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식한 척 쓰는 말 금도(禁度), 무식을 드러내다

■ 강상헌 칼럼

2010-07-15     평택시민신문
▲ 강상헌 논설주간

예로 제시한 다음 7개의 문장을 읽고 ‘금도’라는 낱말이 어떤 뜻으로 쓰였는지를 생각해 보시기 바란다. 포털 뉴스페이지 검색창에서 ‘금도’라는 단어를 검색어로 하여 찾은 기사 중의 일부다. 

△ 안상수 전 원내대표는 ‘라이벌’ 구도를 형성하고 있는 홍준표 전 원내대표를 겨냥, “전대 과정에서 분열적 행동, 인기 영합 발언이 난무한다”며 “정치의 기본은 존중이고 최소한 금도가 있어야 한다”고 꼬집었다.(연합뉴스)

△ 촛불소녀, 김성훈 전 농림부 장관, 우희종 서울대 교수 등 거의 모든 인터뷰 당사자들로부터 ‘왜곡기사’로 지목받고 있는 조선일보의 촛불 2주년 기획에 대해 언론계 관계자들은 “언론으로서 최소한의 금도도 지키지 않은 것”이라는 반응을 보였다.(미디어스)

△ 한나라당 김무성 원내대표는 주요당직자회의에서 민주당의 청와대 항의방문 등을 ‘3류 정치쇼’로 비판하면서 “의혹을 부풀려 대통령과 정부를 흠집 내고, 더 나아가 여당을 분열시키는 금도를 벗어난 정치공세가 개탄스럽다”고 말했다.(부산일보)

△ 민주당 김유정 대변인이 여의도 당사에서 “한나라당이 최진실 씨 사망을 빌미로 사이버모욕죄 신설을 가속화하려는 시도는 아무리 따져보더라도 금도를 넘어선 것”이라고 비판하고 있다.(뉴시스)

△ 자유선진당 이회창 총재는 김대중 전 대통령이 “민주당과 민주노동당, 시민단체 등이 민주연합을 결성, 이명박 정부의 역주행을 저지하는 투쟁을 한다면 성공할 것”이라고 발언한 데 대해 “전직 대통령으로서 금도를 벗어난 발언"이라고 비판했다.(연합뉴스)

△ 다른 사람들이 생명을 경시하지 않도록 충동적 행위에 쉽게 빠지지 않도록 절제의 원칙, 사회적 금도를 바로 세우자는 것뿐이다. 사이비 언론보다 더 무서운 것이 신문사, 방송사들이 ‘자살’을 미디어 상업주의의 소재로 악용하는 것이다.(미디어오늘)

△ 그(이재오 최고위원)는 “그런 식의 네티즌 공방은 중단하는 게 바람직하다"며 “아무리 인터넷 공간이 자유롭고, 정치가 막간다고 해도 지켜야할 금도가 있다”고 밝혔다. 또 “대선주자들이 이런 부분에 대해서 입장표명이 있어야 한다.”고 덧붙였다.(오마이뉴스)

문맥, 즉 글의 흐름을 보니 하나같이 ‘금도’를 ‘넘어서는 안 될 마지막 선’이라는 의미로 쓰고 있다. 말하자면 금도(禁度) 정도로 생각하고 있다는 얘기다. 어떤 신문은 친절하게도 괄호 안에 한자를 넣어 ‘금도(禁度)’라고 썼다.

그러나 이런 말은 없다. 우리 말글, 한자어, 일본어, 중국어 어디에도 없다. 두 단어의 뜻을 새겨 그런 의미로 쓸 수 있겠느냐고 강변할 수도 있겠지만 이는 억지다. 막말로 하자면 무식의 소치다.

금도는 襟度다. ‘가슴 넓음’이 그 직접적인 말의 뜻이다. 관대(寬大)함, 도량(度量), 인색하지 않음, 후함 등으로 풀어볼 수 있다. 언젠가 유행했던 프랑스 말 똘레랑스로 바꿔 써도 된다. 금(襟)자는 옷깃, 앞섶을 뜻하는 글자로 ‘가슴’ ‘마음’의 뜻으로 비유적으로 쓰인다. 흉금(胸襟) 즉 속마음을 털어놓는다고 할 때의 그 금자다.
금도가 禁度로 잘 못 쓰인 것이 언제부터인지, 누구에 의한 것인지 따위는 알 수 없다. 다만 인터넷 페이지의 검색 결과가 끝을 챙겨보기 어려울 정도로 많은 것을 보니 이 단어의 오용(誤用)이 매우 일반적인 것임을 알 수 있다.

아주 드물게 바른 뜻으로 이 단어가 쓰인 경우도 있다. 이 중에는 이 단어가 잘 못 쓰이고 있음을 지적하는 취지의 글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금도(襟度)가 ‘넘어서는 안 될 마지막 선’으로 잘 못 쓰이는 경우는 계속된다.

한동안 잠잠했다가도 유명한 정치인과 같이 언론의 주목을 받는 인물이 “금도를 넘지 말라”는 식의 발언을 하면 언론은 일제히 제목에까지 금도타령(?)을 지면에 도배질한다. 곰곰 보니 이 형태가 바로 ‘금도타령’이 생겨나고 순환하는 구조다.

정치계나 언론계에는 잘못된 것을 바루는 장치가 없거나, 있어도 제대로 기능하지 않는 상태인가. 말글의 관행도 그렇지만, 정책 여론 등 그들이 다루는 수많은 뜻의 처리도 이런 상태라면 심각하다는 생각이 절로 한숨을 부른다.

소통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한 시대다. 소통의 기본이 되는 말과 글이 곱고 바른 모양을 갖춰야 할 필요성은 분명하다. 이 기본의 중요성을 깨치지 못한 이들을 보는 유권자의 시각은 매섭다. 또 언론 상품의 소비자인 독자 시청자들의 우려도 언론사의 미래를 겨눈다.

금도는 지키는 것이 아니다. 가져야 하는 것, 보여줘야 하는 것이다. 남의 허물까지도 용납할만한 도량, 이 금도는 세상에 참 좋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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