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토록 아름다운 극복
■ 한책 하나되는 평택 릴레이 기고
조르주 심농의 추리소설을 읽다. 거구의 먹성 좋은 사나이, 매그레 반장은 우리가 아는 형사나 탐정과 다르다. 숭배자 왓슨을 거느린 홈즈, 밉상 캐릭터 포와르 경감, 밀실 살인사건의 종결자 소년 탐정 김전일, 하드보일드 사립탐정 필립 말로 등 매력적인 해결사들은 많다. 그들은 사건 해결 과정에서 천재적 직관력과 비상한 두뇌를 선보인다.
매그레 반장은 다르다. 그는 오로지 발로 뛴다. 오늘날에도 유효한 잠복과 탐문 수사가 매그레 반장의 장기다. 오랜 기다림, 사건과 관련된 자들을 지켜보며 얻는 것은 ‘죽음(死)이 들려주는 삶의 이야기’이며 ‘어떻게’ 살아왔나 하는 일상의 이야기이다. 매그레 반장은 살풀이를 하듯 죽은 자의 절망과 고난 그리고 마지막 기다림을 드러낸다. 살아 생전 공감도 이해도 얻지 못한 그들은 매그레 반장의 발품으로 온전히 되살아난다.
‘사랑하는 일은 그래서 실은, 누군가를 상상하는 일이야. 시시한 그 인간을. 곧 시시해질 한 인간을…. 시간이 지나도 시시해지지 않게 미리, 상상해 주는 거야’라는 소설가 박민규의 말처럼 소설 속 매그레 반장은 더위와 추위 속에서 누군가의 삶을 상상하고 재현하기 위해 발품을 판다.
이것은 매그레 반장을 내세운 심농의 사랑이다. 문학이 들려주는 수많은 사랑 이야기는 ‘사람’과 ‘삶’ 그 자체다. 그들을 어떤 내용과 방법으로 상상할까는 중요한 숙제가 된다. 과제 해결을 위해 무엇을 준비할까? 영화평론가 듀나는 얘기한다.
‘속설과는 달리 선이란 그렇게 쉽게 행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인간에 대한 지식, 윤리적 판단을 할 수 있는 논리적 사고, 타인에게 감정이입을 할 수 있는 예민함이 필요하다. 종종 여기엔 소설을 쓰고 음악을 작곡하는 것과 같은 재능이 필요하다. 어떤 사람들에게 선은 타고난 재능이다. 하지만 대부분 사람들은 적극적으로 그 기술을 배워야 한다. 이를 위해 필요한 것은 경험이다.…(중략)…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간접 지식이 필요하다.
독서와 예술 감상이 권장되는 이유는 그 때문이다. 훌륭한 문학 작품은 우리에게 인간이라는 동물의 가능성과 다양성에 대한 정보를 준다. 그들은 우리가 지금까지 타자로 여기거나 존재하는지도 모르는 사람들에 대한 정보를 준다. 제대로 된 독자들은 인간에 대해 더 많은 가능성을 상상하고 그에 대비할 줄 안다’
사람을 이해하고 악을 행하지 않기 위한 책읽기와 예술감상은 다른 사람의 삶을 이해하는 것으로 그치지 않는다. 감정이입을 하려면 자신과 자신의 삶에 대한 이해가 먼저다. 찌질하고 궁상맞은 한 인생을 온전히 받아주는 상상력. 자신을 온전히 아낄 줄 아는 인간은 다른 이의 ‘삶’을 존중할 줄 안다.
마음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면 당당한 삶의 이야기가 들려온다. 무차별 경쟁 사회를 살짝 빗겨나 다르게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다. 공지영은 지리산 이야기를 들려주었고 우리 사회 구석구석 다른 선택을 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 매그레 반장처럼 발품을 팔 필요는 없다. 인간을 이해하고 모두가 이것만을 꿈꾸라고 얘기할 때 다른 것을 욕망하는 ‘극복’의 힘. 진리와 쾌락의 미로, 도서관이 준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