을 떠났다. 남편이 개척해서 30년을 시무하던 가나안교회에서 정년퇴임을 맞으면서였다. 2005년부터 책을 옮길 대체 장소를 찾아보았으나 구하지 못하고 결국 폐관신고를 냈다. “여호와 이레라는 말이 있어요. 하나님이 준비하셨다는 뜻인데 가나안어린이도서관을 마음 아프게 떠난 제게 기쁜교회 안에 있는 기쁜어린이도서관의 운영을 맡겨주셨어요. 기독교인이지만 도서관 운영 철학은 탈종교인 저와 생각이 같은 손웅석 담임목사님이 계시고, 어린이도서연구회 송탄지회 회원들까지 함께 옮겨올 수 있어 신이 났죠. 그렇게 기쁜어린이도서관, 더기쁜어린이도서관에서 2007년부터 관장으로봉사하다가 2016년 12월에 퇴임했어요.” 사립 어린이도서관 관장으로 봉사한 지 20년 6개월 만이었다.
『어린이책으로 배운 인생』 출간
올해 8월, 최해숙 관장이 『어린이책으로 배운 인생』 제목의 책을 냈다. 1938년 전남 광주에서 태어난 그는 일제강점기와 해방 전후의 혼란, 전쟁의 아픔과 전후의 궁핍했던 시절을 지나온 자신의 상처를 다독이고 화해한다. 어린이 책을 만나면서 평생을 갈망했던 제대로된 공부의 길에 들어선 기쁨을 나누며 지역 사립 작은도서관 운동의 역사를 기록했다.
최해숙 관장은 ‘어린이 책’ 전문가로서 지난달에는 평택시민아카데미가 평생 한 가지 일에 매달리며 지역사회 발전에 헌신한 선배 지도자의 이야기를 듣고 기록하는‘ 지역원로 생애사 아카데미’에 초청되어 어린이 책과 함께 살아온 20년 인생사를 시민, 후배들에게 들려주기도 했다.
다시 아이들에게 책 읽어줄 생각에 신나
책으로 모든 꿈을 이룬 사람, 책으로 장애에 가까운 마음이 치유된 사람이라고 자신을 소개하는 최해숙 관장은 요즘 북에서 온 사람들 임대아파트 작은도서관을 꾸미고 책 읽어줄 생각에 신이 나있다. “이 아파트에 들어오면서 공원을 둘러보면 늘 사람들이 있어요. 엄마들이 있고, 아이들이 있고, 바로, 일할 수 있는 곳이에요. 도서관 운동 처음 할 때처럼 엄마들과 아이들과 우리, 책 가지고 한번 놀아보자 하는 생각으로 아이들에게 책 읽어주고 싶어요. 사람이 변화하는데 많은 책이 필요하지 않아요. 고민의 지점에 딱 맞는 책이 만나질 수 있는데 그게 사람을 완전히 바꿔 놓을 수 있어요. 책에 대한 매력을 경험해 볼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고 싶어요. 한 가지 더 하고 싶은 일이 아이들에게 글쓰기 훈련을 시키고 싶어요. 글이라는 게 읽을 때와 쓰기까지 할 때 결과가 달라요. 쓰면서 생각이 여물어지고 쓰면서 치유가 일어나요. 이 단계를 거쳐야 자기 생각이 정리돼요. 이왕에 사는 거 하나님이 힘주시는 데 까지 열심히 해보고 싶어요.” 어린이 책 읽어주는 품 넓은 할머니의 치열함과 용기에 박수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