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상헌 칼럼] 똑게와 멍부-‘연평도’ 겪는 시민의 아픔은 누가 알까

강상헌 <본지 논설주간>

2010-12-15     평택시민신문
▲ 논설주간

똑게 똑부 멍게 멍부, 네 가지 스타일 중 ‘똑게’가 가장 바람직한 리더의 모습이라고 말하는 이들이 많다. 우스개를 빗대서 ‘하고 싶은 말’을 다 보듬어 내는 독특한 화법(話法)이다.

‘똑똑하고 게으른’ 이가 제일이란다. 일의 본디와 전후를 환히 알되 아는 체하지 않고, 동료나 부하들이 지혜를 발휘할 수 있도록 주변에 여유를 두는 타입이겠다.

‘칭찬은 고래를 춤추게 한다’는 동화적 제목은 비교적 최근 유행한 개념이다. 특히 지휘자에게 필요한 소양 즉 리더십의 커버스토리 정도로 이해된다. 경영학 상의 ‘기술’이기도 하겠지만, 동료와 부하, 주변과의 소통을 위한 최소한의 인간성의 표현일 터다. 

히딩크 감독이 미소로 박지성의 등을 두들기며 격려하는 대신 자신이 페널티 킥을 차겠다고 나섰다면, 이는 똑똑하고 부지런한 ‘똑부’일까? 스스로는 그렇게 생각할지 모르겠다. 굳이 분류하자면 멍청하고 부지런한 ‘멍부’에 낙점(落點).

똑똑하고 부지런한 타입. 옳다, 또 잘 하기는 한다. 그러나 참 피곤한 인간상이다. 필요한 처방(處方)은 단 하나. 결과적으로, 또 길게 보아 무엇이 진정 똑똑한 것인지에 관한 치열한 명상이 필요하다. 어질다는 뜻의 인(仁)자를 바람벽에 붙이고 오래 수행하면 나아질까?  

똑똑하지 못한 이가 어쩌다 ‘지휘봉’을 잡았다면, 그가 선택할 수 있는 현명한 타입은 멍청하고 게으른 ‘멍게’라고 한다. 눈만 깜박거리고 있어도 절반은 하는 것이다. ‘똑게’와 외형은 비슷하나 핵심은 주변 사람에게 훼방이 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시기만 잘 타고 났다면 좋은 성과를 낼 수도 있다.

멍청하고 부지런한 ‘멍부’에는 약이 없다. 그의 부지런함은 필시 멍청함을 가리기 위한 어거지일 터다. 주변을 혼란하게 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조직을 위험에 빠뜨리기 일쑤다. 필시 지식(知識)과 지혜(智慧)의 차이를 인정하지 않는, 또는 구분할 수 없는 탈(脫)상식적 인간상이겠다.

잊어버릴만하면 이 ‘멍똑부게 분류학’은 고개를 들이민다. 최근에는 민주당의 박지원 원내대표가 여당 한 간부의 사의(謝意) 표명에 대해 “책임질 사람이 책임을 져야지, 손으로 하늘을 가리려고 하면 안된다”며 “머리 나쁜 사람들이 부지런하면 이렇게 사고 친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멍부’의 폐해를 말한 것이겠다.
바로 이전에 이 ‘멍부론(論)’이 크게 화제가 됐던 적은 2008년 광우병 쇠고기 촛불시위 때였다. ‘똑똑한, 또는 똑똑하다고 스스로 생각하는 이명박 대통령’의 ‘똑부’ 타입이 지혜롭지 못하다는 지적이나 이니셜 MB의 발음과 ‘멍부’를 연관시켜 비꼬는 칼럼과 시위 피켓이 많았다.

여러 유형의 리더십 가운데 서번트(servant) 리더십이란 게 있다. ‘서번트’는 ‘하인, 종, 공복’ 등을 뜻한다. 하인이 리더가 된다는 말인가? 아니다. 리더가 하인처럼 한다는 뜻이다. 조직원들을 위해 몸을 낮추고 그들을 돕는 리더인 셈이다.

서번트 리더십은 ‘똑게’ 타입이다. 똑똑한 이는 자신을 내세우는 대신 하인처럼 조직과 조직원을 위해 몸을 낮춘다. 행동만이 아니라 마음까지, 요즘 많이 들먹이는 마인드까지 이런 기반을 갖춰야 한다는 것, 이를 통찰력(洞察力)의 전제 조건 쯤으로 여겨야 한다는 것이다.
‘게으름’은 되바라지지 않은, 어진 선택의 상징적 표현이겠다. 우리 사회, 서번트 마인드를 가진 리더는 없는 것인가?

천안함과 연평도의 비극을 겪으며 장군들과 우리 대통령, 정부 인사들의 면모를 새롭게 관찰할 수 있었다. 용감하지도 합리적이지도 않은 행태, 국민을 섬기기는커녕 불안하게 하는 언사(言辭), ‘면피’ 제일주의, 전문성 완전 부재(不在) 따위가 준 실망감은 ‘멍똑부게 분류학’을 논하기에도 미처 부족하다는 느낌이다. 필자만의 생각일까?

그러나 이제는 이런 실망감을 표현하거나 촛불시위 때처럼 대통령을 ‘멍부’라고 비꼴 수도 없는 상황인가. 우리 시민들도 이제 여차하면 도청당하고, 미행당하는 신세가 된다. 사찰(査察)의 대상이 되고, 생업을 박탈당하고도 찍 소리도 못한다. 겁내는 사람 적지 않다. 대부분 언론도 시민의 편은 아니다.
어쩌다 우린 이렇게 됐을까? 이 통절(痛切)함, 산에 올라 소리나 지를까? 하릴없이 하늘 향해 삿대질이나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