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일 신문이 없었더라면
지령 600호 신문을 만들면서
■ 차 성 진 편집주간
인류의 조상들이 아프리카 초원에서 살 때부터, 수많은 정보 가운데 가장 중요한 정보와 덜 중요한 정보 그리고 중요하지 않은 정보를 구분하는 능력은 생존 자체를 위해 꼭 필요했다. 정보 더미 안에서 어떤 흐름을 깨닫는 능력이 있다면 생존에 더 유리했다. 초원에서 바람에 흔들리는 풀잎 사이로 움직이지 않는 얼룩덜룩한 덩어리를 보고 동료들에게 “표범이다”라고 외쳤는데 그게 바위를 덮은 이끼였다면 나는 겁쟁이라고 놀림을 받았을 것이다. 그러나 바위라고 지나쳤던 것이 실제로 표범이었다면 나나 내 동료 가운데 한 명은 표범의 한 끼 식사거리가 됐을 수도 있다.
정보 더미 안에서 흐름을 찾으려는 본능 또는 충동은 동물로서 인간의 유전자 안에 깊숙이 새겨져 있는데 요즘은 이 본능을 ‘호기심’이라고 부른다. 호기심을 충족시켜줄 수단은 인류 역사에서 아주 오랜 동안 특정한 계층의 몫이었다. 종교권력을 가진 사제, 무력을 행사할 수 있는 무사집단, 돈을 많이 가진 계층끼리 정보 속의 흐름을 파악할 수 있는 문자와 교육을 나누어 가졌다. 나머지 사람들은 제한된 정보만으로 그때그때 반응하면서 생존했다.
신문의 ‘발명’은 정보의 생산과 유통이 대중에게까지 확산되는 혁명적인 변화를 가져왔을 뿐 아니라, 정보 가운데서 어떤 ‘흐름’을 깨칠 수 있는 길을 열어주었다. 신문은 정보를 늘어놓는데 그치지 않고 정보 가운데 흐름이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알려주었다.
그래서 우리는 아침거리를 마련하려고 세상의 모든 음식에 대한 정보를 얻기 위한 노력에 시간을 쓰지 않는다. 아이에게 보다 나은 교육의 기회를 주기 위해 세상의 모든 스승을 찾아 일일이 확인하지 않고도 어디 가면 좋은 학교가 있는지, 어느 선생이 잘 가르치는지 알 수 있다. 내가 만든 물건을 사 줄 고객을 찾아 온 세상을 돌아다니지 않는다.
만일 신문이 없었더라면, 자본주의도 발명되지 않았을 것이다. 신문이 없었더라면 근대적인 의미의 국가도 만들어지지 않았을 것이고, 민주주의도 지금과는 형태가 많이 달라졌을 것이다.
이 과정에서 신문은 한 때 ‘호기심 충족’을 넘어 사람들에게 ‘통찰력을 제공’하는 수단으로까지 인정받기도 했었다.
신문보다 인터넷이 먼저 발명됐더라면 우리 삶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신문보다 스마트폰이 먼저 세상에 나왔더라면, 텔레비전이 신문의 발명에 앞섰더라면 우리 ‘호기심’을 채워주는 경로는 어떻게 달라졌을까? 인터넷을 하루 종일 검색하면서 텔레비전 뉴스나 드라마를 틀어놓고, 또 수많은 ‘앱’을 열어보고, 소셜네트워크(SNS)에 접속하면서 그 많은 정보 더미 속에서 중요한 것과 덜 중요한 것들을 구분하는데 시간을 보내고 있을까? 아니면 정보들을 꿰뚫는 흐름을 찾기에 지쳐서 포기했을까?
만일 신문이 없었더라면 라디오와 텔레비전, 인터넷과 스마트폰에 실려 오가는 정보들은 누가 생산하게 되었을까? 신문이 아니라면 “이건 쓰잘 데 없는 정보니까 그냥 지나치셔도 됩니다”라고 누가 말해줄까?
‘호기심 해결사’ 였던(아니면 신문 만드는 이들이 착각하면서 만들었던) 신문은 지금 천대받고 있다. 신문은 정보제공 수단으로 너무 느리고 정보 속의 흐름을 알려주기 위해 꼭 필요한 능력이 부족하다고 여겨진다. 사람들은 호기심을 채워주는 매체로 인터넷을 선호한다. 신문의 또한 측면이었던 ‘재미로 시간 때우기’도 텔레비전에 의존한다.
종이신문에 남은(남았다고 스스로 생각하는) 것은 ‘통찰의 끈’뿐이다. 통찰을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통찰할 수 있는 근거를 독자에게 제시하는 일이다.
매주 12개의 얄팍한 지면에 어떻게 통찰의 근거를 담을 수 있을까? 지령 600호를 맞는 <평택시민신문>의 희망이자 고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