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상헌 칼럼] ‘개량 한복’ 말고 ‘간편 한복’으로 부르자
강상헌 <본지 논설주간>
한가위 명절이다. 평소보다 한복을 입는 이들을 볼 기회가 많아진다.
전통의상과 관련된 이름에 뭔가 잘못된 점이 있다고 생각해왔다. 언제부터인가 우리 전통 의상의 선이나 여밈 등을 달리한 옷을 만들고 입는 이가 생겨나면서, 이 옷을 ‘개량한복’이란 이상한 이름으로 부르고 있는 것을 말함이다.
한복(韓服)은 무엇인가? 사전은 ‘예부터 전해 내려오는 한민족 고유의 의복’이라고 정의한다. 덧붙여 ‘특히 조선 시대에 입던 형태의 옷을 이르며, 현재는 평상시보다는 격식을 차리는 자리나 명절, 경사, 상례, 제례 따위에서 주로 입는다.’라고 설명한다.
평상시가 아닌 특별한 경우에 주로 입는다는 말이 사전에까지 오를 정도로 우리는 한복과 거리를 유지하는 의(衣)생활을 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고유한 우리 옷의 아름다움에 대해서는 이론(異論)이 거의 없다.
입고 움직이기 불편하니까 한복을 자주 입지 않는다고 한다. 그래서 이런 불편을 줄이고자 모양이나 부속품을 바꾼 옷을 만들었다. 30년쯤 전부터였던 것으로 전문가들은 기억한다. 언론은 이를 새로운 트렌드 쯤으로 이해하고 비교적 긍정적으로 독자들에게 알렸다.
그 때부터 이 옷을 부르는 이름이 대개 ‘개량한복’이었고, 이 이름은 ‘한복’ 또는 ‘전통한복’과 구별되는 용어가 됐다. 관련업체의 자료나 언론의 언급(言及) 내용 등을 두루 살피니 개량한복이 95% 정도의 대세(大勢)이고, 생활한복 실용한복 퓨전한복 등의 이름도 이 옷의 이름으로 얼마간 쓰이고 있다.
개량(改良)은 ‘좋게 고친다’는 뜻이다. ‘우리 옷이 나쁘기 때문에’ 이를 고쳤다는 옷이 개량한복이다. 뜻을 새겨보니 납득하거나 수용하기 어렵다. 또 이런 옷을 생활한복이라고 한다면, 우리 옷은 생활에 적당하지 않는 옷이라는 얘기다. 실용한복 이름도 마찬가지 논리로 마뜩치 않다.
이렇게 한복이라는 이름 앞에 ‘개량’ ‘생활’ ‘실용’ 등의 단어가 붙는 것이 뜻으로 보아 적절하지 않다는 점 말고도, 그런 옷들이 아름다운 우리 옷의 이미지에 좋은 역할을 하지 못한다는 지적도 있다.
패션디자이너 홍미화 씨는 “이런 의상들이 자칫 저급(低級)한 무국적(無國籍) 옷으로 보이기 쉽다”’며 문제점을 이렇게 지적한다. 이런 옷과 한국적인 것을 연결하고자 하는 어색한 시도가 우리 시민들의 미적 감각을 훼손할 수 있다는 것이다.
“개량한복이라고 불리는 그런 옷들이 대개 예쁘지 않아요. 시각적으로 거슬리는 점도 있고, 값이 싼 소재를 쓰기 때문인지 싸구려 분위기가 느껴지지요. 또 한복이라는 이름을 쓸 만큼 우리 옷으로서의 정체성도 가지지 못한 것 같고요.”
한국의 현대 양장(洋裝)문화를 확립한 것으로 평가받는 패션디자이너 이신우 씨도 기회 있을 때마다 “불편하다는 점 때문에 생긴 개량한복이 한복의 본디와 그 정서가 다르다”고 걱정한다. 한복과 전혀 별개인 장삿속 아이디어 수준의 옷까지 상당수 사람들이 한복으로 착각하는 실정이라는 것이다.
한복이라는 이름을 붙여도 손색이 없을 격식을 갖추기 위해서는 관계자들의 할 일이 많다는 얘기다. 또 전문가들이 연구와 논의를 통해 전통 의상과 이를 응용하는 의상의 기준 등 규정을 제대로 지어야 할 것이라고 이 씨는 제안한다.
이 같은 지적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형태의 이런 의상이 사라져가는 우리 고유의 복식문화에 대안을 제시하고, 한복의 대체 의상으로 일부 자리를 잡아온 것에 대한 공로를 인정해야 한다는 평가도 있다.
그러나 이런 본질적이고 미적(美的)인 논의는 제쳐두고라도, 먼저 ‘이런 형태의 한복’에 적합한 이름에 관해 더 고민해야 한다고 의상계 인사들은 입을 모은다.
뜻으로는 ‘퓨젼(fusion)한복’이 그나마 어울릴 것 같다. 한복과 서양 옷의 융합(融合)이라는 의미로 일부에서 쓰는 이름이다. 그러나 우리의 옷에 영어 이름을 붙이는 것이 또 마음에 걸린다.
‘거추장스럽다’며 한복입기를 즐겨하지 않는다고 하여 생긴 옷이다. 간편하게 입고 활동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것을 주안점으로 내세우는 이런 의상을 ‘간편(簡便)한복’이라 부르는 것은 어떨까? ‘개량한복’처럼 부정적인 속뜻으로 한복의 이미지에 상처를 주지도 않으면서, 그 뜻과 활용의 실제가 부합하는 이름 아닌가?
의상계와 한글학계 등의 전문가들이 서둘러 논의하여 좋은 이름을 지어주기를 기대한다. 마땅히 ‘개량한복’이란 이름은 지금 당장 버리는 것이 합당하다. 좋은 새 이름이 나올 때까지 만이라도 ‘간편한복’이라는 합리적인 이름을 사용하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