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상헌 칼럼] 외로워서 ‘독도’가 아니다
강상헌 <본지 논설주간>
‘고독(孤獨)한 섬’이어서 독도라는 이름이 붙은 게 아니다. 돌[석(石)]로 된 섬 ‘독섬’이 한자 이름을 얻는 과정에서 독도(獨島)가 됐다.
원래 말이 먼저 생기고, 그 말에 합당한 문자가 나중에 매겨지는 것이 순서다. 돌섬 독섬의 한자이름인 독도의 한자만 보고, 또 바다 한 가운데 홀로 선 그 모습을 보고 상당수 사람들은 ‘외로운 섬’이라고 생각한다.
옛적, 토지대장과 같은 장부에 올리기 위해서는 그 이름을 문자로 바꿔야 했다. 담당 관리는 백성들이 오래 써온 이름인 독도의 ‘독’을 ‘거센 풍파와 당당히 홀로 맞선다’는 뜻으로 독(獨)자로 매겼다.
오진 이름 ‘독도’가 생겨난 내역은 이렇게 톺아볼 수 있다. 한때 ‘석도(石島)’로 등재되기도 했으나 다시 독도가 됐다.
경상도 전라도 사투리로 돌은 ‘독’이다. 좀 작은 돌은 ‘도팍’ ‘돌팍’이라고도 하나 ‘독팍’이란 말이 가장 많이 쓰인다. 돌 많은 산(山), 바위로 된 산은 당연히 ‘독산’이다. 지금도 독 독팍 독산 등은 흔히 듣는 정겨운 지역 말이다.
위풍당당, 동도(東島) 서도(西島) 두 개의 거대한 바위섬이 망망한 동쪽 한국해(韓國海)의 맥을 짚고 선 그 모습을 이르기에 ‘석도’보다는 역시 ‘독도’가 제격이다. ‘독섬’도 멋지다.
간혹 고기 많은 그 섬 곁을 도둑걸음으로 지나던 일본 어부들에게 ‘독섬’의 독자(字)는 ‘도쿠’였다. 언어 구조 때문에 그들은 한 음절 발음을 잘 못한다.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며 ‘도케’로, 또 소리가 비슷한 대나무[죽(竹)]의 ‘다케(たけ)’로 변했다. ‘독섬’의 섬자(字) 또한 섬[도도(島嶋)]의 ‘시마(しま)’로 바뀌었다.
동남아와 중국 남부에서 자라던 대나무가 한국과 일본에 전해졌다. 중국어의 죽(竹) 발음은 대략 ‘텍’[tek]이다. 한국엔 중국어 성조(聲調)상 약한 소리인 입성(入聲) ‘크’[k] 발음이 죽어 ‘대’로, 일본엔 종성(終聲)을 분리해 발음하는 그들의 습관에 따라 두 음절 ‘다케’로 각각 이름이 전해졌다. 문자학자 진태하 인제대 석좌교수의 설명이다.
또 그들이 독도를 자기네 다케시마라고 한단다. ‘대나무섬’ 죽도(竹島)라는데 정작 독도엔 대나무가 없다. 현장 근무자나 학자 언론인 등의 일관된 보고다.
최근 독도 식물분포를 탐사한 홍성천 경북대 명예교수(임학)도 “식물 종은 다양하나 대나무류는 전혀 없다. 과거에 자랐던 흔적도 없다”고 잘라 말했다. 식생 환경상으로도 깎아지른 듯한 절벽 모양의 돌섬 독도와 대나무는 촌수가 안 닿는다.
대나무 없는 독도에 왠 죽도 타령인가? 그들이 독도(독섬)를 자기 식으로 부르던 것이 구전(口傳) 과정에서 ‘다케시마’로 변한 와전(訛傳)으로 풀이된다. 죽도라는 한자 이름에 맞춘 ‘의도적 와전’이라고도 한다. 그러나 실은 죽도나 다케시마 마저 ‘독도’를 부르는 이름이다. 결국 ‘다케시마’는 없다.
독도학회장 신용하 서울대 명예교수는 현대 국제정치 상황에서 독도가 한국 영토인 점은 대마도가 일본 땅인 것과 같다고 설명한다. 이는 1946년 연합국 최고사령부의 결정에 따른 것이며, 국제적 영토 운영체계의 원칙이라는 것이다.
말글로 톺아본 독도의 본디와 마찬가지로, 외교적 정의(正義)와 절차도 독도가 영토적 시빗거리일 수 없음을 재확인한다.
말글은 본디를 가리킨다. 진실을 품는 까닭이다. 진실은 힘이 세다. 일본의 아전인수 격 억지와 이를 합리화하는 외교적 꼼수가 아무리 정교해도 ‘본디’를 당할 수는 없다. 말글의 역사도 이리 엄연하다. 일본에 이를 추스릴 ‘역사’가 없음은, 그들과 후손들에게 큰 불행일 터다. 그들의 착각과 달리 역사는 본디를 찾는 학문이다.
‘고독한 섬 독도를 지키자’는 뜻의 가요들이 있다. 그 마음 비록 갸륵하나, 독도의 본디와 동떨어진 분위기임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독도는 치우(蚩尤)신왕이 눈 부라린 양 용맹무쌍한 바위섬이다. 독도를 ‘외롭다’ 노래하지 말자. 외로워서 독도가 아니고 돌섬이어서 독도다. 독도는 더 이상 외롭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