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증오와 갈등의 낡은 사고와는 작별
이 은 우<평택참여연대 사무국장>
2003-01-15 평택시민신문
평택을 대표한다는 분들이, 나도 무심코 들러 물건을 산적이 있을법한 미군기지 앞 상인들이 촛불추모행사에 참여했던 수많은 그들의 이웃이자 손녀들에게 증오의 목소리를 외치며 “미군이여 우리를 버리지 마십시오”라고 염원하는 광경은 분노보다는 연민의 정을 들게 한다. 이 이해하기 어려운 “야만의 쇼”는 이제 평택도 변화와 개혁속에 새로워지겠다는 순진한 생각에 긴장감을 다시 준다.
21세기는 다양한 가치와 문화, 삶의 양식이 존중되는 사회라는 사회적 동의를 전제한다. 그러나 일부 지역인사들이 보인 행태는 도저히 성숙한 시민사회가 받아들이기 어려운 증오와 분열 논리의 연장일 뿐이다. 이런 시대착오적이고 광기 어린 행태가 통제되지 않는다면 상생의 문화, 격렬하지만 건강한 논쟁은 자리를 찾을 수 없다.
자신들과 생각이 틀리다고 해서, 이익이 침해받는다는 이유만으로 선한 이웃의 행동들을 우리사회가 받아들이기 어려운 가장 극단적인 형태의 목소리로 재단하는 행위는 법적 문제 이전에 성숙한 시민사회를 파괴하는 크나큰 죄악이다. 나와 의견이 방식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누구도 함부로 사람에게 무수히 많은 화살을 쏘아대며 혐오하거나 짓밟을 수는 없다. 이것은 물리적 폭력보다 더한층 어렵게 형성되고 있는 민주주의를 후퇴시키며, 공동체를 파괴한다.
그동안 수천명의 평택시민이 참여하고 수백만의 국민이 참여하여 불평등한 소파(SOFA)개정을 통한 한미 관계의 재정립을 요구한 촛불추모시위는 역사적으로나 올바른 시민사회 형성에 있어서도 획기적인 전환점이 될 사건이다. 월드컵은 당당한 대한민국을 외치던 시민들의 문화적 축제였다면, 촛불추모시위는 우리사회가 풀어야 할 한미관계의 재정립이라는 사회적 담론을 가지고 자발적으로 시민이 모여 만든 역사적 축제인 것이다.
양심과 정의의 불꽃으로 나아가자
수많은 시민들을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촛불을 들고 거리로 나서게 했던 원동력은 무엇일까? 그것은 아주 상식적인 분노이자 추모의 마음이다. 두 여중생의 어처구니없는 죽음, 그리고 도저히 납득하기 어려운 미군의 무죄 평결에 대해 분노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속에서 시민들은 이런 현실이 잘못된 SOFA 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래서 개정을 요구했고, 대등한 한미관계를 요구하게 된 것이다. 그렇지만 수백만의 국민이 자발적인 마음으로 참여하여 역사적인 불꽃을 피우고 있지만 아직도 어느 하나 제대로 해결된 것이 없다. 이것이 한미관계의 답답한 현실이다.
지금 우리에게 더욱 필요한 것은, 월드컵이 끝난 직후 들불처럼 일어났던 고(故) 효순이·미선이의 넋을 기리고자 하는 마음이요, 추운 겨울 전국 아스팔트를 ‘아름다운 촛불‘로 수놓았던 양심과 정의의 마음이다. 더 이상 불필요한 논쟁으로 밤하늘을 밝혔던 그 아름다운 촛불을 왜곡시키지 말자.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미군철수 반대집회나 색깔론이 아니라, 불평등한 소파를 개정하고 그 힘으로 한미관계의 대등한 조건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여기에 색깔론이 등장할 이유가 없다. 함께 어려운 한반도의 상황을 고민하고 슬기롭게 극복해 나갈 공동체의 역량을 보여야 한다.
특별히 평택지역은 그동안 단체가 중심이 되었다기보다는 자발적으로 어느 도시보다도 많은 청소년, 주부, 가족단위의 시민이 참여하여 여중생의 죽음을 추모하며 불평등한 소파개정을 위한 촛불을 밝히고 있다. 그만큼 미군 주둔지역이라는 현실에서 지역민은 대등한 한미관계의 재정립을 피부적으로 느껴왔던 것이다.
촛불추모행사 참여자를 좌경용공세력으로 몰아 세우는 이유가 감정적인 반미시위로의 변질, 그리고 추운 날씨에 고생하는 아이들을 걱정하는 거라면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평택시민들이 보여온 성숙한 민주주의 의식과 애국심은 대단한 것이다. 정말 우려되는 것이 그러한 부분이라면 시민단체와 시민에게 적극적으로 맡기고 함께 참여해서 성숙한 축제로서의 촛불행사로 만들어 가기를 바란다.
“이 상태를 방치하면 우리 아이에게도 언젠가 저런 비극이 닥칠지 모른다는 절박감에 딸을 데리고 나섰다.” 는 어느 주부의 목소리가 아직도 귀에 생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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