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남겨야할 것과 버려도 되는 것

김해규<한광여고 교사/본지에 지명이야기 연재중>

2002-07-12     평택시민신문
옥관자정 충의각등 개발에 묻히고 밀려나는 문화유산 연구하고 보존하는 풍토 조성해야 평택은 빛난다



문화재는 특정 국가나 민족 또는 지역의 역사적, 문화적 정체성을 뒷받침하는 요소이다. 그래서 자치단체들은 경쟁적으로 문화유산을 연구하고 발굴하는 작업에 많은 노력을 경주했다. 하지만 그동안 자치단체들의 노력에는 문제점이 있었다. 가장 큰 문제가 대부분의 정책들이 전시적, 일회적 행사로 끝나고 만다는 점이다. 또한 전문인력의 부족과 사료를 수집하고 연구, 보존할 공간의 부족도 문제점 중에 하나다. 그러다 보니 향토문화유산에 대한 체계적인 연구 뿐 아니라, 가치인식, 발굴과 보존, 교육과 홍보에 커다란 취약점을 드러냈다.

문화유산에 대한 새로운 인식과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시급한 과제는 기존에 알려진 유산만이라도 제대로 연구, 해석하고 보존할 수 있는 대책을 세워야 한다는 것이다. 평택시처럼 급격한 개발로 전통의 문화유산들이 사라져 가는 고장에서 밝혀진 문화유산의 가치를 인식하지 못하는 것은 자칫 문화유산의 파괴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물론 도시가 발달하기 위해서는 일정부분의 파괴는 감수해야겠지만 가능하면 파괴를 피하는 노력과 함께 보존의 우선 순위 정도는 정해야 한다.

분별 없는 이전 복원의 예가 포승면 원정리 목장토성이다. 원정리는 조선시대 국영목장이 있던 마을로, 목장토성은 이 지역의 역사성과 정체성을 대변하는 유적이다. 하지만 포승공단이 건설되면서 파괴 또는 이전복원이 불가피했는데, 결국 공단 내 공원으로 이전이 결정되었다. 하지만 문화유산은 본래의 위치가 갖는 중요성과 더불어 불가피하다면 원형 그대로의 복원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내가 보기에 목장토성은 두 마리 토기를 다 잃어버린 셈이 되었다. 이것은 복원이 아니라 파괴에 가깝다. 최근 목장토성과 비슷한 처지에 놓인 유적이 이충동 "충의각(忠義閣)이다. 이충동 지역은 도시개발계획에 잡혀 조만간 택지로 개발될 예정인데, 이 계획안에 충의각이 들어있다. 물론 담당기관에서는 철저한 고증과 신중한 자세로 이전 복원을 추진하겠지만 불가피하지 않다면 계획을 조정해서라도 현재의 자리에 보존하는 노력을 해야 한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그것이 유적과 유물을 보존하는 최선의 방법이기 때문이다.

칠원동 옥관자정 문제는 더욱 안타깝다. 칠원동 원칠원 마을은 조선시대 삼남대로와 충청로가 지나는 교통의 요지로서 "갈원(葛院)"이라는 역원(驛院)이 설치되었던 마을이다. 특히 원(院)은 공적인 업무로 걸어서(步撥) 지방을 여행하는 관원들이 묵는 일종의 국가경영 여관인데, 갈원(葛院)은 삼남대로(춘향이길)와 충청로가 갈라지는 기점이면서 평택지방에 설치되었던 6개 정도의 원(院) 중에서 조선 후기까지 존재했던 유일한 곳이다. 원(院)이 설치된 곳에 맛 좋은 우물은 필수적이다. 옥관자정은 갈원(葛院)을 대표하는 우물로서 인조임금이 남행하던 중 물맛에 감탄하여 당상관이 착용했던 옥관자를 내렸다는 곳이다. 그러므로 단순한 우물이 아니라 평택과 갈원(葛院)의 존재를 알게 하는 상징적 유적이다. 프랑스에서는 루이 14세가 길을 가다가 잠시 쉬었던 바위마저 사적으로 지정하여 보존하는 것에 비하면 이 우물은 가히 국보급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최근 칠원마을 뒤쪽에 임대아파트 공사를 하면서 물의 수량이 줄어들기 시작하였다. 물이 마르면 우물은 가치를 잃게된다. 이렇게 가다보면 아파트를 위해서 우물을 이전하자고 할지도 모르겠다. 아직까지 시 당국이나 관계기관에서 보존을 위한 조사와 조치를 취했다는 소식도 접하지 못했다. 이와 같은 태도는 문화유산의 중요성과 가치를 이해하지 못하는 태도라고 밖에 할 수 없다. 남겨야 할 것과 버려도 되는 것에 대한 가치판단과 실천이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