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택논단>더 작게, 더 천천히 그리고 ...

김 덕 일 (평택농민회 부회장)

2002-10-04     평택시민신문
벼꽃이 필 무렵 전국에서 모인 17명의 스님, 목사, 교수, 노동자, 농민 그리고 청년·학생 등 소비자와 생산자들은 땅 끝 전남 진도에서 우리의 농업을 살리고 쌀을 지키기 위한 100일간의 순례를 시작했다.

그리고 전남, 전북, 경남, 경북, 충남, 충북, 강원을 거쳐 벼 이삭이 고개를 숙여 수확이 시작된 지난 9월 27일 경기도 여주를 시작으로 “ 우리 쌀 지키기100인 100일 걷기 ”경기도지역을 돌고 있다.

작은 힘이 모여 쌀과 농업 그리고 생명, 환경의 소중함을 지키고 그것을 온 몸으로 보여 주기 위해 이곳까지 온 40여명의 검은 얼굴 속에는 말로는 다할 수 없는 비장감마저 서려 보였다.

우리는 지난 40여 년간 정말 뒤 돌아 볼 겨를 없이 달려 왔다. 경제가 그렇고 정치적 격변 그렇고 그 여파로 사회, 문화적 행태마저 무조건“빨리 빨리”를 외치게 되었다. 그러나 지난 5년 전 IMF 금융위기를 겪으며 그동안의 그 변화의 과정 속에 무언가 부족하고 잘못된 것이 많았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 했다.

그리고 그것을 극복하기 위한 각계각층의 다양한 노력이 전개되었다. 초국가적 자본이 전세계를 휩쓸며 제 3세계 빈곤층을 더욱 빈곤에 빠트리고 미국을 위시한 선진 자본주의 국가들의 “ 자국이익을 최우선으로 하는 신자본주의”란 이데올로기는 우리의 지난 40여년간 사회 속에 만연되어 버린 자본의 논리인 “더 큰 것을, 더 빠른 것을 ”우리에게 강요하고 있다.

이는 농업에서도 더 큰 규모를 요구하며 소농과 유기농법을 서서히 없애가고 있으며 비료와 농약, 기계에 완전 의존하는 농법과 농토를 단작화시켜 자국의 식량자급의 중요성보다는 비교우위에 의한 산술적 경제논리가 판을 치게 하고 있다. 이는 일부 곡물메이저만 배를 불리고 그래서 한쪽에서는 굶어 죽고 또 한쪽에서는 영양 과잉섭취인 비만과 그에 따른 합병증으로 죽는 사태가 속출하고 있다.

우리 평택지역에서도 최근 들어 여러 곳에서 환경과 생명에 위기감을 느낀 시민들이 집단 반발하고 있다. 특히 안중 서부 5개 면을 중심으로 확산일로에 있는 ‘소각장에 의한 다이옥신 파동’은 지역의 무분별한 개발논리와 인간이 쏟아 낸 오염물질에 의한 환경의 재앙으로 나타난 현상이다.

자연과 환경을 이제 다시 원래의 모습으로 되돌리려는 노력은 시작되었지만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릴지 모를 일이다. 오염된 환경과는 무관하리라 생각했던 농촌지역의 농민들이 그 고통의 가장 한 가운데에 서 있다. 우리 스스로도 다시 되 돌아 볼 일이 많다.
나빠진 환경의 최대의 피해자는 어린이들과 노약자들이다. 그동안의 ‘빨리빨리’병 때문에 생긴 여러 가지 문제를 오히려 아주 작고 , 천천히 시작하여 사람들에게 큰 울림으로 다가서려는 운동이 “농업회생연대의 100인 100일 걷기 운동”이다. 그동안 90여일간 걷기 운동을 하며 전주에서는 우리 어린이들에게 양질의 농산물을 공급하기위해 지자체가 “학교급식 조례제정”을 하도록 요구하고 있으며 이는 경북, 충북으로 확산되고 있다.

우리 경기도 지역에서는 김포와 부천시가 조례제정을 했다고 한다. 또한 경남의 한곳에서는 패스트푸드 음식을 반대하며 자연에 순응하는 전통음식을 되찾기 위한 “슬로우 푸드”운동을 펼치는 교수님이 있다고 한다.

바로 지난 40여년간 우리사회가 추구해왔던 크고, 빠른 것만이 미덕이 아님을 인식하고 자연과 생명을 되찾으려는 시도이며 더 크게는 일부 강대국의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를 극복하려는 노력의 일환이다.

우리도 이제 평택지역 곳곳에서 개발에 의한 후유증으로 나타나는 크고 작은 현상에 대해 한번 더 생각해 보고 근본적인 해결방도를 이끌어 내려는 노력, 즉 “작은 것이 아름답고”, “느린 것이 가장 빠르다”는 이치를 되짚어 보았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