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불모지였다던 부산, 영화제 통해
아시아 문화 컨벤션 중심도시로 비약
■ 부산국제영화제를 통해 평택의 문화방향을 구상한다-1
똑같이 바다는 있는데 그만한 문화제는 없네
17년 만에 총 관객 22만 명 유치…올핸 전용관도 완성
‘시민 모두가 행복한 일류 문화도시 평택’
평택 곳곳에서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는 말이다. 이는 평택의 미래상, 발전상을 압축한 말이기도 할 것이다. 문화의 시대라는 말이 어색하지 않을 만큼 대부분의 지자체가 문화산업의 발굴과 도시 발전과 연계한 지자체 고유의 문화조성에 관심이 드높다. 고유한 문화가 살아 숨 쉬는 평택, 생각만 해도 살맛나고 흐뭇한 일이겠다.
하지만 평택의 현실은 과연 어떨까? 애석하지만 아직까지는 그런 목표와는 거리가 있어 보인다. 사람들의 입에서마저 “평택에는 변변한 박물관 하나 없다”, “평택은 이렇다 할 대표 축제가 없다”는 말이 심심찮게 오르내리고 있으니 말이다.
‘부산국제영화제’는 지자체는 물론 국내에서도 가장 성공한 문화행사로 주저 없이 꼽히곤 한다. 하다못해 우리나라 국민이라면 파격적인 드레스를 입고 붉은 카펫 위를 우아하게 유영하는 여배우들을 담아낸 텔레비전 프로그램, 각종 사진 등을 통해서 부산 국제영화제를 만났을 것이다.
해외에서도 부산국제영화제의 위상은 상당하다. 부산은 몰라도 부산국제영화제는 안다고 할 정도니 말이다.
화려한 별들의 축제, 신나는 영화세상이 펼쳐지는 곳. 영화하면 부산, 부산하면 영화라는 공식마저 떠올리게 하고 있는 지역. 그렇다면 과연 부산은 처음부터 이런 연결고리가 자연스러운 문화의 성지였을까?
대답은, 아니올시다. 애초에 부산의 모습은 오늘의 모습과 정반대에 가까웠다. 자체평가에서도 ‘문화’에 대한 질문에는 자조적인 답변이 돌아왔다.
“부산은 문화의 불모지”라고 말이다. 누군가 타임머신을 타고 17년 전으로 돌아가 2012년 부산은 최고의 영화제가 열리는 곳이 됐다고 말한다면 비웃음이나 샀을지도 모르겠다. 그런 부산이 불과 20년도 채 안된 사이 변하기 시작했다. 그 변화의 주된 구심점은 부산국제영화제다.
물론 처음부터 환영받았던 것은 아니었다. 4회가 지나도록 다들 팔짱만 낀 채 어디까지 가나 보자 노려봤다. 최초 다소 엉성하고 좌충우돌하던 영화제가 시작한지 17년이 흐른 지금 17회 부산국제영화제는 총 75개국 304편이 상영되며 총 관객 22만1002명이 찾았다. 월드프리미어(세계 최초 개봉), 인터내셔널 프리미어(자국 제외 최초 상영)만도 각각 93편, 39편에 달했다. 뿐만 아니라 영화를 사고파는 마켓도 세일즈부스 총 32개국, 181개 업체, 96개 부스 (BIFCOM 포함) 등 활발한 양상을 보였다.
행사를 치르는데 소요된 총 120억 여 원의 예산 중 부산시는 60억 원을 지원했다. 국고가 15억인 것을 감안하면 파격적인 금액이다. 그러나 영화제로 인해 파생되는 도시브랜드 상승효과는 그 이상이다. 영화제를 기점으로 관광 뿐 아니라 각종 포럼과 컨벤션 등이 열리며 아시아 컨벤션의 중심 도시로도 자리매김하고 있다. 문화의 불모지에서 가장 성공한 문화제가 열리는 도시로 성장한 부산. 평택에서 부산의 사례를 통해 얻어갈 힌트는 없을까?
17회 부산국제영화제를 찾아 그동안의 발전 과정과 올해의 영화제에 대해 들어봤다.
부산시, 지원하되 간섭 않는 원칙 지켜…시민들 자부심과 도시 브랜드 급상승
출발자체가 자발적 문화운동…시가 간섭했으면 예산 지원 거부했을 것
영화진흥위원회가 부산으로 이전하고 33만㎡ 영화 클러스터 조성예정
<인터뷰> 이용관 부산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
부산국제영화제조직위원회는 부산국제영화제 및 영상문화와 관련된 각종 행사를 개최함으로써 영상문화 발전에 이바지하고자 1996년 4월 16일 설립된 문화체육관광부 소관의 사단법인이다.
Q.한국영화산업과 부산국제영화제와의 연관성은
A.한국영화산업과 부산국제영화제는 쌍두마차 역할을 한다고 생각하면 된다. 그것은 부산국제영화제 뿐 아니라 한국에 있는 모든 영화제가 마찬가지다. 한쪽이 활기 잃을 시 서로 영향을 미친다. 1990년대 초 한국영화는 르네상스를 맞았다. 그것이 13년 정도 지속됐고 2000년 초반 침체를 맞다 2008년 쯤 다시 상승곡선을 보이고 있다.
부산국제영화제도 그 흐름과 같이 했다. 영화산업이 전체적인 침체기였다면 부산국제영화제 또한 부침을 겪었다. ‘바람 불어 좋은 날’, ‘투캅스’ 등이 연이어 흐름 상승세 탈 때 쯤 해서 부산국제영화제가 출범했다. 그러다 중대한 위기에 봉착한다. 스크린 쿼터를 맞이한 것이다. 그 때 영화제도 흐름에 동참한다. 미국에는 awards 라는 개념이 있지 film festival 이란 게 없다. 유럽문화인 셈이다.
헐리웃 영화 독식을 막기 위함이다. 단결 그것이 근본적인 개념이다. 페스티발을 통해 헐리웃의 편식에 맞서 세계 좋은 영화가 많다는 것을 알리는 자리다. 우리 영화 틀 기회를 달라는 것이 스크린 쿼터의 주요 취지다. 그 결과 지금은 자국 영화를 가장 많이 보는 국민으로 성장하기에 이렀다. 물론 이것도 온전한 형태는 아니다.
Q.타 영화제와 부산국제영화제의 차이라면
A 부천, 전주 등의 영화제가 테마형이라면 부산국제영화제는 마트형, 백화점 식이다. 부산국제영화제에는 한국, 아시아, 월드 3개로 나뉘어 진행되며 세계 유수의 스타들과 즐기는 컨셉트이다. 아시아권의 많은 영화들이 대부분 부산국제영화제를 통해 수출되고 있다. 실제로 유럽에 아시아 영화를 소개하는 역할을 한다.
유통업자가 부산으로 오는 이유기도 하다. 칸 등도 부산을 통해 간다. 아피차폰, 김기덕, 이창동 등도 모두 부산이 발굴하고 키운 셈이다. 신인 발굴하고 육성하는 역할도 부산이 지닌 힘이다. 부천이나 전주처럼 시민에게 테마에 맞는 영화를 제공하는 자리기도 하지만 부산은 그런 역할과 더불어 마켓의 역할을 하는 동시에 전 세계 1년의 결산, 영화 흐름을 읽게 하는 창구다.
Q. 지역과의 협력 관계 부분은
A 부산국제영화제는 120억 원의 비용이 소요되는 축제다. 그 중 국고는 15억, 부산에서 60억이라는 금액을 지원한다. 나머지는 수익 등에서 충당하고 있는 형태다. 이 60억은 사실 지자체에서 내놓기 쉬운 금액은 아니다. 하지만 영화제를 통해 직접적, 혹은 간접적으로 부산에 대한 홍보역할을 하고 있다.
부산은 몰라도 부산국제영화제는 안다고 할 정도로 도시 브랜드는 상상 이상으로 높아졌다. 실제 60억이 유발하는 경제효과는 1000억에 달한다고 삼성경제연구원에서도 평가했다. 또 하나는 자긍심 문제다. 3회 때까진 설마 하는 회의들이 많았지만 이후 부산의 지역 언론들과 부산시민들의 전폭적인 지지가 이어지며 붐이 일었다. 고맙게 생각한다.
부산시의 경우도 지원은 하되 간섭하지 않았다. 대개 지자체의 경우 지원과 간섭을 동시에 하고자 해서 창의성을 가로막는 경우가 많다. 현재 부산은 컨벤션 도시로서 부동의 자리를 지키고 있다. 국제영화제가 기폭점이 됐다고 자부한다. 시민에게 자긍심을 주고 도시브랜드를 상승시킨 것은 단순한 산술적 계산만으로 평가할 수 없다.
Q. 지방 축제 대부분이 반짝하고 사라져왔다. 17회 동안 고비나 위기를 겪진 않았는지?
A. 부산국제영화제는 태생 자체가 달랐다. 출발 자체가 자발적인 문화운동이었기 때문이다. 타 영화제의 경우 시의 전략적인 문화육성 정책에 의해 출발한 경우가 많았다. 때문에 시 정책이 바뀌거나 단체장이 바뀌면 부침을 겪어야했다. 그에 반해 부산은 자발성을 가지고 문화적 욕구로 출발했기 때문에 자생력을 가질 수 있었던 것 같다. 예술가들은 간섭을 받느니 지원을 받지 말자는 주의다. 만약 지원이 없었더라면 작더라도 유지했을 것이다.
Q. 영화의 전당 이외 지역적 인프라가 있다면?
A. 영화진흥위원회가 부산으로 온다. 앞서 말했듯이 건물하나 크게 지어준다고 끝이 아니다. 얼마나 자생적 체력을 가지느냐다. 영화의 전당 중심으로 33만㎡의 클러스터가 조성될 것이다.
Q. 영화제가 가져야할 철학이 있다면
A. 고집 외엔 없다. 철학, 의지, 자존심을 가져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