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초지방자치단체장 임명제 발의에 대한 비판
<특별기고> 이 기 우 (인하대 교수)
2000-12-15 평택시민신문
이번에 일부 국회의원들이 기초지방자치단체장을 임명직으로 하자고 개정법률안을 제안한 것은 현재와 같은 경제위기 상황 하에서 모두가 허리끈을 졸라 멜 생각을 하는 상황 하에서도 자신들의 세비를 13.4%나 인상하겠다고 하는 것과 같은 맥락의 발상이다. 지방자치단체장이 지역주민의지지 속에 정치적인 기반을 넓혀감에 따라 지방에서 영향력이 감소되고 지역정치기반의 상실을 우려한 국회의원들이 독재정권의 비호 하에서 누리던 지역영주로서의 지위를 회복하려는 음모가 이번 지방자치법 개정안의 솔직한 발의 이유이다. 국회의원의 신분과 특권을 보존하려는 욕심 앞에는 여야도, 정치적인 신조도 없어졌다. 더구나 우려되는 것은 정치쇄신을 위하여 대거 물갈이하여 국민들이 뽑아보낸 상당수의 초선국회의원들이 이번 개정법률안의 발의자에 포함되어 있고 또한 이번 개정안에 음으로 양으로 동조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자신들의 이기적인 이익 앞에는 개혁의지도 헌신짝처럼 버리고 있다.
현금의 국가적인 위기상황 하에서 두 가지의 상반된 소리가 들려오고 있다. 한편으로는 위로부터 국가가 무너지고 있는 절망의 소리가 여기저기서 요란스럽게 들리고 있다. 전국민을 빚더미에 눌러 앉히고, 상당수의 고위 정치인과 관료가 부정부패에 오염되어 있다고 대부분의 국민들이 믿고 있는데도 검찰권력은 썩은 환부를 도려낼 줄 모르고 덮기에 급급하다. 도처에서 국가가 무너지고 있다.
또 다른 한편으로는 아래로부터 국가를 세우려는 희망의 소리가 밑바닥에서부터 들려오고 있다. 지방자치가 실시된 이후 수많은 풀뿌리조직이 정부의 과오를 스스로 바로잡으려고 활동을 하고 있으며, 정부의 개입 없이 공동체의 문제를 스스로 풀어나가려고 하고 있다. 중앙정부의 정치인과 관료가 국정을 도탄으로 몰아넣고 성실한 가장을 길거리로 내몰고 있는데 비하여 대부분의 지방자치단체장은 없는 예산을 쪼개어 지역문제를 해결하고 지역문제를 주민의 복리를 위한 시각에서 해결하려는 노력을 해오고 있으며 그 성과가 나타나기 시작하고 있다. 그 동안 이러한 희망의 소리를 억눌러 온 것이 바로 중앙정치권과 중앙관료들이다. 난개발이나 예산의 방만한 운용도 기실 그 책임은 중앙정부에 있다. 규제완화란 이름으로 토지 난개발을 부추기고, 경영행정이란 미명 하에 지방정부로 하여금 장사판으로 내몬 것이 모두 중앙정부와 중앙 정치권이 아니었던가?
이번에 정치인들이 지방자치단체장을 임명직화 하려고 한 것은 중앙정부의 무능과 부패로 인한 국정실패의 책임을 지방정부에 전가시키려는 무책임의 전형이며, 아래로부터 들리기 시작하는 희망의 소리를 뿌리부터 말살하면서 자신들의 이기적인 이익을 수호하겠다는 부끄러움을 상실한 시대착오적인 발상이다. 일부 지방자치단체장이나 지방의원에게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나 대부분의 지방자치단체장과 지방의회는 중앙정부나 국회보다도 훨씬 더 나은 정치를 하고 있다. 중앙정부와 중앙정치인들이 이들 희망의 싹을 키우지는 못하더라도 이를 짓밟으려는 것은 역사 앞에 중대한 죄를 범하는 것이 될 것이다. 이제 중앙의 국가는 무너져도 지방이 살아남아야 새로운 국가를 세울 수 있다는 사실을 겸허하게 수용하여야 한다. 희망의 소리는 위로부터가 아니라 아래로부터 들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