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노현에게 인간의 본디인
선의(善意)를 더럽힌 책임을 묻다

강상헌 칼럼

2011-09-01     평택시민신문
▲ 논설주간

말이 말 같지 많으면 말이 아니다. 억지다. ‘말이라고 다 말이냐, 말이 말 같아야 말이지’ 하는 비아냥은 말의 본디 뿐 아닌 도리의 본디를 꿴 것이다. 부처님 높은 경지를 이르는 ‘언어의 길 끊긴’ 언어도단(言語道斷)은 거꾸로 ‘말도 안 돼!’의 외마디 정서를 비추기도 한다. 현장의 분위기가 필요해 한 신문의 보도를 일부 인용한다.

곽 교육감은 “박 교수의 어려운 처지를 외면할 수 없어 선의로 총 2억 원을 지원했다”며 “박 교수가 서울시 교육감 선거 과정에서 (후보 사퇴 전까지) 많은 빚을 졌고, 경제적으로 몹시 어려운 형편에 있다고 들어 모른 척할 수만은 없었다”고 말했다. 이어 “선거에선 공정성을 위해 ‘대가성 뒷거래’를 불허해야 하지만, 선거 이후는 또 다른 생활의 시작인만큼 박 교수의 곤란한 처지를 외면하는 것은 몰인정한 법 집행”이라며 검찰이 의심하고 있는 대가성을 전면 부인했다.(한겨레신문 8월28일치)

오늘 ‘상식인’으로서 참 부끄럽다. 내가 지지했던 한 ‘교육자’가 저질 정치 모리배나 할 소리를 늘어놓은 것을 보았다. 논리의 전개도 철저한 아전인수(我田引水)다. 내 독자에게 그 ‘지지’를 권유한 일 없음이 그나마 천만 다행이다. 세월이 준 지혜 덕에 절제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여하간, 정말 말도 안 된다. 재판받아 결격(缺格)에 해당하는 처벌을 피할 수 있다면, 즉 벌금 얼마 이하의 형 또는 무죄 선고를 받는다면, 그 ‘교육 수장(首長)’의 자리를 지킬 생각임을 그는 밝힌 것이다.

‘선의(善意)’라는 표현을 썼다. 자신이 피해자라는 ‘착각’에 빠져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또 그런 내용의 발언도 했다. ‘진보라고 해서 왜 나만 가지고 그래?’하는 ‘앙탈’이었다. 언어도단이다.

어찌 ‘사정’이 없을 것인가? 한편 ‘정치’의 냄새도 나는 것 같다. 그러나 정황(情況)의 골은 깊고 구불거릴 수 있지만 ‘사실’은 엄정하다. 확인되지는 않았으되, 여러 미디어를 통해 나오는 얘기들은 결코 청결하고 향기롭지만은 않다.

말은 사물과 현상을 나타내기 위해 생겨났다. 사물과 현상의 이름으로 생성되고 유통되는 말에는 세월과 역사의 더께가 얹힌다. 본디가 희미해지기도 하고 변용(變容)으로 다양한 뜻을 품기도 한다. 오염되어 음흉한 속내 품는 비수로 탈바꿈하기도 한다.

그러나 아무리 말의 생성과 유통의 원리가 그렇다 하더라도 착한[善] 뜻[意]의 ‘바른 이름’마저 망가뜨리려고 하는 이런 음습한 시도는 안 된다. 자칫 세상의 선의를 부정하는 지경이 될 수도 있다.

말이 생겨난 원리, 그 어원의 뜻으로 때묻은 언어를 씻으면 스스로 드러나는 도리다. 정명(正名)의 요구다. 그것이 어떻게 선의인가? 다 건드려도 그것만은 건드릴 수 없는 궁극(窮極)의 언어 ‘선의’를 이렇게 불결하고 난삽하게 훼손하는 것은 또 하나의 죄악이다.

히틀러 나치의 선전상 괴벨스는 정치를 ‘용어를 제조하는 기술’로, 분노를 ‘대중을 움직이는 동력’으로 썼다. 악의(惡意)의 ‘언어기술’이 권력과 야합해 빚은 인류사적 절망을 세계는 봤다. 아직 그 상처는 곳곳에서, 특히 중동에서 앙갚음의 복기(復棋)로 독성을 유지한다. 말 같지 않은 말이 말일 수 없음을 보여주는 증거다. 국내 사례 또한 부지기수다.

협잡(挾雜)이 선의의 탈을 쓰는 탁월한 둔갑술을 우리는 더 이상 보고만 있을 수는 없다. 자신이나 무리를 주장하거나 변호하기 위해 이런 ‘말장난’ 식의 언어를 활용하는 일부 정치인들의 행태가 시민의 마음에 상처를 줄 뿐 아니라 우리 언어 환경을 크게 악화시키고 있는 것을 시민사회는 아울러 주목한다.

세치 혀로 시민의 이성을 겁탈하는 이런 상황에 대한 경고다. 이를 무겁게 받아들이지 않는 사회는 더 큰 비극을 되풀이할 수 있는 토양이다. 철들만큼 세상 건너왔고 말귀 알아들을 만큼 책도 읽은 이라면, 이런 상황에서 자신을 되돌아봐야 한다. 이끗만을 모색하는 시중 잡배와도 같은 모습으로 남을 이끌 수는 없는 일 아닌가?

언어의 조탁(彫琢)만으로 되지 않을 자기 합리화를 궁리하는 것은 당당하지 않다. 억지 쓰지 마라. 시민이 옳다. 항상 시민은 옳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