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군 생활’ 국가에 감사…시간 갖고 ‘평택 기여’ 고민
인터뷰-최근 전역한 박정이 예비역 대장
최문순 강원지사와 ‘안보 공감’
지역사회 경제 보탬 고마워 해
군이 국민신뢰 얻으려면
어느 상황에도 준비돼 있어야
미군 평택이전 순기능·역기능
앞으로 나아갈 방향 연구 필요
지난달 17일 육군 제1야전군사령관을 끝으로 40여 년 간의 군 생활을 마치고 전역한 예비역 대장 박정이(59) 장군을 강원도 원주의 자택에서 인터뷰했다. 박 장군은 원주의 한 아파트에 거주하고 있으며, 인터뷰는 10월27일 오전에 약 1시간 정도 진행됐다. 이번 인터뷰는 아쉽게 전역한 평택출신의 박정이 장군의 성장과정이나 군 생활, 전역 후의 거취 등과 관련해 궁금해 하는 독자들이 많아 이루어지게 되었다. <편집자>
- 원주에 거처를 마련했는데, 이곳에 계속 거주할 계획인가?
○ 군대의 특성상 인사이동이 있으면 그 다음날 바로 공관을 비어주어야 하므로, 부임지마다 부대 밖에 각종 책과 짐 등을 보관할 자료실 겸으로 거처를 마련하고 공관에는 최소 필요 물품만 가지고 생활했다. 이번에 갑자기 전역하게 돼 이곳에 현재 거주하고 있다. 앞으로 계속 있을 계획은 아니며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서울로 옮겨야 하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다.
- 이번 전역은 충분히 예상치 못한 듯한데?
○ 군 최고 수뇌부의 인사는 여러 변수가 많다. 모든 게 기대대로 되는 것은 아니다. 국가를 위해 헌신해 왔고 최선을 다해 왔기에 아쉬움은 있지만 기꺼이 이번 인사를 받아들인다. 전역사에서도 밝혔듯 행복한 군 생활을 했고, 이러한 기회를 준 국가에 감사한다.
- 전역식 때 최문순 강원지사가 박 장군에 대해 매우 친근감과 고마움을 표하던데…
○ 사실 최문순 지사가 의원시절 천안함 사고원인과 관련해 비판적 시각으로 접근했다. 당시 민군합동조사단장으로 활동할 때 대립하기도 했지만, 강원지사로서 군의 역할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고, 통합방위협의회 활동을 함께 하며 가깝게 지냈다. 안보에는 정당이 중요치 않다. 군은 정치적 중립을 지키기 때문에 안보에 대한 공감대가 컸다. 군인의 강원도민화, 가족과 밖에서 숙박을 할 수 있도록 하는 면회 제도 개선 등을 통해 군이 지역사회 경제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도록 하기 위해 노력을 많이 했는데 이 점을 매우 고마워했다.
- 천안함 사태 당시 민군합동조사단장으로 활동하며 얻은 교훈이 있다면…?
○ 군이 국민의 신뢰를 얻으려면 군이 변화해야 하고 언제 어느 상황에서나 준비되어 있는 조직으로 철저히 변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제1야전군사령관으로 재직하는 동안에도 태세와 준비를 갖춘 군 조직으로 만들려 노력을 많이 했다. 특히 군이 주어진 임무 속에서 자주적으로 상황을 판단하고 주체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임무형 전술 개념을 도입하고 이를 실전에 적용하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임무형 전술은 단순한 상명하복의 명령형 전술과는 달리 창의성이 도입되는 중요한 전술개념인데 독일 뿐 아니라 미국에서도 최근 군 개혁을 위해 도입한 전술이다. 90년대 초 독일군의 중요한 지휘 철학이자 사상이라고 할 수 있는 임무형 전술에 대한 서적을 번역해 소개하기도 했고, 올 1월 초에는 한국군 실전 경험을 토대로 연구 분석한 논문을 더해 ‘임무형 전술의 어제와 오늘’이라는 이름으로 이 책을 수정 보완해 출판하기도 했다. 조직원의 창의성에 바탕한 역할이라는 개념은 비단 군 조직 뿐 아니라 사회의 모든 조직에도 해당되는 말이라고 볼 수 있다.
- 군사문제에 대한 식견과 전략이 탁월하신 것 같다. 사실 이렇게 깊은 통찰력을 갖고 계실 줄 몰랐다. 군에 있으며 관심 갖고 연구한 분야가 또 있는가.
○ 통일 문제에 관심이 많았고, 통일 후의 군사통합문제에 대한 연구도 많이 했다. 군사령관으로서 남북한 통합문제에 연구를 많이 한 것은 당연하다. 아쉬움이 남지만 전역 이후 사회 활동을 하며 그간의 연구 내용을 계속 발전시키고자 한다. 또 하나 전시작전권 환수문제에 관한 연구이다. 사실, 통상적으로는 대장 진급 후 두 차례 정도의 보직을 갖는 것이 일반적이어서 합참의장이 돼 2015년으로 예정되어 있는 전시작전권환수 문제를 원만히 해결하는 것이 군생활의 마지막 과제로 생각하고 준비해 왔다. 남아 있는 훌륭한 분들이 잘 해결할 것으로 기대한다.
- 궁금한 개인적인 것을 물어보자. 학창시절과 사관생도시절에 대해 추억하고 싶은 것도 많을 텐데
○ 초등학교 5학년 때 홍성에서 평택으로 왔다. 평택으로 온 것이 인생의 전환점이 되었다. 성동초등학교를 다녔고, 평택고(당시는 평택종합고)시절에는 인문계가 2개 학급이었는데 평택고는 인천의 제물포고등학교와 쌍벽을 이루는 당시 명문고등학교였다. 우리 때만해도 사관학교에 5명, 서울대와 연·고 대등 유수의 대학에 많은 학생들이 진학했다. 서울대 입학을 목표로 준비해 제2외국어인 독일어를 열심히 공부했는데 이것이 인연이 돼 독일육사 파견학생으로 선발된 이후 독일과 깊은 인연을 맺었다. 11월 중순에는 독일에서 개최되는 한 세미나에 대한민국 국군을 대표해 참여하게 된다.
- 평택출신으로서 군 생활하며 느꼈던 생각들도 많았을 텐데….
○ 평택 출신이라는 것을 항상 염두에 두었다. 평택출신으로 육군에서는 큰 인물이 그리 많지 않았다. 평택 출신으로 표본이 되고 모범이 될 수 있는 장군이 되도록 의식적으로 노력을 많이 했다. 끊임없는 변신 노력을 했다. 지역을 빚낸다는 생각은 많았으나 40여년을 국가안보와 국토방위에 전념하다 보니 막상 평택에는 그동안 가볼 기회가 별로 없었다. 그럼에도 친구들과 옛 은사님들께서 자주 찾아주시며 격려해 주었고 이것이 큰 힘이 되었다.
- 평소 평택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해 왔나. 전역 후 지역사회에 대한 생각은….
○ 주한미군이 평택으로 온다는 것은 순기능과 역기능이 있을 것이다. 미군의 전략적 유연성 문제는 전세계적 미군 재편 흐름 속에서 보아야 할 것이지만, 평택항과 해군2함대사령부가 있고 미국과 중국이라는 지투(G2)세력이 맞닿는 평택의 중요성은 엄청 커질 수밖에 없다고 본다. 최근 삼성전자 유치 등 지역개발도 급속히 이루어지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지역의 나아갈 방향을 제대로 정립하고 이끌어 갈 연구와 노력이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그러나 사실 평택 사회에 대해 깊이 있게 들여다보지 못했다. 평택을 위해 기여할 것이 무엇인가 고민하며 최근 좀 더 생각을 해 보고는 있다.
- 향후 거취에 관심을 갖는 시민들이 많이 있다. 정리된 생각이 있는가?
○ 이제 전역한지 열흘정도 지났다. 지역사회에 어떻게 기여할 지 생각해 보고는 있지만 꼭 무엇이라고 결론 낸 것은 아니다. 좀 더 시간이 필요하다고 본다. 현재 경기대 정치전문대학원에서 연구를 하고 있는데, 군 경험을 국방과 안보 뿐 아니라 사회 현실 속에서 이론적으로 정리하고 싶다는 생각도 많이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