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인들 “의협심 강하고
아이디어 많은 원로”

고 김병국 전 평택군청년운동협의회장 별세

2011-01-30     강경숙 기자
김병국 전 평택군청년운동협의회장이 8일 새벽 성세병원에서 당뇨병으로 인한 합병증으로 별세했다. 향년 79세. 발인은 10일 오전 9시30분에 치러졌고 장지는 청북면 시립납골당이다.

주변 사람들은 고인을 60년대부터 90년대까지 평택지역발전 과정의 중심축에 선 한 사람으로 평가한다.

고인은 1932년 원평동에서 부친 김삼달씨의 3남1녀 중 차남으로 출생했다. 당시 성동국민학교를 다니고 평택중학교 1회 졸업생이다. 수원고등학교를 졸업했으며 수원고등학교 재학 당시 응원단장으로 유명했다. 대한민국 정부수립 이전 좌우익이 서로 싸울 때 우익의 대한청년단 산하 청년운동협의회에서 학생운동을 했다.

당시 고등학교 3학년, 최연소자로 가담했다. 청년운동협의회 평택군지부 활동에서는 회장을 역임했다. 1970년대 부회장 으로 재직할 때 고인은 현재 신한고 뒷산에 ‘매봉산 위령탑’ 건립했다. 좌익과 투쟁하다 숨진 고인 57위를 기리기 위한 것으로 비용은 평택라이온스에서 후원했다. 이 탑에는 노산 이은상 선생의 ‘짧은 일생을 영원한 조국에’라는 친필의 글귀가 새겨져 있다. 최종구 평택군수 시절 군에 기부체납됐다. 

정진모 민주평화통일 자문위원은 “참으로 깡다구도 세고 의협심과 추진력이 강했다”고 회고한다. 1970년대 중반에는 진위면에 YKK 공장이 들어서게 하는데 일등공신이다. K-55 비행장 항로 근처라 고도제한도 엄격했었는데 잘 조율을 해서 지역경제활성화에 기여했다는 것이다. 또한 안성지역으로 갈 뻔했던 동방평택복지타운도 평택에 들어설 수 있게 했다고. 김병국 회장의 처남인 김학주 대표에게 다른 지역에 하지 말고 평택에다 건립해 줄 것을 독려했다는 것이다.  

고인은 또 1995년 3개시 군 통합 당시 평택·송탄·안중 통합추진 33명 중 평택지역의 한 사람이면서 지난 해 작고한 김영광 전 국회의원과 함께 핵심역할을 했다. 현재 고향을 위해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재경 평우회와 평택시발전협의회 창립멤버이기도 하다.

김찬규 평택시발전협의회장은 “머리가 상당히 좋고 그때그때마다 아이디어가 뛰어났다. 여러 가지 측면에서 평택지역이 발전하는데 한 중심축이 된 분이다”라고 기억했다. 

생전에 고인의 별명은 뻐꾸기였다. ‘뻐꾸기 김병국’. 고인 생전에 기자는 그 의미를 몰랐다. 작고한 후 지인들이 의미를 알려줬다. 당뇨병으로 인해 끼니를 딱딱 시간 맞춰 챙겨 먹었기 때문에 붙여진 별명이라고. 10년 전 시민신문에 입사한 후 평택시발전협의회에서 김병국 회장을 처음 만난 기억이 난다. 그 때도 주변 분들은 ‘뻐꾸기 김병국 회장’이라고 소개했다. 첫인상은 참 푸근했고 다정다감했다. 만날 때마다 격려하면서 기자로서의 바른 자세를 주문했다. 어디에서도 좌우익 싸움의 중심에 섰다거나 깡다구가 셌다는 것을 느낄 수 없을 정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