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끼몰이의 추억-골짜기의 길 잃은 ‘나’와 이웃들에게
강상헌 칼럼
1. 어느 겨울날, 산기슭을 올랐다. 전교생이 막대기 휘둘러 토끼를 몰았다. 소풍 비슷한데다, 점심 전에 집에 보내주니 중학생들은 좋았다. 선생님들은 잡은 토끼를 들고 식당으로 갔을 것이다. 영어선생님이었던 아버지는 그날 기분 좋게 취해 집에 돌아오셨다.
토끼는 앞다리가 짧다. 산 위에서 아래로 몰면 제대로 뛰지 못하고 고꾸라진다. 우왕좌왕 하다 아이들 막대기에 걸리고 그물에 들었다. 재미있었다. 측은하기도 했다.
문득 내가 토끼가 됐다. 당해낼 수 없는 무서운 힘이 골짜기 아래로 나를 내몬다. 토끼몰이 그물에 갇힌 나를 본다. 꿈이다. 악몽이다. 발버둥치지만 벗어날 수 없다.
살다보면 내가 어떤 상황에 놓여 있는지 혼동될 때가 있다. 우리 사회도 마찬가지. 그물 안의 토끼는 풀을 뜯어 주거나 과자 조각을 주면 금방 빨간 눈의 긴장을 풀고 나를 반겼다. 토끼 중에는 무수한 발 가랑이들을 피해 산등성이로 뛰어 도망가는 녀석도 있었다. 이웃과 함께 토끼가 된 나도 저 모습인가. 꿈이지만 불쌍하다.
몰리고는 있었지만 내려 달려서는 안 될 일이었다. 어떻게든 산등성을 향해, 꼭대기로 냅다 뛰어야 했다. 내 백일몽(白日夢) 한 조각이다. 당신의 토끼몰이 추억은 어떤 것인가.
2. 골짜기에서는 길을 잃기 쉽다. 굳이 전문가가 아니라도 산 오르는 사람은 안다. 산등성에 오르면, 꼭대기에 오르면 된다. 내가 지금 어디 있는지 알 수 있다. 길을 잃었는가? 심호흡 크게 한번, 그리고 꼭대기로 오르라.
3. 변죽의 무늬만 읽느라 본디를 놓치는 경우가 있다. 내가 어리석은 까닭이다. 그러나 변죽의 무늬를 화사하게 꾸려 본디를 못 보게 하는 장치들이 요즘 너무 정교하다. 내 어리석음을 악용하기까지 하는 영리한 시스템이다. 나를, 내 생각까지 옥죈다.
인간적 약점을 노린다. 부당하다 싶어도 매섭게 내치지 못하고 미운 상대를 용납하고 마는 당신의 알량한 선량함도 노린다. 비정한 심성들이다. 비겁하다, 그러나 그들은 이를 ‘지혜’라고 한다. PR이고 홍보고 소통이란다. 마케팅도 일면 동의어다. 토끼몰이처럼…
그러나 ‘당했다’ 외마디 비명으로 당신의 탓이 줄어드는 것은 아니다. 잘 생각해보라, 속았다고 당신은 울부짖지만 당신 잘못은 없었는지. 본디를 놓치면 꼭 당한다.
4. 이것이 본디다. 수많은 국민을 나라가 비밀리에 조직적으로 감독하고 시찰했다. 기업인도, 여당 국회의원과 그 부인까지도 하릴없이 당했다. 좀 불뚝한 심성으로 옳지 않는 것 참지 못하는 사람이나 노조, 언론사 등도 주요 대상이었다. 정황이 수도 없다.
그러나 거의 모든 언론사 꽁꽁 틀어막았다는 자신감에서일까? ‘아니다’라고 잘라 말한다. ‘공정사회의 소통(疏通)’이다. 그러고는 입을 닫는다. ‘제풀에 지치겠지’
언론은 ‘논란(論難)’이라며 물을 탄다. 판단불가, 언론은 결코 판단을 하지 않는다. 논란을 ‘있는 그대로’ 보도한다. 국민은 바보다. ‘행복한 돼지’는 행복한가? 포만감은 행복인가?
‘전 방위 불법 사찰’은 이제 당신 차례다. 왜 사회가, 이웃이 나와 내 가족을 보호해 주지 않느냐고 소리칠 텐가? 나라가 이럴 수 있느냐고? 국가와 민족을 독점한 이들이 뭐인들 못할까. 정권은 국민의 매서운 감시가 없으면 자동으로 국민을 속이는 기구다.
“증거를 완전히 없앴으니 수사해도 나올 것이 없을 것 같은데, 이를 어찌하남요? 안타깝지만 우리도 별수가 없네요.” 니가 직접 해보라고? 국민들에게 하는 소리다. 우리 국민은 세금을 낸다. 이런 특급 코미디를 즐길 권리가 있다. 웃으면 복이 와요. 캐치 미 이퓨 캔.
5. “법원은 증거인멸을 직접 지시한 진경락 전 기획총괄과장에 대해 징역 1년을 선고하고, 부하직원 두 명에 대해서는 집행유예를 선고했습니다.”(MBC)
새 영웅 탄생-어느 일에나 국가와 민족을 위한 희생(犧牲)은 필요하다. 영웅신화로 옷을 바꿔 입기도 한다. 어떤 이들에게 진리는 시간과 상황에 따라 바뀐다.
6국무총리가 말했다. 차명(借名)폰은 써도 된다고. 국립국어원은 대포폰을 ‘다른 사람의 명의로 개통한 휴대 전화’라고 정의한 바 있다. 차명폰이 대포폰이네. 차명은 차명계좌처럼 사회악이라더니, 얼짱 자랑 국회의원은 인터넷도 실명제 해야 한다더니. 그래서 어떤 검사님은 차명차(車)를 타셨구나.
… 모든 동물은 평등하다. 돼지는 더 평등하다.(조지 오웰, 동물농장, 1945)
국어사전을 바꿔야 할 상황은 세상을 뒤집는 것과 같다. 국무총리도 당연히 관둬야 한다.
7. 워터게이트 사건-리처드 M. 닉슨 미국 대통령 독직(瀆職) 하야(下野) 사건
워싱턴의 워터게이트 빌딩에 있는 민주당 시설을 여당인 공화당 측이 도청한 사건(1972년 6월), 이로 인한 의회의 탄핵을 피하려고 닉슨은 2년2개월 후 대통령직을 사임했다. 한 사전(事典)은 이렇게 덧붙였다.
… 당초 닉슨은 도청사건과 백악관과의 관계를 부인하였으나 진상이 규명됨에 따라 보좌관 등이 관계하고 있었음이 밝혀졌고, 자신도 무마공작에 나섰던 사실이 폭로되어 국민 사이에 불신의 여론이 높아져 갔다. 1974년 8월 하원 사법위원회에서 대통령탄핵결의가 가결됨에 따라 닉슨은 대통령직을 사임할 수밖에 없었다 …
워터게이트는 수문(水門)이다. 물을 가두고 내보내는 장치다. 가두기만 하다 둑이 터지려하자 닉슨은 얼른 사임했다. 첫 발생은 작았는데 막고 숨기는 과정이 더 큰 문제였다.
‘위대한 업적’ G20까지도 청목회, 대포폰 차명폰 논란, 대운하 논란 4대강 사업 따위와 함께 ‘시간차 공격’ ‘중심 이동’ ‘물타기’의 절묘한 전술 전략이었나? ‘사랑의 열매’ 사건도?
워터게이트는 ‘영포게이트’(영일-포항 라인 빗댄 일부 언론의 제목)에 비하면 새발의 피다. 워터게이트는 기껏 반대 정치세력을 몰래 도청하고자 한 것, 영포게이트는 나에게, 국민에게 대포(大砲)를 들이댄 것이다. 침소봉대(針小棒大)말라고 엄포를 쏜다. 대포가 바늘인가? 우리는 사안의 본디를 놓치고 있었다.
누가 나를 침범하는가? 나는 왜 침묵하는가? 냄비 속 개구리인가? 계곡의 토끼인가? 냄비를 박차야 한다. 계곡을 치달아 산마루에 올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