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세당 한약방 이계석 장로
어르신에게 듣는다 ③
3선 도의원 경기도의회 의장으로 평택항 발전계기 마련이 보람
“ 김 시장은 누구보다 지방행정을 많이
경험하신 분으로 순수한 생각에서
저는 도와드렸습니다.
올해 지방선거에서는 그를 능가할
행정력을 가진 사람이 나올지
검토해봐야 할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서부권은 평택항과 해군기지 등
국가시설이 있으나 다른 지역에 비해
매우 취약합니다. 평택항을 중심으로 한 사업이
조속히 진행됐으면 좋겠습니다.“
1991년 지방자치제도가 부활한 첫해에 제3대 경기도의원선거에 나가 당선된 후 4~5대까지 내리 3선을 하고 물러난 이계석 전 도의원을 만났다. 그 사이 나이는 73살의 황혼기에 접어들었지만 전혀 노인 같아 보이지 않고 오히려 젊게 보였다. 목소리도 활력이 있었다.
지금은 의정활동 대신 안중읍에서 가업인 ‘연세당한약방’을 운영하는 한약사로서 자신의 건강을 관리하기 때문인 것 같았다. 인품도 온화하고 리더십도 탁월해 그는 3선 도의원 시절 의장에 뽑혀 2년간 도지사와 함께 경기도를 대표하는 쌍두마차 역할을 하기도 했다.
□나사렛대학교 이사로 활동
이제 정치에서 한 발짝 물러난 그에게 생업 못지않게 관심을 기울이는 일이 있다면 장로로 안중나사렛교회를 섬기고 아시아태평양지역 나사렛신학대학원(APNTS) 이사와 한국나사렛대학교 이사로 활동하는 일이다.
그는 자신의 호칭을 장로로 불러주기를 원했다. 70세 장로 정년은 벌써 지났기 때문에 지금은 원로장로다.
12년간 의정활동을 하면서 기억에 남는 일은.
“제5대 도의회 전반기였던 1998~2000년, 의장을 지낼 때 도에 두 가지 큰 사업이 있었어요. 여주·이천·광주 도자기 엑스포를 열 수 있는 장소 선정을 위해 당시 임창렬 도지사와 함께 헬기를 타고 다녔던 일이 기억납니다. 평택항에도 임 지사와 함께 헬기로 답사를 했죠. 그 다음해에는 제가 도 단위 기관장들을 초청해 포승산업단지와 평택항을 둘러보게 했어요. 그 후 경기도가 평택항만에 관심을 갖고 투자를 하기 시작했어요. 저로서는 이 지역 사람으로서 의장시절 평택항의 발전을 위해 주춧돌을 마련했으니 상당한 의미가 있었고,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평택항은 그때부터 경기도가 투자를 하기 시작하면서 활성화되었지요.”
요즘 서해안시대를 맞아 평택항의 물동량 규모가 날로 커지고 있으나 이에 걸맞게 정부의 투자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며 지역에서는 불만이 많은데.
“저는 정치 일선에서 물러난 지 오래 돼 관심을 갖지 못하고 있습니다만 안타깝습니다. 평택항 주변 60만 평이 노는 땅으로 방치되고 있는데 계속 투자가 이뤄져 개발이 되면 좋겠습니다.”
도의원 3선을 하고 나서 평택시장이나 국회의원 도전은 하지 않으셨는지.
“시장에 나갈 생각은 전혀 없었고, 국회의원 출마는 기회가 있었으나 접었습니다.”
□정장선 전 의원은 도지사 나가야
그는 2000년 제16대 총선을 기억하면서 당시 자민련 소속으로 같은 평택 출신으로서 함께 의정활동을 했던 정장선 도의원에게 기회가 돌아갔다고 회고했다. 정장선 전 도의원은 그때 국회의원 배지를 달았고, 내리 3선까지 하며 승승장구했다. 반면에 이 장로는 3선 도의원으로 마지막 방점을 찍었다. 욕심을 낸다면 도의원 4선도 가능했지만 그는 후배들에게 길을 터주기 위해 흔쾌히 물러났다. 2002년 7월부터 그는 야인으로 돌아간 것이다. 그러나 후회는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민주당 원내 사무총장까지 지낸 정장선 전 의원에 대해 이렇게 평가했다.
“정장선 의원은 정치인으로서 상당히 좋은 품성을 갖고 있습니다. 대단히 착하고 양심적인 분이죠. 2012년 총선 때 4선 불출마 선언을 하는 모습을 보고 신선한 충격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정 전 의원이 이재영 전 의원의 국회의원직 상실로 2년 전까지 지켜왔던 자신의 자리(평택을)를 되찾기 위해 보궐선거에 나갈 것이라는 예측이 나오고 있는데 대해서는 부정적인 입장을 밝혔다.
“정 전 의원이 마무리를 아름답게 잘 해놓고서 다시 2년 만에 자기 자리를 되찾겠다는 것은 명분이 없습니다. 3선을 하고 불출마선언을 했던 분으로서 이제 좀 더 큰 정치인답게 도지사로 나가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봅니다.”
김선기 시장에 대해서는 탁월한 행정가로 평가하면서 너무 오래 하는 것이 흠이 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지난 번 시장선거에서 제가 간여한 것은 그 분이 행정고시 출신의 엘리트로서 대안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김 시장은 누구보다 지방행정을 많이 경험하신 분으로 순수한 생각에서 저는 도와드렸습니다. 올해 지방선거에서는 그를 능가할 행정력을 가진 사람이 나올지 검토해봐야 할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이 장로는 도의원 초선시절 신한국당 소속이었다가 재선부터는 새천년민주당으로 옮겼다. 2011년 4·11 총선에서 오세호 민주당 후보를 위해 선거대책위원장을 맡았던 그는 그 후 제18대 대통령선거 운동기간 중 새누리당에 입당하면서 원래의 자리로 돌아왔다. 2013년 연말 새누리당의 황우여 대표로부터 표창을 받기도 했다.
□안중나사렛교회의 전통과 힘
그가 다니는 안중나사렛교회는 평택에서 상당히 큰 교회에 속한다. 더욱이 안중읍에 위치하면서 결집력이 강한 농촌의 특성과 도시교회 같은 조직과 규모를 갖고 있어 정치적인 영향력이 매우 강한 교회로 알려져 있다. 그가 도의원 3선이 가능한 것도 교인들의 힘이 컸다.
“저의 아버지가 안중나사렛교회 설립멤버였어요. 나사렛교단이 창립될 때 평신도 대표로 참여하기도 하셨죠. 한약방도 운영하시면서 많이 베푸셨어요. 제가 아버지 덕을 많이 봤죠. 아버지가 하시던 한약방을 대를 이어 물려받아 운영하고 있지요.”
이계석 장로는 선친 이충헌 장로에 대해 회고했다. 그는 모태신앙으로 5살 때부터 안중나사렛교회를 다니며 지금까지 모교회가 성장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 그가 밝히는 안중나사렛교회의 교세는 학생을 제외한 장년만 1천 명 정도 매 주일 출석하며, 전체 재적교인은 2천 명 정도 될 것이라고 했다.
나사렛교단은 한국 개신교에서 비중이 그리 크지 않은 군소교단에 속하지만 유독 경기도 평택과 충남 천안지역에 많은 교회가 분포하고 있다. 평택에서도 안중읍을 중심으로 서부지역에 많은 지교회가 세워져 있다. 이 장로의 말에 따르면 평택 서부 4개 읍면지역에 나사렛교회가 30개가 넘고, 평택시내까지 합하면 40개 교회가 된다고 했다. 그래서 평택에서는 나사렛교단이 결코 군소교단이 아니다. 한국기독교의 큰 물줄기에 속하는 장로교나 감리교 등의 주류교단을 제치고 가장 많은 교세를 자랑하고 있는 것이다. 평택에서, 특히 안중읍을 중심으로 한 평택 서부지역을 선거구로 한 선거에서 나사렛교회 교인으로 출마하면 당선이 보장된다는 말까지 나올 정도다.
2년 전 제19대 총선에서 평택을지역 민주당 후보로 나갔던 오세호 전 도의원도 안중나사렛교회 안수집사였다. 당시 이재영 새누리당 후보에게 패하기는 했지만 2천여 표 차이로 근소하게 져 선전한 편이었고, 그보다 앞서 2010년 지방선거에서 도의원에 당선된 것도 나사렛교회 교인들의 전폭적인 지지가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었다. 현재 도 교육의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강관희 의원도 안중나사렛교회 시무장로다.
□죽음을 의식하는 삶이 풍요로워
그는 안중과 포승 등 서부지역의 각종 개발사업이 지지부진한데 대해서 아쉬워하기도 했다.
“평택시가 남부·서부·북부로 3등분돼 있습니다. 서부권은 평택항과 해군기지 등 국가시설이 있으나 다른 지역에 비해 매우 취약합니다. 평택항을 중심으로 한 사업이 조속히 진행됐으면 좋겠습니다. 북부는 복지타운이 이미 많이 들어섰고, 팽성에도 있더군요. 이쪽에도 복지에 더 신경을 써줬으면 좋겠습니다.”
한때 안중출장소 이전 문제가 진지하게 논의된 적이 있는데, 당시 그는 이전부지선정추진위원으로 참여했다.
“부지선정을 위한 주민공청회까지 하고 저는 물러났어요. 주민공청회에서 여론이 어느 정도 수렴된 것 같은데 장소가 어디 선정되든 이견이 있기 마련이죠. 장소 불문하고 서부지역 자존심이 걸린 문제니까 미래를 내다보고 크게 복합타운 형식으로 지었으면 합니다. 5천 평, 7천 평 하는데 그보다 더 넓으면 좋겠습니다. 앞으로 인구가 늘어나면 구청으로 승격되니까 서부 주민들 자존심 안 상하게 잘 지어야죠.”
그가 지금 읽고 있는 책이라며 미국 예일대학교 교수 셸리 케이건이 쓴 ‘죽음이란 무엇인가’(엘도라도)에 대해 소개했다.
“장로로서 공부가 필요해 읽고 있습니다. 삶과 죽음은 같습니다. 죽음을 의식하고 살아가게 되면 삶이 더 풍요로워지고 여유와 활력을 얻게 됩니다. 죽음에 매일 필요는 없어요. 삶이 죽음이고 죽음이 곧 삶이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내세에 대한 소망을 확실하게 갖고 있어도 죽음은 두려운 것이죠. 죽음 이후의 세계에 대해 철학자들은 어떻게 보고 있는지 저는 이 책을 통해 공부하고 있습니다.”
책을 읽으면서 교회의 실버예배에 참여하는 노인들을 위한 강의도 준비한다고 했다. 학구파 기질이 다분한 그는 2008년 66살의 나이에 원광대학교에서 한의학 박사학위를 받아 화제가 되기도 했다.
부인 김덕기(71) 권사와 함께 노후를 보내고 있는 그는 가끔 등산을 하면서 건강관리를 한다. 5선 국회의원을 지낸 이자헌 전 체신부장관과 올해 서울시장선거에 도전장을 낸 이계안 전 국회의원과는 가까운 집안사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