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상헌 칼럼] ‘잡솔로지’
강상헌 <본지 논설주간>
스티브 잡스와 관련된 사항은 뭐든지 톱뉴스가 된다. 기자 등 이런 사항을 기록하고 분석하고 평가하는 이들은 얼핏 ‘신앙’으로 느껴질 정도의 신뢰감 또는 존경심을 드러내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다.
저널리즘의 이성이 ‘잡솔로지(jobsology)’에 매몰된 느낌마저 든다. 비판적인 시각이 없다. 잡솔로지, 그의 이름 잡스(Jobs)와 기술 즉 테크놀로지(technology)를 접붙여 필자가 만들어본 단어다. 더 먼저 만든 사람이 있을 법도 하다.
아시는 바와 같이 스티브 잡스는 미국의 애플이라는 회사의 CEO다. 아이폰과 아이패드로 세상을 뒤집어놓고 있으며, 일거수일투족이 주목을 받는 뛰어난 제품 개발자이며 경영자다.
잡솔로지에 경기(驚氣)하듯 반색하는 모습은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다. 주요 매체의 한 기자는 “스티브 잡스의 현실왜곡(reality distortion)은 그가 말하면 말이 되는 것처럼 보이며, 주변 사람들이 그것을 믿게 만든다는 뜻으로, IT업계에 널리 알려진 말이다”라고 썼다.
기자가 쓴 글 치고는 참 난해하다. 두 번 읽으니 별 뜻도 없는데 ‘비싼 말’만 넣어서 독자를 혼란스럽게 하는 경우임을 알겠다. 잡스가 좀 비틀어 말하거나 심지어 거짓말을 해도 대충 넘어가는 분위기라는 얘기인 듯하다. 바탕에는 역시 ‘스티브 잡스는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을 깔았다.
‘평소 스티브 잡스와 애플의 제품에 상당한 존경심을 갖고 있다’고 밝힌 꽤 영향력 있다는 미국 IT전문 기자가, 스티브 잡스가 공식석상에서 몇 가지 사실을 왜곡했다며 그를 ‘조목조목’ 비판했다는 사실을 우리 기자는 그 글에서 경이로운 시각으로 바라보고 독자에게 세세하게 전했다.
그 비판이란 것이 ‘듀얼코어’라는 부품이 자기 회사 제품으로 첫 번째로 대량생산됐다고 한 표현이 잘못됐다는 것, 삼성전자 관련제품의 매출에 관해 잘못된 인용을 했다는 것, 운영체계(OS)가 다른 안드로이드 계열 제품과의 정확하지 못한 제원 비교 등이었다. 미국 기자가 그렇게 썼다고 한국 기자가 인용했다.
실소(失笑)를 금할 수 없었다. 요즘 말로 ‘썩소’다. 미국 기자가 ‘이런 왜곡이 잡스의 기조연설을 훼손한 것은 부끄러운 일’이라고 썼다고 했다. 그 어느 하나도 독자에게는 도움이 되지 않는 것들이다. 기사를 위한 기사일 따름이다. 얼치기의 식자우환(識字憂患)인가?
이제 ‘그가 평소 식사 때 왼손으로 잡는 포크를 오른손으로 잡은 장면이 카메라에 잡혔다.’는 뉴스가 대서특필되지 않을지 모르겠다. ‘언론’들은 거기서 어떤 의미 또는 ‘인류를 구원할’ 계시를 찾을 것인가. 국내외적으로 이런 기사가 대부분이다.
독자를 기만하는 정작 큰 왜곡은 이런 것이다. 필자도 그 ‘기조연설’을 봤다. 스크린에 커다란 ‘Liberal Arts’ 글자를 잠깐 띄워 놓고는 무심한 듯 지나치는 장면이 있었다. 여지없이 언론은 ‘인문학자로서의 잡스’에 관해 ‘칭송’하기 시작했다. 그의 암시가 마치 히틀러의 눈빛과 손짓처럼 최면에 걸린 언론(인)을 좌지우지하고 있는 것인가?
리버럴 아츠(Liberal Arts)는 교양학 또는 인문학으로 번역될 수 있다. 문사철(文史哲)이라고 말하는 문학 역사 철학 따위 인간의 본디를 연구하는 학문을 이른다. 미국에는 리버럴 아츠만을 가르치는 대학이 있다. 잡스는 이런 대학에 입학하여 한학기만에 그만두었다.
필자는 그를 높이 평가한다. 혁신(革新)과 자신만만함, 파격은 멋지다. 그와 대적(?)한다는 우리나라 어느어느 업체의 아무개 씨들이 근엄하게 스펙을 낭송하는 장면과 대조적으로 관객이 ‘끼약’ 소리 지르게 만드는 쇼맨십, 존경할 만하다.
세상 모든 재주꾼들이 밤새워 ‘앱’을 만들어 경쟁적으로 그의 ‘앱스토어’에 올리게 한 그의 탁월한 마케팅 능력은 거의 신기(神技)다. 모바일 생태계의 새 패러다임을 세운 점도 존경할 만하다. 기술을 개방하고, 이익배분비율을 뒤집어 ‘세상의 새로운 생각’들을 다 제 품에 보듬으려 시도하는 것은 비록 장사속이지만 멋지고 용기 있는 결정으로 평가한다.
그런데 거기까지다. 그는 철학자가 아니다. 문학가는 더욱 아니다. 새로운 역사를 짓고 있기는 하지만 역사학자는 더욱 아니다. 리버럴 아츠를 자신의 특이한 코드로 흘금흘금 드러내는 그의 ‘더 탁월한 최면 마케팅’이 암시하는 그 어떤 모습도 아니다.
단지 그는 리버럴 아츠에 관심을 가지고 독서를 했으며(또는 독서를 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으며), 그런 관심과 소양이 IT기술과 혁신적으로 결합되어 지금의 잡스를 낳은 것이다. 재미있는 큰 그릇을 만들어 준 그의 업적을 보지 않고, 그 그릇을 ‘인문학’이라며 입을 다물지 못하고 감동하는 여러 모습들은 코믹하기도 하지만 또한 측은하다.
그는 이런 이미지 메이킹을 할 수 있다. 그것을 왜곡이라 하지만, 그는 왜곡을 할 자유가 있다. 왜냐하면 그는 장사꾼이며, 자기 제품을 많이 팔아야 하는 입장이기 때문이다. 마케팅의 본질이다. 잘하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받아쓰기쟁이 언론들이다. 미국의 언론은 ‘제 나라 밥줄’이고 ‘팔이 안으로 굽는다.’는 ‘원칙’에 따른 자연스런 현상이라 치지만, 한국의 잡솔로지스트(jobsologist)들은 참 철이 없다. 저널리즘의 기본이 어그러져 있다. 아직 적(취재대상)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거나, 소화를 못 시킨 양으로 보이기도 한다.
잡솔로지는 진행 중이다. 이런 기술의 개벽이 이제까지의 발전 단계들을 단박에 무너뜨릴 것임을 우리는 안다. 그러나 호랑이에게 물려가도 정신을 놓지 말라던 조상의 엄중한 가르침을 잃지는 말아야 한다. 잡솔로지, 끌려갈래? 끌고 가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