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15일

김성경 <송탄여중 교사>

2003-05-21     평택시민신문
▲ 김성경<송탄여중 교사>
어김없이 아이들은 빨간 카네이션을 가슴에 달아주고 ‘스승의 날 노래’를 열심히 불러주었다. 그동안의 미안함을 툭 털어 내 듯.

마흔을 넘겨서인지, 좀 길어진 교육 경력 탓인지 아이들의 노래 소리는 밋밋하면서도 묵직하게 가슴을 아리게 했다. 초임 시절의 얕은 미안함, 눈시울 뜨거워짐과는 다른 느낌에 내가 낯설어지기까지 했다.

이어지는 선물 의식은 늘 그래왔듯이 날 당혹스럽게 했다. 예나 지금이나 딱히 이 순간을 모면할 표정을 찾지 못해서이다.

아이들이 놓아둔 선물에 눈길이라도 닿을라치면 마음 깊은 곳에서 고개 드는 표현할 수 없는 속 쓰림이 내 말문을 막아서기까지 한다. 그저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나, 당혹함을 감추려는 결연한 음색으로 ‘고맙다.’할 뿐이다.

올해는 한 아이가 던진 말에 속 깊이 가라앉아 있던 어눌함이 말문을 틔었다. 대개의 아이들이 그렇듯 붉은 장미 한 송이와 편지를 내밀며, “선생님, 전 가난해서 이것밖에……”라고. 족히 시간 반은 ‘가난’과 ‘선물’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가난은 죄가 아니다. 단지 생활하기에 좀 불편한 것뿐’이라거나, ‘선물은 받는 사람뿐 아니라 주는 사람도 행복하게 하는 것이다.’거나, ‘행복은 물질적 가치로 가늠할 수 없는 것’이라든가.

사실 그 날 이미 색다른 선물을 받았던 터였다. 학교 어머니회에서 마련해주신 선물이었다.

매년 스승의 날이면 어머님들이 보내주신 작은 감사의 선물 보따리를 들고 집으로 향했었다. 그런데 올해는 달랐다.

출근길. 현관으로 오르는 계단에는 활짝 핀 꽃 가득한 화분이 꽃길을 연출하고 있었고, 의아하고 화사한 마음으로 다가섰을 때는 화분마다 달려있는 선생님들의 이름표를 볼 수 있었다.

몇몇 화분에는 편지까지 꽂혀 있었다. 뒤에 알고 보니 밤사이 어머님들께서 선생님 한 사람 한 사람의 화분을 준비하고 꽃길을 만들었으며 아이들과 함께 감사의 편지를 꽂아 두신 것이었다.

더욱 고마운 것은 이 멋진 이벤트(?)를 위해 많은 시간을 머리를 맞대고 고민하셨다는 것이다.

‘예전처럼 선물을 드리지 않아도 될까?’, ‘어떤 선물로 감사의 뜻을 전할까?’, ‘꽃 화분을 어디에 어떻게 놓을까?’, ‘운동장에 하트를 만들까?’

선물은 받는 사람에게만 감동을 주는 것이 아니다. 선물을 꾸리는 사람에게도 감동에 젖게 한다. ‘무엇을?’, ‘어떻게?’하는 고민은 상대를 읽게 하고 가슴을 파고들며 품게 한다.

준비하고 건네기까지 감동은 주는 이의 몫이다. 그리고 건네져서 받은 이와 함께 나누게 되는 것이다.

그 나눔이 받은 이로 하여금 주는 이와 함께 세상을 일구어 가게 한다. 감동이 담긴 선물은 우리에게 얼마나 소중한가. 더 이상 물질에 퇴색되어 가는 메마른 선물로 아파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 날 난 어슴푸레 어둠이 깔린 꽃길에 다시 섰다. 횡한 운동장 위에 소복이 감동과 열정이 내려앉고 있었고, 한켠에는 가난한 아이가 함께 하고 있었다.

<교단에서 온 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