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일 운동·통일운동 전개한 민족의 선각자…
평택의 정신적 유산될 터

6회 원심창 의사 추모의 방향과 지역역사 정체성 찾기-우리는 어떤 정신을 이어받아야 하는가?

2012-11-08     곽니건 기자

<기획취재>평택항일운동의 뿌리 원심창의사를 일본에서 찾다

대의 위해 초개처럼 목숨 내 맞긴 지도자…과묵한 리더십과 인품에 많은 사람 따라

 

 

2012년 10월5일 원심창 관련 좌담회
지난 7월4일 원심창 의사 41주기 서거일에 맞춰 팽성국제교류센터에서는 원 의사의 추모식이 열렸다. 원 의사의 고향에서 열린 최초의 추모식이기도 했다. 물론 그 동안 지역에서 원심창 의사 재조명에 대한 움직임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원주 원 씨 종친회, 성동초등학교 동문회 등에서 원 의사 관련 서적 출간과 흉상 등을 세우며 재조명의 일익을 담당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41주기 추모식은 보다 각별했다. 원 의사를 되새기는 움직임을 하나로 응집하는 계기가 됨은 물론 지역 내 ‘원심창 재조명’이라는 명제를 분명하게 했으니 말이다.

추모식 당시 팽성 주민, 원주 원 씨 종친회, 성동초등학교 동문회 등 지역에서 알음알음 모인 사람들은 추모식 현장에서 독립운동가 지정을 요청하는 청원서를 작성했다. 이는 곧 소기의 성과로 돌아왔다. 지난 달 국가보훈처가 원심창 의사를 2013년 12월에 ‘이달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했다고 밝혀온 것이다.

원주원씨 종친회, 성동초교 총동문회, 팽성읍주민자치위원회, 평택시민아카데미 등은 안정리 미군부대 정문 앞에 있는 원 의사 생가터를 복원하여 소공원 조성 등의 사업을 추진 중인 한편 오는 2013년 3월17일에는 상해 육삼정터 현지로 날아가 ‘상해육삼정의거 80주년 기념식’을 개최하며 원 의사의 흔적을 되새긴다는 계획이다.

본지 <평택시민신문>에서도 추모식을 기점으로 원심창 선생에 대해 집중적으로 보도하며 일본 현지를 방문해 원심창 의사의 흔적을 따르는 기획 취재를 5회 동안 연재했다.

그리고 지난 달 5일에는 원심창과 관련한 각계 인사들이 모여 ‘원심창 의사 재조명 지상토론회’를 열고 지역 내에서 원심창 의사 조명에 대한 방향 등에 관한 다양한 이야기를 나눴다. 원심창 선생 연재 마지막 회차인 이번 회는 지상 토론회의 내용으로 대신한다. <편집자주>

○일시 2012년 10월 5일(금) 오후 5시
○장소 평택시민신문 회의실
○참석 원형재 (원심창 선생 아들),
 원영재 (원심창 선생 조카),
 정기상 (성동초등학교 총동문회장),
 이영호 (성동초등학교 100주년 사업 회장),
 이상권 (평택향토사 연구위원)
 황우갑 (평택시민아카데미 회장),
 방유미 (평택시민아카데미 운영팀장)

성동초교나 종친회 넘어 평택시 차원에서 생가 사료관 건립 등 위상 재정립 필요
내년 3월 육삼정의거 80주년 상해 기념식 계기로 정부차원 선양사업 본격화 해야

원심창 선생에 대한 회고와 지역사회 재조명에 대한 기대

원영재 : 원심창 선생에 대해 알게 된 것은 서울 종친회에서 연락이 오면서다. 거기서 작은 아버지(원심창) 이야기가 나왔다. 종친회에서 발 벗고 나서서 오늘에 이르게 된 것 같다. 이전 정부에서 사후 양자라는 제도가 있었다. 양자를 삼을 경우 7가지 혜택이 있었다. 집안 회의를 통해 원형재가 사후 양자로 결정됐다. 작은 아버지는 생전에도 자식하나 달라는 말을 했었다고 들었다. 사실 작은 아버지가 주로 일본에 계셨던 터라 기억이 그리 많지는 않다. 워낙 말이 없는 양반이었다고 들었다. 심지어 일본으로 건너갈 때조차 집안에서도 몰랐다고 했다. 그저 이발하러 갔다 올게요라고 말하고 도일했다고 들었다.
몇 안되는 기억이 있다면 1968년 당시 작은아버지는 민단단장 시절 일본에서 초청을 받고 한국에 잠깐 귀국했었는데 청와대 사람이 와서 수원에서 오는 길에 호위해줬을 정도로 대우가 극진했다.
그만큼 위상이 있었고 업적을 인정받은 것이라 생각한다. 작은 아버지는 여생을 고국에서 지내고 싶어하는 마음 있었다고 알고 있다. 이제라도 고국에서 잠들게 돼서 다행이라는 마음은 있다. 사실 원심창 선생이 업적을 추대했으면 하는 마음은 있지만 유족으로서 적극적으로 나서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 아마 나서려면 진작 나섰을 거다. 어쨌거나 원심창 선생은 결국 평택의 자랑 아니겠는가. 이것을 시작으로 사회단체가 적극적 발굴로 빛내주셨으면 한다.

원형재 : 추모 선양 사업에 대해 바람이라면 아직까지는 확실히 모르겠다. 개인적으로 안타까운 면이 있지만 지금이라도 연구를 해주시고 발굴하려는 노력들에 고맙게 생각한다. 초기에는 일본에서 함께하셨다는 분이 훈장 받으려 했었다고 들었다. 현재 훈장 등은 가족에서 보관 중이다. 필요한 부분이 있다면 협조할 생각이다.

원심창 선생의 삶에 대한 지역사회의 재조명 과정 소개

황우갑: 지역사회에서 어떻게 정리 돼야 하는지 방향을 점검하는 계기라고 생각한다. 현재상황은 지역 내에서 추모식이 시작되면서 본격적인 재조명의 출발을 알렸다. 원주 원씨 종친회와 성동초등학교 총동문회, 팽성주민 분들의 뜨거운 관심과 함께 지역언론에서도 원심창 선생에 대한 집중조명을 이어가는 중이다. 이달의 독립운동가로 선정되기 위한 충분한 자격을 지닌 만큼 국가보훈처에서 선정가능성이 높다고 들었다.(*토론 당시 미정, 현재는 2013년12월 독립운동가로 확정) 내년에는 일제하 3대 해외 항일의거인 상해 육삼정 의거 80주년을 기념해 상해 현지로 건너가 원주 원씨 종친회와 성동초등학교 총동문회와 기념식을 진행할 예정이다. 무엇보다 원심창 의사의 추모 방향과 어떤 정신을 이어받아야 하는가에 대한 각성이 중요한 때라고 생각한다.

일본에서의 원심창 선생 관련 흔적 답사 소감

방유미: 첫 번째는 현재 일본에 있는 분들이 한국의 독립운동가를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는 점이 놀라웠고 또 자랑스러웠다. 원심창 선생은 지역 역사와 자부심에 대한 의의를 가진 인물이다. 지역 역시 평택 4절로 불리는 민세 안재홍 선생 등을 비롯해 원심창 선생을 배출한 고장에 살고 있다는 점을 기억하며 충분히 자부심을 가질 만하다고 생각한다.
지역 자체에서도 이런 자긍심이 이어질 수 있도록 적극적인 재조명으로 인물들이 선양됐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이상권:  육삼정 의거 뿐 아니라 독립 이후 통일 운동으로 역할 했던 분이 원심창 의사다. 때문에 소개가 제대로 돼야한다. 반일, 항일 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독립운동가, 아나키즘으로 뿐 아니라 통일운동으로 이어진 그 이후의 흔적, 통일운동도 반드시 연결시켜 재조명이 필요할 것이고 그러한 자료도 갖춰야 할 것이다. 원 의사의 경우 아나키즘은 일본에 반대위한 방편이었다. 광복 이후에는 재일 조선인들에게 필요한 기능과 역할을 선도적으로 했다.
그런 부분들에 대한 조명 필요하다.
또 하나는 사심이 없었던 사람이었다. 공부는 짧았을 지라도 리더십이 많아 사람들이 따르고 추종하고 그의 생각을 따랐다. 과묵했는데도 많은 사람들이 함께했다. 인품과 성품이 보통이 아니었던 것이다. 때문에 그런 성품과 인품에 대한 재해석도 필요하다.
숭고한 인물을 기리는 작업이 지금 이 시점, 한국인으로, 지역인으로 왜 필요한지 생각해봐야 한다. 요새 모두들 작게, 개인적으로 산다. 국가적인 위기를 맞아 어떤 인물들의 행동이 부각되는 것 뿐이지 사실 어느 때에나 선구자, 대의를 아는 사람은 필요하다.
대의명분이 있고 옳고 그른 일, 옳은 일을 위해 초개처럼 목숨을 내놓을 정도의 대의를 따르는 선구자는 요즘 시대에도 필요하다. 원심창 선생이 독립운동을 했다는 부분은 일부일 뿐 단지 그 것만으로 의미가 축소돼선 안된다. 넓은 의미로서 그 부분을 깨치고 조명할 필요가 있겠다.

성동 100주년 기념사업과 원심창의사 재조명

정기상: 이번에 성동초등학교 100주년 맞아 교실 하나를 100주년 기념관으로 만드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내년 육삼정의거 80주년을 기념해 동문회 차원에서도 참석할 예정이다.
원 의사의 경우 성동초에 국한된 차원이어선 안된다. 시 자체적인 차원에서 사료관의 건립과 관련한 위상 정립이 필요하다. 원심창 선생과 같은 독립운동가들은 말하자면 시대를 앞서갔던 사람들이다. 그런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에 지금이 있다. 만약 육삼정이 성공해 폭탄이 터졌으면 죽었을 것이다. 대의를 위해 목숨 초개와 같이 버릴 수 있었다는 말이다. 목숨을 잃지 않았다고 숭고함이 훼손돼선 안된다. 그런 의도와 의의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성동초에서 시작한다고 해도 초석을 닦는 것일 뿐 결국은 시 전체적인 차원으로 뻗어 나가야 한다. 지역 출신의 역사적인 인물을 기념하는 것은 결국 지역의 유산으로 남는다. 단체장도 이에 대한 중요성을 인식해야 할 것이다.

이영호: 내년 6월1일 성동초등학교 100주년에 맞춰 100주년 기념관을 열 계획이다.
성동초등학교 역사관을 만들어서 원의사를 비롯한 성동초 출신 훌륭한 인물을 알릴 계획이다. 이는 교육적인 차원에서도 좋은 방안이다. 훈장 등의 실물을 갖다 놓을 수 있겠고 다양한 방향으로 원심창 의사의 역사를 되짚을 수 있는 방법은 있다.
원의사의 경우 성동초에 국한된 차원이어선 안된다고 생각한다. 육삼정 현재를 다녀와서 자료를 함께 추가하면 좋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독립운동가는 대단하고 재조명이 필요하다. 한 부스 같은 것을 따로 운영한달지 방법은 많지만 근본적인 것은 지역적으로 확산되는 방향일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지역 자체적으로 움직임이 있어야 할 것이다.

2013년 이후 원심창 의사 재조명 위해 필요한 일들

이상권: 일본에서 같이 했던 여인들을 비롯해 묘비 등 있다고 들었는데 자료 찾고 모을 필요가 있다. 통일일보 사람들 조차 자신 없어 하는 부분이라 쉽지는 않을 것 같다.

이영호: 5공 정부에선 조총련이 민단보다 세던 시절이라 민단 활성화 위해 국가적인 정책과도 맞물린 경향이 있다. 민세 선생의 경우 조선일보와 연관돼 유리한 면이 많았다. 60년대만 해도 자료 찾을 루트 많았다. 하지만 지금은 다소 늦은 감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이상권: 민세 안재홍 선생의 경우 기념사업회가 있고 활동과 사업을 이어왔기 때문에 이름이 알려졌다. 기념사업회가 어렵다. 대부분 유명무실한 경우 많다. 사실 이런 일들은 국가적으로 필요한 일이다. 늦었다. 늦기는 했다. 이제라도 정신차려 준비하고 만들어 가는 과정 필요하고 시민차원에서 많이 참여하고 성동초라는 구심점이 있어 다행이라는 긍정적인 방향에서 접근할 필요 있다.

정기상: 팽성에 있는 생가터 땅을 보존해서 이 땅에 기념관이라도 작게 시작할 수 있다는 것 필요하다. 전체적으로 초석으로 만들어 놓는 일 중요하다. 한걸음에 갈 수는 없다. 하지만 조급할 것 없고 이어갈 수 있도록 기반 다지는 것이 중요하다.

황우갑: 훈장을 늦게 받았지만 종친회에서 책을 발간하고 성동초 동상을 새로 만든 것도 하나의 의의겠다. 문화원, 민세기념사업회에서 각종 학술대회 등을 통해 원심창 선생을 비롯한 독립운동가를 조명하는 행사가 이어졌고 추모식까지 왔다. 유족 차원에서는 마음이 조급할테지만 기념사업이 쉬운 것만은 아니다. 인물에 대한 추모식이 시작됐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이분과 관련된 사건의 발굴이 중요하다. 가령 일제시대 해외 삼대 의거의 경우 정부에서 일 년에 몇 년 씩 현지에서 재현하고 있을 정도다. 육삼정만은 그에 반해 이렇다 할 재조명이 없다. 다행스레 내년 80주년 행사가 상해 현지에서 열린다. 현실적인 여건상 해외행사를 연이어 할 수 는 없을 것이고 차후 5년이나 10년 단위로 지속성 있게 진행하는 것이 필요하다. 내년 3월17일에는 이것이 3대 의거라는 점 숙지시키고 알리는 것이 중요하고 이를 위해 재원의 마련과 구성 인원 등에 대한 세부적인 계획을 가다듬어야 할 것이다.
지역행사가 아니라 국가적인 행사기 때문에 국가보훈처장과 광복회장 등이 오는 자리로 만들어 위상을 세워야 한다.

원형재 : 지금이라도 시작돼서 기쁘게 생각한다.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