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님 지순자가 회상하는 아버지 지영희

특별인터뷰

2014-11-05     고기복 기자
▲ 장구를 알기쉽고 재미있게 가르치는 지순자 교수

평택이 낳은 불운한 국악 천재 지영희는 해금 명인으로 국가중요무형문화재 ‘시나위’ 기능보유자였다. <지영희 특별전>에 앞서 큐레이터 교육이 진행되던 평택호텔에서 만난 지순자 명인은 지영희 선생과 가야금산조를 완성한 성금연 명인의 다섯째 딸이다. 양친의 예술성을 그대로 물려받아 어려서부터 탁월한 재능을 드러냈던 지순자 명인은 최근에 거의 사라지다시피한 악·가·무(樂歌舞)가 가능한 흔치 않은 국악인이다.

지 명인은 40년전 갑작스런 부모의 이민으로 전혀 다른 세상을 경험하고, 한국에 돌아오기까지 가야금을 손에서 놓지 않았다. 결국 그녀만의 독특한 리듬과 장단, 멋으로 승화시킨 가야금으로 일가를 이루고 현재 우리 국악을 세계무대에 진출시키고 후진 양성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 가야금 전수관 ‘수임당’대표로 서울대와 한국예술종합학교 등에 출강 중이다. 그녀가 털어놓는 아버지 지영희는 엄격하면서도 융통성을 발휘할 줄 아는 교육자였다.

부친인 지영희 선생이 만든 ‘시나위’를 설명해 달라는 말에 그녀는 “시나위는 ‘신(神)아(我)위(慰)’를 소리글자로 표기한 거예요. ‘신을 위로하는 음악’이라고 할 수 있고, 음악의 달인들이 자연스럽게 음을 맞추는 ‘국악의 재즈’라고 보면 되죠. 악보를 의지하기보다 천재적인 음악가들이 즉석에서 흥겹게 겨루는 음악이었어요”라고 답했다.

그녀가 국악과 재즈를 연결시켜 답한 이유는 지영희 선생이 딸들에게 국악을 가르치며, 국악의 대중화와 세계화를 위해서는 서양 음악도 알아야 한다고 했던 데서 나온 것이었다. 즉, 국악의 대표적 즉흥 음악인 산조에 서양의 탭댄스, 재즈댄스, 한국무용 등을 혼합시키려는 노력을 지영희 선생 본인이 자식들을 가르치며 시도했었다고 한다.

지순자 명인이 기억하는 아버지는 “온 국민이 국악의 ’흥‘을 쉽게 배우고 즐길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계셨다고 한다. 또한 언제나 책상머리에서 악보를 그리고, 전국에서 녹음한 소리를 기록하고, 자식들에게 들려주던 모습이다.

그녀는 가야금을 전수하다보면, 국악교육이 아버지 지영희 선생이 지향하던 바와 달리 너무 어렵게 변질되었다는 사실을 매번 보게 된다고 한다.

“국악은 쉽고 흥이 있는 음악이에요. 남녀노소 쉽게 배울 수 있어요. 그런데 요즘은 좀 배울만하면 다들 어딘가 아프다는 거예요. 잘못된 주법 때문에 그래요. 가야금이나 해금을 연주할 때 오른손바닥 인대가 아프고, 목이 지나치게 경직되고, 왼 손목이 붓고 아프고, 오래 앉아 있기도 힘들다 하는 사람이 많아요. 그런 사람들은 결국 수술 받는 게 예사예요. 잘못된 주법으로 배운 사람들은 빠른 가락에 들어가면 손가락이 꼬이고 소리는 가늘어져요”

잘못된 교육을 받은 사람들은 바로잡기가 쉽지 않을 뿐만 아니라, 잘 가르쳐 놔도 다른 곳에 가서 잘못된 연주법으로 되돌아가는 것을 볼 때면 그렇게 안타까울 수가 없다고 한다. 아버지의 유지를 받들어 국악교육을 좀 더 체계적으로 쉽게 전수할 수 있도록 노력한다는 지순자 명인은 국악의 기본인 장단을 소홀히 하는 요즘 세태 때문에 국악의 질의 떨어지고 있다고 안타까워한다.

“예전에 우리 부모님은 좋은 대우 받고 해외에 초청받아 가셨어요. 62년 파리 세계민속예술대제전이나 그 후 10년이 흐른 뒤 카네기홀 공연처럼 잘 알려진 경우 말고도, 해외공연은 언제나 주최 측으로부터 상당한 대우를 약속받고 갔었고, 열렬한 환대와 갈채를 받았어요. 그런데 요즘은 돈 받고 가는 게 아니라, 정부 지원받고 나가서 돈 쓰고 들어오는 거잖아요. 예술인은 예술인들끼리 감이 있어요. ‘아, 이 사람이 실력이 있구나, 없구나’하는 걸 들어보면 알아요”

그러면서 최근 K-pop이 한류 붐을 일으키는 데는, 우리 가락, 장단이 바닥에 깔려 있기 때문이라는 말도 잊지 않았다. 지 명인은 ‘G드래곤의 빅뱅 같은 경우 국악예고 출신인데, 우리 장단이 세계음악과 어울리고 통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지 않느냐’며 국악이 서양음악보다 박자 감각이 뛰어나고, 흥을 담을 수 있는 만큼, 국악의 기본인 장단, 박자에 좀 더 충실하면 국악한류가 반드시 불 것이라고 장담한다.

“덩더쿵, 겨드랑이를 들고 바람난 남편 귀싸대기를 후려친다는 생각으로, 부엌에서 파 썰 때 칼 쥐듯이 채를 잡고 두드려요. 참 쉽죠?” 강의에 일상을 끌어내는 지 명인의 비유에 교실은 순간 웃음바다가 되었다. 흥이 있고, 웃음이 넘쳐나는 국악교실, 지영희 선생이 꿈꾸던 모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