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상헌 칼럼] ‘금도’라니 ‘언격’이라니…청와대 대변인의 ‘막말’

강상헌 <본지 논설주간>

2011-05-04     평택시민신문
▲ 강상헌 논설주간

이런 것도 ‘막말’이다. “아무리 선거전이지만 금도가 있다고 생각한다.” 김희정 청와대 대변인은 얼른 국어사전에서 ‘금도’란 단어를 찾아볼 일이다. 그의 ‘막말’은 이어진다. “언격이 인격이다. 특히 국회의원의 언격은 국가의 품격이다.” 오랜만에 사전 편 김에 ‘언격’이란 말도 찾아보기를 권한다.

막말은 ‘나오는 대로 함부로 하거나 속되게 말함. 또는 그렇게 하는 말’이라고 사전이 알려준다. ‘마구 하는 말’ 정도의 뜻이다.

말의 뜻이 완전히 무시된 엉뚱한 단어의 선택은 ‘나오는 대로 함부로 하는 말’이다. 청와대의 높은 벼슬아치가 하는 말은 뜻이나 문법, 어법에 있어 국민에게 본보기가 되어야 할 터다.

김 대변인의 말은, 속된 것 같지는 않지만, 격식이나 의미구성에서 ‘마구 하는 말’의 차원 이상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어떤 의미에서는 더 심각한 ‘막말’이다. 보도 등으로 그 단어를 접한 ‘백성’들에게 끼친 폐해를 생각하면 그렇다는 것이다.

글머리에서 권한 대로 사전을 찾아본 분이라면 필자의 이런 설명에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도대체 ‘대통령의 입’인 청와대 대변인의 말과 글에 관한 인식이 이 정도라면 그 조직의 품격은 어떤 것일까.

4월 하순의 보도, ‘최종원 막말 금도 넘었다’는 제목의 기사에 직접화법으로 인용된 김 대변인의 발언에 관한 소감이다. 혹 그 말 옮긴 기자의 자의적 작문이 아닐까 하여 같은 내용을 쓴 다른 기자의 글도 읽었다. 김 대변인의 육성이 확실한 것 같았다.

‘금도’는 옹졸하지 않은 큰마음이다. 관대함, 인색하지 않음, 배려하는 어진 마음 따위가 그 뜻이다. ‘다른 사람을 포용할만한 도량(度量)’이라고 사전은 푼다. 한자로 襟度다. 옷깃 금(襟)은 비유적으로 마음을 나타낸다. 글자를 분해하니, 저고리[衣(의)]의 앞섶을 여미는 것[禁(금)]이 옷깃이다. 도(度)는 남을 포용하는 국량(局量)이다. 
혹 뜻이 다른 ‘금도’라는 단어가 있나? 사전 뒤져보니 금복숭아 금도(金桃), 돈 나오는 줄 금도(金途), 거문고 연주법 금도(琴道), 도적질을 금함 금도(禁盜) 따위가 있다.

김 대변인 발언의 맥(脈)을 톺아보니 ‘금도’가 ‘넘어서는 안 될 마지막 선(線)’ 정도의 뜻으로 쓰이고 있다. ‘마지노 선(線)’ 정도의 의미인 듯하다. 이런 뜻의 ‘금도’는 사전에 없다. 한자숙어도 아니다. 중국어, 일본어에도 없다.

금도라는 말의 제 뜻은 아랑곳하지 않고 금 자(字)를 금할 禁으로 지레 생각한데서 생긴 착각일 터다. 하긴 이전 어떤 신문에는, 글 쓴 이가 같은 착각을 했던 모양인지, ‘금도(禁度)’라는 한자 표시까지 있었다. 착각하기 쉬운 말이라고 넘어가기에는 김 대변인의 직책이나 영향력이 너무 크다.

‘언격(言格)이 인격(人格)이고, 국회의원의 언격은 국가의 품격’이라고 했다고 적혀있다. 이 말이 논리적으로 적절한지는 ‘정치적 해석’이 필요할 수 있겠다. 그러나 어법(語法)에도 맞지 않는 말을 ‘창작’해서(또는 제멋대로) 쓰는 경우의 품격에 대한 지적은 있어야 마땅하다.

우리말에 ‘언격’이란 단어는 없다. 사전에도 없고, 그런 식으로 쓰는 경우도 없다. 문격(文格)이란 말은 있다. 말에 관해 왈가왈부(曰可曰否)할 경우에 쓰는 말로는 어격(語格)이 있다.

개념으로 파악할 때 언어의 언(言)과 어(語)는 다 ‘말’의 뜻이기는 하나 뉘앙스의 차이가 있다. 그래서 어격(語格)과 문격(文格)이란 촌수 비슷한 단어가 함께 살아있는 것이다. 

순수한 우리말이건 한자어이건, 말에는 하나하나 뜻이 있다. 또 일정한 쓰임새가 있다. 수 천 년 역사에서 갈고 닦여 보석처럼 결정 맺힌 것이 말이고 글이다. 들은 풍월로, 대충 감으로 때려잡아 ‘그런 뜻이려니’하고 쓰는 말과 글은 자칫 문화의 오염원(汚染源)이기 쉽다.

문필가처럼 기자도 명징한 생각으로 말과 글을 활용해야 한다. 또 대통령을 대신해서 국민을 대신하는 기자를 대하는 직책에 더 엄정한 기준이 매겨지는 것은 당연하다. 그 자리에는 특히 말과 글을 제대로 알고 활용하는 인재가 필요한 것이다.

맹자의 ‘지언’(知言)은 ‘말을 안다’는 평범한 말이기도 하지만, 사람 또는 세상물정의 본디로서의 ‘말’의 무게를 겨눈 개념이다. 말을 모르는 이가 어찌 세상을 알 것인가 하는 풀이도 가능하다. ‘말로써 말이 많으니 말을 말까 하노라’ 시조 구절은 허무 개그가 아니다.

“공부 잘 하는 녀석은 벌써 사전(辭典)이 달라!” 스승 한분이 버릇처럼 뇌던 말씀이다. 문자 속 알만하니 그 말씀 이제 더 귀하다. 막말을 멈추라, 그리고 사전을 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