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노라면 언젠가는 우리도 알 수 있게 되겠죠.
한책 하나되는 평택 독서토론회-평택고등학교 독서토론부 1학년 7명
○할일 많아 참 좋다는 그 말에 나를 보다
○지리산 갈 용기가 생기면 친구들과 함께
○행복은 갑자기가 아니라 서서히 스며들어
○버 시인이 왜 인기가 많은지 모르겠어요
○바람도 아닌 것에 흔들리고 뒤척이는…
○때로는 순리에 따라…때론 순리에 맞서
<지리산 행복학교>는 일상에 아름다움을 남긴다. 지난 봄 피어난 꽃봉오리에선 당장 지리산으로 달려가 보고픈 마음을…, 여름날 푸르른 그늘 아래에선 시원하게 흘러가는 섬진강변 물줄기를 떠올렸다. 가을이 지나며 오색 빛으로 물들었던 단풍은 다 떨어지고, 이제 흰 눈으로 소복이 덮일 날이 또 오겠지. 멀지만 가까운 곳처럼 느껴지는 지리산을 곁에 둔 나의 삶. 책 한권으로 얻은 행복은 이렇게 크다.
지난 3일 원평청소년문화의집 학교연계활동 CA 독서토론부 평택고등학교 1학년 학생 7명을 만났다. 한창 공부하기에 바쁜 청소년들에게도 공지영의 <지리산 행복학교>는 ‘쉼’이었다. 어른의 시각이 아닌 한창 자라나는 10대의 시각에서 바라본 행복은 순수하고 담백했다.
쌍계사 입구, 최도사가 반해버린 아름다운 여주인이 운영하는 음식점에는 이런 문구가 쓰여 있다. ‘할 일이 많아 참 좋다’고. 한창 기말을 준비하며 쉬는 시간, 잠잘 시간을 줄여가며 공부하는 이승훈 학생에게 이 말은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했다. “기말고사를 준비하며 공부가 참 힘들다는 생각을 하게 됐을 때, 책에서 이런 문구를 보았다. 할 일이 많아 참 좋다. 나에겐 공부가 있다. 이 여주인에게 빗대어 난 공부만 하면 되는데 엄청나게 힘들 것이 무엇일까 깨닫는 계기가 됐다.”
지리산은 외롭지 않다. 누구든 허물없이 친구가 될 수 있다. 최도사 같은 친구를 사귈 수 있다면 더 없이 좋겠다. 안상현 학생은 책을 보며 이런 생각을 했다. ‘내가 만약 도시의 삶을 버리고 산으로 가서 살게 된다면?’ 꼭 챙겨야할 것이 하나 있단다. “그들은 도시에서 살 수 있었는데 스스로 선택해 산에서 살게 되었다. 가난은 실패한 삶이라고 생각했던 내 생각을 완전히 뒤집어 놓았다. 그 삶도 목적이 있다면 선택할 수 있는 삶이라는 것을 깨닫게 됐다. 하지만 선택할 수 있는 용기가 언제 생길까? 만약 생길 날이 온다면 이왕이면 친구들과 함께 가고 싶다. 함께 장작도 패고, 농사도 짓고 말이다.”
이런 삶이 매일 지속됨을 꿈꾼다. ‘행복’이란 말을 굳이 바깥으로 꺼내지 않아도 알 수 있을 만큼 말이다. 이재원 학생의 행복은 ‘서서히 스며드는 것’이란다. “왜 행복학교라고 제목을 붙였는지 한참을 생각했다. 사실 행복은 행복을 만들자! 해서 만들어 지는 것이 아니고, 서서히 스며드는 게 아닌가? 이 대목은 책에서도 찾을 수 있다. 또…, 버 시인이 왜 인기가 많은지 모르겠다. 하하.”
한 가지 바람이 생겨난다. 버 시인과 낙 시인, 그리고 지리산 자락에 사는 사람들처럼 나도 그런 생활을 해보고 싶다는 것. 웬만한 월세가 100만원을 호가하는 마당에 연세 50~100만 원이라는 것도 꽤나 흥미롭고 말이다. 하석환 학생은 쉬는 시간 틈틈이 책을 보며 자연과 일상을 쉴 새 없이 오갔다.
“책을 읽으며 이렇게 빠져본 것이 얼마만인지. 자연과 일상을 오간 느낌이었다. 신기했다. 이들이 시골로 들어오게 된 이유, 사는 방식을 들여다보고 ‘산이나 시골에 별장 짓고 편하게 살고 싶다’는 부모님의 말을 이해하게 됐다. 사실, 학생들도 이런 삶을 꿈꾼다. 시골에서 집 짓고 사는 삶이 아닌, 우리만의 자유로운 생활 말이다. 자기 전에 오늘 하루 어떻게 지냈는지 떠올린다. 항상 같아서 새로운 다짐을 하고, 또 해보려고 하지만 그렇지 않아 힘이 빠진다. 그래도 견뎌보려고 한다. 시간은 많으니까.”
연봉 200만 원에 행복해하고, 마음에 드는 사람에겐 짜장면을 맘껏 사줄 수 있다며 떵떵대는 최도사를 학생들은 최고로 부러워했다. 바람처럼, 구름처럼, 발길이 닿는 대로 움직이는 자유인(?)이기 때문일까.
김재원 학생은 “형제봉 주막집에 누군가가 써놓은 ‘바람도 아닌 것에 흔들리고 뒤척이는’ 시 구절이 마치 내 모습을 표현한 것 같았다. 지리산 행복학교는 그들이 사는 모습 자체가 아니라, 책 한권이 ‘학교’로서 읽는 사람이 배울 수 있는 무엇인가를 깨닫게 하고 가르쳐주려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교과서가 아닌 인생에 대해 공부하는 시간이었다”고 말했다.
매일 저녁 술을 먹고 노래를 부르는 지리산의 주인공들. 놀고먹는 한량으로 보일지 몰라도 나름 그들도 바쁜 생활을 한다. 화단을 가꿔야 하고, 버들치에게 말을 걸어야 하며, 강아지와 놀아주어야 하고, 가끔 고추와 상추도 따면서, 글도 쓴다. 그리고 공연이 잡힐 때면 미리 모여 연습을 한다.(돈도 번다)
이동민 학생은 그들의 삶을 꽤나 부러워했다. “시간을 잘 지키는 스타일은 아니지만, 시간에 구속되어서 산다는 느낌을 자주 받는다. 꽁지 작가가 화전놀이 시간을 지키려 부랴부랴 달려와 씩씩거렸던 그 시간을 무색하게 만들었던 버들치 시인의 한마디가 기억난다. 나도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여유로워졌으면 한다.”
인생을 커다란 그래프로 본다면 이 주인공들은 어디에 위치하고 있을까. 인종훈 학생은 인생의 순리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했다. “때에 따라 순리를 역동적으로 밟을 필요가 있고, 또한 그에 따라 맞춰서 살 필요도 있다고 생각한다. 이처럼 사람에게 도시 생활도 필요하고 시골 생활도 필요하다. 둘 중 무엇을 우선순위로 둘 수 없는 것처럼 말이다.”
열일곱의 그들, 마냥 어린 줄 알았는데 토론 내내 의젓하니 한마디 한마디에 제법 어른티가 난다. 토론내내 지리산, 지리산 하다보니 교실을 떠나 밖으로 나가고 싶단다. 그래. 나가자. 교문 밖까지는 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